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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물처럼 Aug 14. 2024

와온

하늘 높이로 떴다


월요일 오후 2시 20분, 일주일도 더 지나서 와온에 다녀왔던 것을 마음이 내켰다. 이런 순간을 바라며 산다. 노트북을 켜고 허공을 끓일 듯한 매미 울음소리에 주의를 잠시 내어준다. 방충망을 녹일 것 같은 열기가 창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것도 내버려 둔다. 손가락을 하나씩 접어가며 와온에 다녀온 지 208시간이 지났다는 것을 안다.

순천 송광사 IC로 빠져나와 널따란 이파리가 무성했던 불일암佛日庵 후박나무 곁에 앉아서 가만히 보냈던 한 시간, 한 시간은 부도탑 앞에서 허물 벗은 매미와 나무와 하늘과 땅을 오래 쳐다봤다. 스님이 마지막 남긴 말은 무슨 색깔이었을까. 사각으로 정성스럽게 쌓인 돌 하나하나에 알이 굵은 이끼가 어째서 마르지도 않았다. 손수건을 물병 입구에 대고 적셨다. 여기 살아서 고맙다는 생각에 이끼 얼굴을 깨끗이 닦아줬다. 촉촉해? 물어보고 싶었다.

오후 5시에는 송광사 앞 계곡에서 더위를 식히고 있었다. 물소리가 시원했고 물이 많이 차갑지는 않아서 오래 발을 담그고 있었다. 발 하나를 물에 담고서도 상념에 잠긴다. 영월 동강에서였다. 차가운 물을 견디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다. 악 소리도 지르지 못하고 몸부림치는 발이었다. 내가 식었긴 식었나 보다 싶었다. 여름에 땀이 나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사람들이 많지도 않은 계곡이었다. 하긴 아무리 그래도 여기에서 고기를 구울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자 한갓진 것이 특별해졌다. 물소리와 물소리 사이에 냄새가 났다. 물비린내가 아니라, 숲과 바위, 하나 더하자면 오후 6시 무렵의 냄새가 여름과 같이 섞인 냄새였다. 맡으면 모르고 가만있으면 나는 아지랑이처럼 춤추는 냄새. 포르말린이 끝에 살짝 묻었을 것 같은 옷자락.

해 지는 시각, 여수 일대는 7시 21분. 순천만이라고 부르는 것이 맞나, 여자만이라고도 하던데······ 지도에서 여자도汝自島를 찾았다. 아, 순천만은 여자만의 일부였구나.

언제부터 섬에 다녔던가. 섬이라는 말, 섬이라는 공간도 섬이라는 기억도 모두 섬이라는 제목의 시처럼 나한테는 미완성이다. 늘 거기에 가야 할 것 같아서 망설이고, 망설이다 찾아가면 더 먼 데 섬이 있었다. 멀리라는 말이 섬 같았다. 언제까지나 파도, 그 파도를 가르는 커다란 배, 그 위에 어떤 사람, 그 사람의 시선이었을 뿐이다. 어색한 계절에 낯선 이가 서 있는 바다였다. 시로 쓰지 못한 것들은 그렇게 미지로 남아서 서툰 감정이 된다. 겨우 하루살이의 날갯짓이나 내 수작에 걸려 한 줄 문장에 내려앉고 그러다 깜박 졸아버리면 날이 새고, 하루도 새날을 보지 못할 것들만 창 등장시키는 나도 참 어설펐다.

서로를 받아준 적 없이 늙어간다. 섬은 섬대로, 나는 그보다 더 대차게 낡아간다.

그 섬을 다 가볼 수 없어서 내가 포기했던 것은 무엇인가. 바다 위에 떠있는 것들만 찾아다녔던 내 젊음을 듣는다. 와온에 온 것은 그 탓일 것이다. 그 이름과 그 시절과 다 쓰지 못한 시. 말없이 불일암을 서성거리다가 없는 말마저 잃고 송광사 계곡물에 앉았다가 말이 사라져서 와온까지 와버렸다. 해가 지지 않는 곳에 해가 지는 것을 보러, 재촉하러, 시를 쓰러 왔다. 안 되는 줄 알면서도 또 그러고 마는 내가 갯벌에, 그 위에 찍혀 있는 발자국에, 발자국 위를 비추는 저녁 태양과 여름을 십자가처럼 짊어지고 갯내음을 흠뻑 들이쉰다. 좀 죽었으면 싶다.

