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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물처럼 Aug 07. 2024

영주 무섬마을

외나무다리를 걷는다


만약 의도했다고 그러면 애들끼리 하는 말처럼 재수 없다. 그것도 천하에 재수 없는 놈, '천재'다. 배움이 둔한 사람을 내치지 않고 마음먹고 이번 여름을 골라놓고 기다렸던가 싶을 정도로 세상이 친절하다. 이끄는 대로 따라왔을 뿐인데 가는 곳마다 그 말을 깨우치고 있다. 봉황산 부석사에서 실컷 책장을 넘기듯 배운 글자 하나를 사람 사는 동네에 내려와 마저 익히고 있다. 나는 아무래도 가을이 기다려지기 시작했다. 줄을 하나 땅에다 매어놓고 하늘에 둥실 떠 있는 지경이다. 과연 그마저도 거추장스러워 줄을 끊어 놓을까. 자유는 아슬아슬하게 피는 꽃이다. 봉선화가 포동포동 살이 올라서 볼만한데 더 햇살이 쫓지 않아도 좋을 듯싶어서 손으로 볕을 가리고 섰다. 내 키가 커다랗게 자랐다. 이 여름이 역시 아슴아슴 떠오를 것이다. 아서라, 속까지 다 태우려 들지 말아라. 여름, 너도 한 철이다. 어제는 무량한 지붕 아래 법당*에 들어 절을 했고 오늘은 사람 사는 마을을 찾았다. 태백산에서 난 물과 소백산에서 내린 물이 만나 마을 앞을 흐르고 있었다. 삶이 저 물과 같다면 그 물에 떠 있는 섬은 무엇이 될까. 내륙에 있는 섬, 무섬에 닿았다.

"고양이는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는 다만 자유를 좋아할 뿐이다. 그는 이리저리 헤매고 다니지만 항상 정해진 집으로 되돌아온다." 장 그르니에, 섬 68p.

내가 좋아했던 것도 자유였다니, 정해진 집으로 되돌아오는 것이 자유였다니. 여행인 줄 알았던 이 삶이 사실은 자유였다니, 손뼉을 치고 반길 일이다. 산문에 들어서듯 여기서는 물을 건너 마을로 들어선다. 저 물이 일주문이다. 물은 끊어지지 않고 350년을 이어 흐르며 날마다 산을 향해서 물었을 것이다. 정정하기가 이를 데 없기로, 흐트러진 곳도 하나 없이 늘 그 모습 그대로입니다. 언제나 말이 없으니 이렇게 묻습니다, 오늘 나간 상여는 거기 잘 깃들었는지요. 늘 신세가 많습니다.

외나무다리를 걷는다. 다른 세상으로, 집으로 돌아가는 길 아래로 이렇듯 물이 흐를 줄이야. 위아래가 따로 없이 흐르는 것들로 여름이 팽팽하다. 물을 건너다 말고 산자락을, 산자락 아래 집들을 그 집들의 넉넉하고 평평한 자리를 실눈으로 그렸다. 가마를 타고 시집와서 상여에 실려 마을을 떠나는 어떤 인생을 그렸다. 물을 건너는 것이 삶이었구나. 그 물을 건너다 말고 우리가 살아서 이렇게 보는가 싶어 살뜰한 건방을 떨었다. 무섬에 올 줄은 모르고 살았는데 누구 덕인가 싶어서 뙤약볕도 싫지 않다. 자꾸 전생 어딘가를 뒤지는 동작이 바쁘다. 여기 왔던 적이 있던가. 여기 살았던 누구였던가. 모래사장에 내려 물 가까이 휴대폰 카메라를 대고 사진을 찍어뒀다. 표정을 갖고 싶다. 나만 아는 여기 얼굴을 얻어다가 동그라미가 자꾸 생겨나는 날에는 거기 그 얼굴을 그려도 좋을 것이다. 더 그립지 않아도 괜찮은 것들이 물처럼 흘렀다. 아래로 흐르고 있었다. 이만하면 저 마을에 들어가도 될까요, 자꾸만 물어보는 나는 지금 여름이다. 밖에서 안을 기웃거리는 한 여름이다. 이 계절이 지나면 말없이 물도 지나리라. 서늘한 날에는 묻지 않고 곧장 오리라. 달이 빛나는 밤에는 울지 않고 내성천 시린 물에 빠지리라. 물이 흘러서 돌아오는 무섬에 그때 찾아가리라.

무섬에 다녀왔다는 말은 아무도 가난하게 만들지 않는다. 오히려 든든해서 기댈 만할 것이다. 내가 누린 자유에는 자랑거리가 하나 들어가지 않고 보릿가루에 물만 타서 두 번 흔들어 마시는 미숫가루 맛이 났으면 한다. 물을 건너봤다는 것이 어디 쓸 데나 있을까. 매미 소리도 심심한 곳을 걸었다. 걷다가 그 집 앞이다. 영주 무섬 가는 길은 신랑이 신부 보러 왔던 길이 있다. 어땠을까, 그날에도 여름꽃들이 만발했을 것이다. 무더기 피어서 대문에서부터 반겼을 것이다. 무섬 처가에 들렀을 젊은 시인은 얼마나 반듯했을까.

박목월은 지훈을 가리켜 '크고도 섬세한 손'이라는 아주 적절한 표현을 한 일이 있다. 그가 보여준 작품 노트는 아주 섬세한 시인의 손길이 그대로 묻어나는 것이어서 평소에 대범해 보이기만 했던 지훈에게 어떻게 이러한 꼼꼼한 구석이 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기기조차 했다. 온 나라가 그를 선비정신의 귀감으로 지성인의 사표로 받들 때도 그의 가슴속에는 아주 약하고 섬세한 고독의 정서가 잠들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운명적으로 타인 앞에서는 '크고', 혼자 있을 때는 '섬세한' 손이 될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 - 오탁번 詩話, 256p.

민족의 힘으로 민족의 꿈을 가꾸어 온 민족의 보람찬 대학이 있어. 너 항상 여기에 자유의 불을 밝히고 정의의 길을 달리고 진리의 샘을 지키느니 지축을 박차고 포효하거라. 너 불타는 야망 젊은 의욕의 상징아. 우주를 향한 너의 부르짖음이 민족의 소리 되어 메아리치는 곳에 너의 기개 너의 지조 너의 예지는 조국의 영원한 고동이 되리라. - 고대, 虎像 비문.

마흔일곱, 세상을 떠나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나이, 젊어서 그가 지은 문장은 이제 노래가 되어 울려 퍼지고 있다.* 거인 같았던 그를 다시 무섬에서 추억했다. 虎像 앞에서, 조지훈을 사모했던 내 젊음을 추억했다. 다 지나고 없는 물, 흘러간 물, 그 물 위에 떠 있는 섬. 나는 무섬에 와서 비로소····· 내 안에 가라앉은 것들과 내 밖에 떠 있는 것들이 나를 살게 한다고 고백할 수밖에 없었다.

* 부석사 무량수전


* 고대 응원가, 민족의 아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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