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성(15)

by 김흑곰

강릉에서의 짧은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기차 안,

창밖으로 무심히 흘러가는 풍경을 멍하니 바라보던 중 스마트폰이 짧은 진동을 울렸다.


화면에 뜬 것은 뜻밖에도 인스타그램 DM 알림이었다.

별생각 없이 열어본 메시지에는 어느 전시 기획자로부터 온 전시 참여 제안이 담겨 있었다.

사실 그동안 글을 쓰는 계정을 따로 만들어 남몰래 글을 올려왔지만, 딱히 주변 사람들에게 계정의 존재를 알린 적도, 거창한 홍보를 한 적도 없었다.


그저 세상 어디에도 털어놓지 못한 마음의 부스러기들을 익명이라는 방패 뒤에 숨어 조용히 쏟아붓던 나만의 대나무숲이었을 뿐이었다.

누구에게 자랑할 만한 대단한 글들도 아니라고 생각했기에 누군가 내 글을 먼저 찾아내 제안을 건넸다는 사실 자체가 생경했다.


처음 메시지를 본 순간에는 솔직히 스팸이나 사기가 아닐까 하는 의심부터 들었다.

내 글들이 전시회라는 거창한 공간에 걸릴 만큼 어떤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연락이 진짜라는 걸 확인하고 난 뒤, 나는 기차 안에서 단 한숨도 자지 못한 채 복잡한 머릿속을 굴려야 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쓰러지듯 잠이 들어버렸지만, 마음 한구석은 여전히 소란스러웠다. 누군가에게 나의 속을 보여준다는 사실이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는 너무나 부끄럽고 어색해서 견디기 힘들었다.


겉모습도 그리 근사하지 않지만, 문장 속에 눌러 담은 나의 내면은 그보다 더 흉하고 초라하다고 믿었기에 그걸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들 앞에 선보인다는 것이 도저히 용기 나지 않는 일이었다.


한참을 망설이며 고민에 빠졌지만, 결국은 한 번 부딪쳐 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조심스럽게 몇 개의 글을 골라 보내드렸고, 전시 일정을 전달받아 내 인스타그램 계정에도 소식을 올렸다.

하지만 정작 전시가 시작된 뒤에도 나는 전시장 근처에 얼씬거리지 않았다. 나름대로 홍보를 하긴 했지만, 정작 내 글이 걸려 있는 모습을 마주할 용기가 도저히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창피함과 두려움이 내 발목을 꽉 잡고 있었다. 그러다 내 글을 보고 정말 좋은 문장이라며, 가능하면 나중에라도 함께 무언가를 기획해보고 싶다는 제안을 또 한 번 받게 되었다.


비록 내 고질적인 자신감 부족과 망설임 때문에 그 일은 결국 무산되고 말았지만, 그 따뜻한 말 한마디는 나를 움직이게 하는 커다란 용기가 되어주었다.


전시 마지막 날,

나는 큰 결심을 하고 엄마를 모신 채 문래동으로 향했다.


난생처음 가보는 문래동의 좁고 낡은 골목들을 여기저기 헤매다 겨우 찾아 들어간 건물 안,

그곳 수많은 글들 속에 내 글을 발견했다. 그 순간만큼은 부끄러움도 잊은 채 어린아이처럼 엄마에게 내 글을 가리키며 자랑을 늘어놓았다.


소중한 순간을 사진으로 남기려 쭈뼛거리고 있을 때, 옆에 계시던 관람객분이 다가와 "한 장 찍어드릴까요?"라고 먼저 다정한 손길을 내밀어 주셨다.

이름 모를 그분의 그 소박한 호의가 얼마나 감사하고 뭉클했는지 모른다.


관람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버스 창밖으로 보이는 모든 풍경이 유치할 만큼 참 좋아 보였다. 늘 숨기고 감추기에 급급했던 내 못난 마음들이 누군가에게는 작은 위로가 되어 닿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날 버스 너머로 보이던 세상은 마치 내가 쓴 문장들처럼 자연스럽고도 다정하게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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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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