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금도 누룽지 한 주먹을 찬물에 넣고 약불에 올려놓았다. 천천히라는 숫자를 세는 방법이 몇 가지 있는데 그중에 코와 귀를 모두 행복하게 만드는 요술이 바로 누룽지 끓이면서 문장을 굴리는 것이다. 달달하게 고소한 훈김이 저쪽에서 내 쪽으로 흐른다. 이른 아침 매미 떼 울음이 사방에 가득해도 저 보글거리며 단단한 밥알을 보드랍게 끓이는 소리는 부채를 부쳐가며 달이던 옛날 약 단지를 생각나게 한다. 제법 앙상블을 이룬다. 내 보약, 누룽지가 끓는다.
어제 토요일은 한껏 맑았다. 글은 이래서 겉치레로 흐르기 쉬운 약점을 가졌다. 7월 29일 어제는 내내 뜨거웠다고 고쳐 쓴다. 호우 주의보까지 울려대며 한동안 사람들 애간장을 태우던 장마가 끝난 지난 수요일 이후로는 연일 폭염 경보다. 사람을 돌보지 않기로 했는지, 정신 차리지 못하게 몰아대는 느낌이다. 자연은 기후는 지구는 어디가 얼마나 아픈 것일까. 새벽 5시, 사위가 몸매를 드러내는 때에 컴퓨터를 켰다. 하루 종일 밖에 있으면 일기를 쓸 수가 없다. 출발하기 전에 어제 일기는 적고 길을 나서는 것이 홀가분하다. 뜻하지 않게 첫 문장이 아버지를 소환시켰다. 돌아가신 지 30년이 넘은 아버지가 생전의 모습으로 바삐 움직이셨다. 내 무의식은 의식적으로 아버지의 나이를 하루 단위로 세고 있는 듯하다. 곧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가 온다. 아버지가 알고 있었더라면, 내가 아버지 나이를 하나씩 지나가면서 문득 떠오르곤 하는 생각이다. 알았더라도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사셨을 것 같다. 그래서 아버지를 더 이해할 수 있으며 꼭 그만큼 이해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내가 파놓은 함정에 발이 빠진 채 웃을까 말까, 그러고 서 있다. 열 줄 정도 쓰다가 끊었다. 밥도 먹고 출발해야 하는데 길이 먼 데, 누룽지를 불에 올렸다. 잘 씻어진다. 먹고 난 것들이 말끔히 그리고 간단히 씻겼다. 아내를 깨웠다. 처제들과 7시 청암산 돌기로 했다니까 지금쯤 일어나야 시간을 맞출 것이다. 6시 30분. 하마터면 아내에게 인사할 뻔했다. 아버지, 다녀오겠습니다. 아주 오래전 인사를 꺼내 머리에 썼다. 오늘은 이렇게 다닐 것 같다.
나는 벌써 광양에 있는 백운산을 다녀와서 그것을 어제라는 이름으로 처리했다. 진공 밀폐식 포장이 아니라 풍장 風葬이다. 여름은 바람이 드문 계절이라 주변에 불편을 끼칠 것이다. 누구 바람 가진 거 있으면 여기 한 줄만 불어주오.
2023, 0730.
5시에 일어나서 금요일 일기를 적었다. 이제 아버지 이야기를 궁색한 티를 내지 않고 약여히 드러내 놓는 것이 얼마쯤 좋고 또 얼마쯤은 죄짓는 것 아닌가 싶다. 그다지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를 꺼내는 상대는 아무래도 달갑지 않은 것이 사람의 정서 아니던가. 글을 쓰면서 좋은 점 하나는 '그러려고 했던 것은 아닌데' 우연찮게 어떤 모양이 돋을새김 된다는 것이다. 안으로 파고들면서 형태를 잡는 꼴은 내가 다분히 그러려고 그리는 그림인데 비해 떠오르며 도드라지는 이것은 뜻밖에 마주치는 탈출 스토리 같다. 그러니까 3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는 지리산 천왕봉 일출 같은 탄생, 벗어남 말이다.
그러니까 토요일 어제는 일상으로부터 가능한 멀리 떠났던 하루였다. 광양, 취향이란 말을 잘 모른다. 누가 내게 취향을 물으면 그를 답답하게 하다가 결국 토라지게 할 수도 있다. 나도 취향이 없는 것은 아닌데 꼭 있는 것 같지도 않아서 따로 이거라고 말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광양은 좀 멀리 느껴진다. 물론 거리를 말하는 것이지만 밀양이란 말보다 어쩐지 내 마음에서 멀다. 광양 光陽, 이름이 뜨겁다. 밀양 密陽, 이 이름도 지지 않는다. 음양의 이치를 따질 줄은 모르지만 광양은 직선적이며 활달한 인상이다. 거기에 비해 밀양은 사변적이다. 밀양의 볕을 경험한 적 없지만 그 볕은 따갑지 않고 비유에 걸맞은 열기였으면 싶다. 그래서 광양에서는 철이 재련되지만 밀양은 영화가 되지 않았을까.
발길이 드물게 닿는 곳, 광양. 광양에 있는 백운산에 다녀왔다. 우리나라 백대 명산 중에 호남에 있는 산은 몇 개 안 남았다. 의도했던 것은 아니었는데 사람들 많이 다니는 산을 차례로 찾아다녔던 것 같다. 아마 남은 산들을 올라가 보는 순서로 나도 그 대열에 설 것 같다.