와온 바다 / 곽재구

해는

이곳에 와서 쉰다

전생과 후생

최초의 휴식이다

당신의 슬픈 이야기는 언제나 나의 이야기다

구부정한 허리의 인간이 개펄 위를 기어 와 낡고 해진 해의 발바닥을 주무른다

달은 이곳에 와

첫 치마폭을 푼다

은목서 향기 가득한 치마폭 안에 마을의 주황색 불빛이 있다

등이 하얀 거북 두 마리가 불빛과 불빛 사이로 난 길을

리어카를 밀며 느릿느릿 올라간다

인간은

해와 달이 빚은 알이다

알은 알을 사랑하고

꽃과 바람과 별을 사랑하고

삼백예순 날

개펄 위에 펼쳐진 그리운 노동과 음악

새벽이면 아홉 마리의 순금빛 용이

인간의 마을과 바다를 껴안고 날아오르는 것을 보았다

곽재구의 시, '사평역에서' 같은 시를 쓰고 싶다던 문청文靑은 어쩐지 소식이 없다. 해마다 그의 이름을 찾다가 새해 벽두를 쓸쓸하게 보낸다. 그가 정말 시인이라도 된다면 내가 느끼던 그 쓸쓸함은 어떤 쓸쓸함으로 색을 바꿀까. 우리는 한때 시를 쓰겠다고 한 곳에 모여 서로를 톺아보고 서로가 돌올해서 도탑다며 따뜻해했다. 그는 왜 아무 데도 없는가. 어느 섬에 숨었는가.

여름 사흘을 중부 내륙으로 다니면서 어지러웠던 것은 나이 탓도 아니고 여름 햇볕은 더욱 아니다. 수사搜査를 잘못하면 애먼 것들을 잡는다. 그것은 죄罪다. 삽으로 파 들어가는 곳마다 잘못이라는 말뚝을 세워야 하는 저 공동묘지는 집요한 줄도 몰라서 서늘하다. 숨이 막힌다. 곡괭이질 해놓은 것처럼 파헤쳐진  내 백지 같은 인생들이 펜대 같이 연한 나를 비웃다가 슬퍼하다가 그럴 것 있냐며 돌아선다. 아카시아 나무라도 빽빽하게 심어놓고 시체가 썩어가는 것을 어떻게든 들키지 말아야겠다. 삶은 그처럼 비겁하고 실성할 판이다. 과도한 수사修辭도 싫다. 문장이든 감정이든 풍경이라도 냄새나는 것들은 여름에 더 견디기 힘들다.

그때에도 나는 나희덕을 꼽았다. 그러면서 이 여자를 만나겠다고도 덧붙였다. 말을 하면 그대로 되는 것이 조금 무섭기도 했던 나이였지만 그대로 믿었다. 세월은 갔고 목마도 떠났고 나희덕을 본 적도 없다. 대신 그녀가 걸었던 바닷가에 오고 말았다. 오늘 거기에 도착해 버렸다. 우리는 시를 쓰지 못했고 곽재구와 나희덕, 두 사람은 시인이다. 30년 전에도 시인이었고 지금은 더 커다란 시인이다. 우리는 서로 살아 있는지도 모르고 슬그머니 이름도 잊을지 모른다. 부유하는 것들은 슬프던데 지난 사흘 동안 나는 '뜬 것'들과 함께였다. 정말이지, 인연처럼 깃들어서 옆에 있어도, 눈앞에 보여도 모른 채 바라봤던 단양과 영주였다. 꼭 옛날 여자애들 이름 같이 정겨운 곳이었다. 유난히 더운 불길로 불순물을 다 녹이고 순純하게 뜨는 것과 떠나는 것만 실처럼 뽑아낸 여름이다.

