연재 중 모래성 24화

모래성(10)

by 김흑곰


정처 없이 걷는 산책길의 끝은 늘 습관처럼 서점으로 향하곤 한다.


딱히 살 책이 정해져 있지 않아도, 이유 없는 발걸음에 마땅한 목적지가 필요할 때면 나는 어김없이 그곳의 문을 연다.


책을 읽는 행위도 좋아하지만, 사실 나는 빼곡히 꽂힌 책들의 등을 바라보며 서성이는 그 시간 자체를 참 사랑한다.


서점의 문을 열고 들어서면 가장 먼저 나를 반기는 건 특유의 향기다.

종이와 잉크, 그리고 수많은 사람의 시간이 뒤섞인 그 냄새는 설명하기 힘든 깊은 안정감을 준다.


낯선 이들이 가득한 공간으로 들어설 때의 묘한 긴장감은, 이내 각자의 세계에 푹 빠져 있는 사람들의 뒷모습을 마주하는 순간 민망할 정도로 눈 녹듯 사라진다.


누군가의 방해도 받지 않은 채 활자 속에 침잠해 있는 그들의 모습은, 그 자체로 나에게 안도감을 전해준다.


서가 사이를 천천히 유영하다 마음에 닿는 책 한 권을 발견하는 순간은 그날의 사소하지만 확실한 설렘이다.


조심스레 마음에 드는 책을 집어 들고 쭈뼛거리며 구석진 자리를 찾아 앉는다.

조용히 첫 장을 넘겨 문장 사이를 유영하다 보면, 어느새 책 속 주인공이 되어 낯선 세계를 걷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이런 감정들이 좋아서 나는 어딜 나가든 일정의 중간이나 끝에 서점을 끼워 넣고 나만의 '힐링'을 하곤 한다.


수많은 사람이 오가는 번화가 한복판에서 이토록 평온한 고립을 느낄 수 있는 곳이 또 있을까.


그날도 그렇게 인연이 닿은 책 한 권을 품에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모두가 잠든 고요한 밤, 낮은 스탠드 불빛만이 출렁이는 책상 앞에 앉아 갓 사 온 책의 첫 장을 다시 천천히 넘겨보았다.


서점에서 느꼈던 그 평온함이 방 안 가득 번져나가고, 책장이 넘어가는 소리만이 정적을 깨우는 이 시간. 잠 못 드는 밤의 끝에서 나는 비로소 가장 완벽한 휴식에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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