백운이란 이름은 곳곳에 있다. 광양에 있는 백운산은 남도에서 제일 높은 봉우리를 자랑한다. 모처럼 땀을 흘렸고 다리도 부들부들 떨면서 걸었다. 동곡이라고 했던가? 그 계곡에 풍덩 빠져서 하루 동안 끓어올랐던 열기를 식혔다. 어울렸다. 음과 양이 조화로우면 무릇 성질이 선해진다. 올여름이 그랬으면 싶다. 물속에서 광양에 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거듭 솟았다. 담금질이 잘 된 무쇠, 나를 연마해 주는 것들에 감사.
아침에 쓴 일기를 다시 읽으면서 이만큼 좋은 도량 道場이 있을까 생각한다. 어제 이름도 좋아 보이는 진틀 마을을 지날 무렵에 그렇잖아도 자기네들도 걷다가 더워서 힘들었다며 어떠냐고 아내가 전화를 걸어왔다. 하고많은 날 중에 이렇게 더운 날을 골랐다며 혀를 찬다. 숨이 찼지만 우스웠다. 내가 날짜를 봐가면서 먹고사는 사람도 아닌 줄 뻔히 아는 사람이 푸념이니까 아이가 투정 부리는 것도 같았다. 가난하면서 용기도 없으면 뭐 하고 살겠나. 쉰이 넘어서부터는 슬쩍 이렇게 밑장 빼기 하듯이 아내에게 말을 놓고 지낸다. 그러면 순진한 아내는 그런다. 그렇기는 해요, 그렇기는 해요, 그 말을 지팡이 삼고 오르막이 올랐다. 백운산은 처음이라 무엇보다 내가 내 상태가 잘 가늠되지 않는 처지라 용기를 내되 무모하게 덤비지 않기로 했다. 사람들이 잘 다니는 1코스가 무난해 보였다. 옆으로 계곡 물소리가 우렁찼다. 산을 오르고 다 내려오면서 저 물속에 빠져야겠다는 생각이 어찌나 절실하던지, 아마 모를 것이다. 배낭이며 옷이 땀에 미끈거렸다. 무릎 보호대에 하얗게 소금이 번졌다. 나는 길을 일부러 잃는 것인지 그것도 운명인지, 참 멋지게 해낸다. 그래 그 이야기는 서두르지 말자. 지금은 오르는 길, 신선대 먼저 들르자. 백운이라는 이름을 가진 산도 아마 많이 있을 것이지만 신선이라는 이름은 또 얼마나 익숙한지 친근감마저 든다. 거기 서울에서 왔다던 중년 부부와 마주친 곳이다. 아주머니 왼팔에 묵주가 감겨 있어서 먼저 알아차리고 인사를 건넸다. 아저씨도 반갑게 세례명을 소개했다. 두 사람 사진을 찍어주고 정상을 향했다. 1222M, 白雲山上峯. 정상석이 아담하니 품에 들었다. 친구 한 명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아, 네가 바쁘다 해서 혼자 왔다.
높은 데에서도 낮은 데에서도 네가 떠오르는 것을 나는 어쩌지 못하겠다.
답이 왔다.
그래, 좋구나.
아들 시험장에서 끝나길 기다리고 있다.
신선대라니 설악산인가. 혼자라서 부럽고 미안하고 또 따라가지 않은 것에 안도해 본다.
김광석이 부른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그 대목이 나도 모르게 흘렀다. '지나간 시간은 추억 속에 묻히면 그만인 것을, 나는 왜 이렇게 긴긴밤을 또 잊지 못해 새울까' 건너뛰면, 그 말이 있다. '썼다 지운다' 그리고 '널 사랑해'
2023년 7월 29일 오후 1시 3분에 내가 사랑한 '너'는 어떤 것이었을까. 추억이었을까, 낮이었을까. 하늘이었을까, 아니면 내 손등에 앉아서 날아가지 않던 여름어리표범나비였을까.
내 손금을 읽는다. 사놓고 읽은 적 없는 페이지가 백운산 정상에서 펼쳐질 줄이야. 그 선들은 무엇이니?
부모가 나를 낳은 줄만 알았는데 그래서 늘 그 탓이었는데, 내 운명을 내 손에 쥐고 내가 세상에 나왔던 것이구나. 나비야, 나비야, 잠자리가 하도 많구나. 너희도 나도 날아가는 것들이겠지, 이상이 날아간 하늘로 우리도 날자, 까짓것!
나는 잘 틀린다. 산에서도 길을 알려주다가 내려갈 길을 놓쳤다. 그래서 더 오래 걸어야 했다. 종래는 발이 후들거렸다. 뒤로도 걷고 옆으로도 걸으면서 산을 내려왔다. 올라가면서 높이를 실감하지 못했는데 내려오면서 감격스러웠다. 높구나. 저기 끝에 앉았던 나는 어디쯤 날아갔을까. 물소리가 다시 들리기 시작했다. 이제 서두르지 않는다. 누룽지를 끓이듯 여름날 오후를 달아오르게 한다. 천천히, 서서히, 망연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