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중 모래성 23화

모래성(9)

by 김흑곰

그날도 오랜만에 산책이나 할 겸 밖을 나설 참이었다.


적어도 한 달에 한 번쯤은 오로지 나를 위한 외출을 하기로 스스로 약속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현관을 나서려다 돌아본 방 안은 말 그대로 ‘엉망’이었다.


책상과 의자 위에는 언제부터 내려앉았는지 모를 뿌연 먼지가 층을 이루고 있었고, 이불은 갈 곳을 잃은 채 방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그 풍경이 꼭 정리되지 않은 내 마음 같아서, 나는 신발을 벗고 다시 방으로 들어왔다. 오늘은 산책 대신 청소를 하기로 했다.


먼저 창문을 활짝 열어 묵은 공기를 내보냈다.

찬바람과 함께 들어온 생경한 바깥공기가 폐부 깊숙이 박혔다. 책상과 의자의 먼지를 정성껏 닦아내고

너저분하던 이불을 반듯하게 개었다.


밀린 빨래를 세탁기에 넣고 돌아가는 소리를 듣고 있자니, 멈춰있던 내 시간도 조금씩 흐르는 기분이 들었다. 젖은 빨래 바구니를 들고 옥상으로 향했다.


늘 밤늦게, 답답한 마음을 이기지 못해 도망치듯 올라오던 옥상이었다.

하지만 밝은 햇살 아래 마주한 옥상의 풍경은 사뭇 달랐다. 빨래를 널다 문득 고개를 드니 많은 건물들 사이 푸른 하늘이 선명하게 보였다.


세상을 가두던 어둠이 걷히니 이렇게나 넓은 곳이었나 싶어 새삼 놀라움이 밀려왔다.


청소를 모두 마치고 나서야 정말 오랜만에 의자에 앉았다.

분명 내 방, 내 가구들인데도 엉덩이에 닿는 감각이 낯설었다. 한동안 앉아 무언가를 쓸 여유조차 없었다는 방증이리라. 머그컵을 꺼내 유통기한이 다 되어가는 티백 하나를 던져 넣고 뜨거운 물을 부었다.

은은하게 퍼지는 찻잎 향기가 방 안의 공기를 채웠다.


그제야 구석에 밀려나 있던 책 한 권을 꺼내 들었다. 창너머로 불어오는 적당한 온도의 바람, 이어폰 너머로 흐르는 나지막한 음악, 그리고 손에 잡히는 종이의 질감. 그날은 그냥 그 모든 것이 참 좋았다.


여전히 마음 한구석에는 불투명한 내일에 대한 불안감이 묵직한 돌덩이처럼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청소를 마친 깨끗한 방 안에서 차를 마시는 그 찰나만큼은, 그 모든 걱정으로부터 자유로웠던 예전의 나로 돌아간 것 같았다. 비워내고 닦아내는 것만으로도 다시 시작할 용기가 아주 조금은 생겨나는, 그런 오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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