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도착할 곳이 흔들렸다. 출발 전날 음성, 아들 집까지 동행하기로 했던 작은 어머니께서 사정이 생겼다며 연락이 왔다. 자연스럽게 충북 음성에서 점심을 먹을 계획도 취소됐다. 내비게이션은 음성이 아닌 충주에 있는 활옥동굴을 안내하고 있었다. 호반의 도시, 충주 가까이 와서 고속도로 휴게소에 들렀다. 어라, 활옥동굴이 월요일 휴장이다. 전혀 당황스럽지 않았다. 내심 잘 됐다 싶은 것도 있었다. 예약해 둔 숙소가 있는 것도 아니고 여태 가본 적 없던 충주를 꼭 들러야 할 이유도 없으니까. 충주에서 시간을 보내고 제천에서 하룻밤을 보낼 휴가 계획이 쭉 미끄러졌다. 이런 적 별로 없었지만 하필 오늘이 그날이래도 별 상관없을 것 같은 느긋함이 일었다. 누가 알까, 사는 게 다 그렇다며 시큰둥했던 운명이 미끄러진 우리를 보고 재미난 표정으로 웃을지 말이다.
A4 용지 한 장에 적어놓았던 다음 이름은 단양, 그제야 우리가 오늘 신세 질 곳이 정해졌다. 단양에 가서 짐을 풀자. 내가 준비한 단양은 이랬다. 가곡면 사평리에 두산 패러글라이딩 활공장, 거기 카페에서 커피 마시며 바라보는 풍경. 적성면 애곡리 단양강 잔도 1, 2km 도보 3시간. 적성면 현곡리 새한 서점에서 헌책 사기. 목표가 정해지면 좋은 것이 헛심을 쓰지 않는다는 점이다. 물론 헛심이라고 다 낭비가 되는 것도 아니다.
항상 어떤 상황에 맞물리느냐에 따라 내가 가진 것들의 용도와 쓰임이 달라진다는 것은 경험으로 익히 알고 있다. 심지어 태도까지도 달라진다. 나 자신마저 사용할 것이냐, 사용될 것이냐 따져 물어야 한다. 때와 장소, 그리고 경우에 따라 우리의 모습은 각각 다르게 변한다. 물처럼, 그게 가장 알기 쉬운 표현일 것이다. 단양이 보인다. 물이 고개를 만나 어깨를 흔들더니 아래로 미끄러진다. 쭉 미끄러졌던 아침이 떠올랐다. 그때 그 자리에 주저앉았더라면 이런 미끄러움을 만나지 못했겠다. 단양에 와 본 사람이 없어서 더 좋다, 여기 촌뜨기들에게 실컷 단양 맛을 봬주기로 마음먹었다. 물이 넘실거리며 단양 팔경 그중에 제일이라는 도담삼봉 島潭三峯에 착!
오랜만이다. 남한강 위에 저만한 정자가 있을까. 여기에 오면 저기 앉아서 시류時流를 읊었을 사람들의 그림자가 보이는 듯하다. 물이 어디만큼 차올랐고, 저 물을 두고 시를 짓고 그림을 그렸을 사람들. 그 사람들 속에서 허송虛送하는 것이 세월뿐이겠냐는 표정으로 묵묵했을 바위 형제들에게 오늘도 여전히 복잡하다며 인사를 건넸다. 어영부영 점심시간을 놓친 식구들이 주변을 둘러보고 밥 먹자고 그러는데 그래도 사진은 한 장 찍어두자고 삼봉을 배경으로 배고픈 사람들을 세웠다. 바위 셋, 사람 셋, 잠깐이었지만 카메라에 들어온 모습이 잘 어울렸다. 바위와 사람이 짝이 될 수도 있겠구나. 누군가는 물이 되어야 했다면 그것이 나였기를, 누군가 물이 되어야 한다면 또한 내가 되기를 바라면서 찰칵, 소원이 찍혔다.
Down in the River to Pray, 좋아하는 노래가 때를 맞춰서 내린다. 호우好雨가 있다면 호음好音이 있고 호풍好風도 있을 것이다. 그날을 좋았던 날이라고 적는다. 호기롭던 날, 단양에서 보낸 하루는 호시절이었다. 그 마음으로 만천하 스카이워크로 향했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본 단양은 저기가 단양이냐고 물어보고 싶을 정도로 산과 산 사이에 폭 잠겨 있었다. 내가 겉만 보고 다녔구나···· 그것도 오늘은 탓하지 말자. 그래서 여기 있잖아, 그거면 됐다 싶은 마음은 늘 사람을 초원으로 이끈다. 단양강이 마음에 들었다. 사람은 자기에게 결핍된 것 때문에 힘들고 그것 때문에 살기도 한다. 내 결핍에서 내 바람을 본다. 내가 많이 바라는 것은 내 결핍을 보여준다. 목마른 사람에게 오아시스가 보이는 것처럼 내 가난이 나를 이끄는 곳에 내 천국이 있다. 살 것 같은 바람이 불던 곳들을 잊지 못한다. 여름에는 그 기억으로 살고 있는 것을, 단양에서 오랜만에 텅텅 속을 비웠다. 사람 사는 것처럼 꾸미고 살았던 커튼도 걷고 여기 아무도 없어요,라고 활짝 문을 열어 놓았다. 오호, 노래가 좋다. ketherine Jenkins가 이렇게 감미로웠던가. 또 여행을 떠나고 싶어졌다. 단양이 좋았던 것은 더 떠나고 싶게 했기 때문이다. 거기에 머물면서 거기에서 더 떠나고 싶은, 이중적인 감정에 출렁였다. 뱃노래도 그만하면 환상적이지, 그렇지, 아무렴.