고수 동굴 종유석 끝으로 맺어 떨어지는 물방울이 내 등으로 떨어지는 찰나는 이승을 떠나는 어떤 존재였다. 순간도 떠나는구나. 이렇게 차갑게 떨어져서 영원히 마르는구나. 울컥 울어도 좋을 것 같이 동굴이 싸늘하고 포근하고 잔잔했다. 커다란 무덤 같고 속 깊은 관 속 같았다. 한 번은 이렇게 떠보는구나 싶어서 앞으로 여기에서 나가면 잘 떠야지, 잘 떠나야지, 그래야지, 그래야지, 마음먹었다.

와온臥溫에서 / 나희덕

산이 가랑이 사이로 해를 밀어 넣을 때,

어두워진 바다가 잦아들면서

지는 해를 품을 때,

종일 달구어진 검을 뻘흙이

해를 깊이 안아 허방처럼 빛나는 순간을 가질 때,

해는 하나이면서 셋, 셋이면서 하나

도솔가를 부르던 월명노인아,

여기에 해가 셋이나 떴으니 노래를 불러다오

뻘 속에 든 해를 조금만 더 머물게 해다오

저녁마다 일몰을 보고 살아온

와온 사람들은 노래를 부르지 않는다

딸기 꽃을 꺾어 바치지 않아도

세 개의 해가 곧 사라진다는 것을 알기에

찬란한 해도 하루에 한 번은

짠물과 뻘흙에 담근다는 것을 알기에

쪼개져도 둥근 수레바퀴,

짜디짠 내 눈동자에도 들어와 있다

마침내 수레가 삐걱거리며 굴러가기 시작한다

와온 사람들아,

저 해를 오늘은 내가 훔쳐 간다

어쩌면 좋을까 싶을 만큼 나는 여행자다. 근사하게 불일암이 떠오를 줄이야, 전날 금요일 밤에도 토요일 새벽에도 아직 몰랐다면 믿을 수 있을까. 늘 어디냐고 물으면, 답을 몰라서, 길이라고 말한다. 내 여행이 틀리지 않고 펑크가 나지 않는 까닭은 거기가 섬,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곳을 향해 나부끼는 깃발, 팽팽하게 당긴 시위를 떠나 허공을 넘어가 사라지는 화살이라서.

나는 될수록 해안 도로를 달린다. 나를 끄는 말들은 빗소리를 닮았고 눈 내리는 소리를 담았으며 바람이 그 안에 머문다. 불일암이었으니까 와온으로 옮길 줄 알았겠지. 여기에 그냥 왔던 사람은 없으니까. 그것이 뜻이란 것이고 시가 시가 되는 길이겠 ····· 와온이다.

와온을 걸었다. 여기에서는 빌지 않아도 될 것 같아서 잘못이든 소원이든 그냥 낳기로 했다. 산통産痛으로 흔들리고 부옇게 뜨는 섬 하나가 나에게서 쏟아지고 번들거리는 탯줄을 잡고서 어디쯤이 좋을까 바라봤다. 울지도 않는 것이 꼭 내 잘못 같다. 이것을 끊어야 너도 나도 섬이 되는 거야, 가라앉고 뜨는 것들이 군무를 이룬다. 보이는 것들은 죄다 불속에 있다. 어디서든 혼자 있을 수 없어서, 혼자 있은 적 없어서 우울했던 내 불행에게 뜨거워진 와온 바다를 떠준다. 밖에 갇혀버린 채 안에 들지 못해서 생겨나는 수많은 우울이 지렁이처럼 몸무림 치며 아우성이다. 나에게서 생겨난 섬이 해가 지는 속도로 자란다. 해가 지는 쪽으로 걷는다.

내가 보고 싶은 사람들이 날이 다 저물었는데도 둥둥 떠 있었다. 어둠 가운데 하늘로, 하늘 높이로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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