불자는 아니지만 만물이 인연이라는 큰 그늘 아래에 산다고 믿는 사람이라 괴롭고 슬픈 것들과 기쁘고 즐거운 것들에서 한 발짝 비켜 서 있는 경치를 찾아다닌다. 그렇게 다니다가 문득 사는 일이 보시布施 같은 거 아닌가 싶을 때가 있다. 무엇을 보자고 여기 왔던가, 늘 눈앞에 있는 보시를 발견하기 전에 내 안에 불었던 바람은 후회와 의심이었다. 거의 스무 시간 가깝게 덜컹거리는 버스 안에서 마날리*까지 무사히 닿기만을 바라다가 마주쳤던 별빛 은세계, 더 바랄 것이 없었던 군마현 키류*에 핀 벚꽃들 - 다시 가보고 싶은 곳들, 가서 그때를 회상하며 여기에서였다고 말해주고 싶은 곳들, 살아온 날들이 기적 같잖아, 이렇게 또 보고. - 세상에 나를 위해 제 몸을 보시하는 이 세상을 어쩌면 좋을까. 기운 없는 것도 즐겁다며 선운사 도솔암에 오르면서, 대관령 성당 고해실에서 인사를 나눴던 외국 신부님에게서, 세상의 그 모든 길과 바닷가에서 나를 철썩이며 달래주고 바람에 내어 말리고 비에 다시 젖게 하는 순환과 그럼에도 무지개를 볼 수 있는 환희를 허락하는 식탁이라니. 삶이 식탁 같을 수 있게 나를 살피는 인연들에게 나는 무엇을 보시할 수 있을까.
나도 곳곳마다 밑줄을 긋고 보물 있는 곳을 표시한다. 그 밑줄 아래에는 보물이 있다. 삼종시三種施라고 해서 재물로 보시하는 재시財施, 가르침으로 하는 법시法施, 그리고 두려움을 없애주는 무외시無畏施가 그 보물들이다. 두려움을 덜어주고 두려움을 나누고 두려움을 없애주는 일을 날마다 본다. 삼도봉을 감싸고도는 저 물이 사람들 같다. 우리들의 블루스에 나왔던 엄마 강옥동 같다. 나의 아저씨에 나온 아저씨 박동훈이다. 두려움을 덜어주려는 사람은 두려워하지 않는다. 스스로 보시가 되어 보시를 펼친다. 그때 사람이 꽃처럼 핀다. 진흙 속에서 핀 연꽃 향이 멀리 간다.
그날 저녁은 단양강을 바라보면서 불꽃도 피웠다. 몇 해 전에 사두고 그대로 잊었던 것을 이번에 챙겨 왔다. 강이는 여전히 불꽃을 좋아하고 하나비라는 일본말도 좋아한다. 사람은 좋아하는 것이 있어야 한다고 기회 있을 때마다 일러준다. 끈 같은 거야, 끈이 떨어지면 날아가 버리고 말아. 날개 같은 거야, 날개가 없으면 추락할 거야. 무엇인가를 좋아한다는 것은 끈으로 너를 이 땅에 이어주고 날개로 이 세상을 날 수 있게 한다고 그날 불꽃을 보면서도 이야기했다.
이튿날 아침은 산책을 다녔다. 아침 이른 시간은 어디서든 걸어본다. 그 시간을 놓치면 그 장소를 영영 놓치는 것 같아서 일어나 걷는다. 그리고 하루가 고맙다는 생각에 빠진다. 여기 있어서 좋다는 말을 하늘에 땅에, 흐르는 단양강에 고수레하듯 떼어 건넨다.
식구들을 깨워 아침을 먹고 일찍 고수동굴을 찾았다. 저쪽으로 가니까 그 유명한 고수동굴 가는 쪽이던데, 그렇게 목적지에 없던 행운을 줍는다. 여태 고수동굴도 모르고 살았다는 생각에 부끄러운 생각마저 들었다. 이게 동굴을 나오면서 들었던 내 소감이다. 그랬었구나, 이 글을 쓰면서도 몰랐었는데 이제 알겠다. 그 길에서 패러글라이딩 하는 길로 들어선 것은 순전히 그것 때문이었다. 고수동굴에서 느꼈던 우주같이 먼 동굴의 시간과 그에 비하면 있었는지도 모를 것 같은내가 살아온 날들, 차분하게 드는 생각들이 있었다. 편안해진다는 것은 가라앉아서도 무섭지 않고 높은 데에서도 두렵지 않은 것을 어떻게 동굴 속에서 알아차릴 수 있었을까. 시간이 길고 짧은 것도 어떤 자세로 편안해지느냐를 묻는 질문 같았다. 허공에 떠서 단양도 보고 하늘도 보고 차들이 다니는 다리도 봤다. 아이들도 나를 따라서 하늘을 날았다. 그럴 줄 몰랐는데 우리는 여행을 하고 있다, 훌쩍 자라는 비행을 하고 있다. 이렇게 사람이 뜨고 삶이 뜨는구나. 그때까지도 이번 여름에 내가 나를 띄우는 법을 배우게 될 줄은 몰랐다.
단양에서 그렇게 신세 지고 옆에 있는 마을, 영주에 갔다.
영주로 미끄러졌다.
* 북인도 마날리, 델리에서 라다크로 가는 도중에 들르게 되는 북인도 휴양 도시, 산악 도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