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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물처럼 Aug 05. 2024

浮石寺

거기 있다


올여름은 확실히 덥다. 확실히는 틀림없이 그러하게라는 뜻이다. 유의어로 분명히가 있다. 분명히는 틀림없이 확실하게라고 사전에 나와 있다. 분명 分明이란 말은 눈에 보이게, 알 수 있게 나눈다는 의미다. 확실 確實이란 말에 쓰인 확確은 분分에 해당하고 실實은 명明이 된다. 밝음과 열매는 생겨난 것이며 결과물이다. 그것이 있음이고 곧 그 자체가 얻음이며, 잃지 않고 얻는 것을 사람은 옳다고 본 것이다. 틀림이 아닌 것이다. 그래서 죽은 것을 틀렸다고 했던 것이다. 틀림없는 것이 살아 있는 것, 그것이 바로 존재이며 존재하는 것이다. 밝고 밝고 환하고 환한 것, 명명백백한 것이 사실이고 그것이 사실事實의 존재 방식이다. 살아있는 것, 사실은 언제나 뜨겁다. 식어버린 사실은 거짓보다 못하다. 거짓이 간혹 플라세보효과를 발휘하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생생한 여름, 7월 말에서 8월 초는 확실히 덥다. 창공을 날면서 알았다. 단양에 가면 평화롭게 하늘을 날아볼 수가 있는데 날이 더워서 땅이 뜨거워야 날개가 더 높이 난다고 그런다. 더우면 뜬다. 뜨거우면 난다. 내가 진실로 더워본 적 없고 뜨거웠던 적 없었다는 것을 내 비행飛行 이력이 증명한다. 날개를 가지고도 날지 않았던 삶이야말로 내 비행非行이었다. 오십이 넘어서야 처음으로 하늘을 날았다. 바보같이 너무 오래 걸렸다. 산이와 강이가 없었다면, 그러니까 자식이 없었다면 올여름에도 하늘을 날아볼 생각은 하지 못했을 것이다. 저 아이들은 나와 같지 않기를 바라면서 늘 바라보고 사는 탓에 하늘에 붕 떴다. 자, 하늘을 날아보자. 이만큼 늦어버린 내가 맨 먼저 떠오르기로 하고 너희는 그 뒤에 날아라. 그러나 더 멀리 오래 날아라.

浮.

올여름, 나는 물 위에 떴다. 허공 위에 떴으며 세월도 거기 동동 떠 있었다. 그때를 돌아보며 획마다 정성 들여 써볼 것이다.

오르막길 양쪽으로 은행나무가 싱그러웠다. 적당한 거리, 확실히와 적당히를 왼손과 오른손에 들고 단양과 영주에서 보낸 이틀 밤과 사흘 낮이 떠올랐다. 강이야, 은행나무는 서로 이렇게 마주 보며 자란다. 그래야 은행이 열리고 나무가 행복하단다. 은행나무가 줄지어 선 곳에 일주문이 보였다. 드디어 여기 왔구나. 부석사.

단양에서 북쪽으로 영월, 남쪽으로 영주, 이름들이 다들 예쁘다. 영주는 태백으로 일출을 보러 갈 때도 들렀고 소백에서 기지개를 켜고 해지는 것을 지켜봤을 때도 지났는데 그뿐이었다. 작심을 하고 영주에 왔다. 부석사에 왔다. 더 늦고 싶지 않은 것들 - 하늘을 날고 고수동굴을 걷고 무량수전을 보는- 을 챙겼다. 집에서부터, 아니 어쩌면 순천만 앞에서 새해 일출을 보는 와중에, 복잡한 인파 속에서 충청도를 지나 경상도 북쪽을 찾아가는 나를 예약했는지도 모른다. 일주문을 지나 사천왕을 지나 사진으로만 봤던 그 건물이 거기 있었다.

어느 해인가, 카톡에 사진 하나를 올리고 친구가 여럿에게 물었다. 여기 어딘 줄 아는 사람? 첫눈에 거기가 부석사인 줄 알았다. 가본 적 없는 곳이었지만 너무나 거기였다. 그밖에 다른 곳은 하나도 떠오르지 않았다. 부'석'사'라고 답을 썼다. 그 대답에 대답은 '역시'였다. 문제를 낸 친구도 내가 거기 가본 적 없다는 것은 알지 못하고 지켜보던 다른 친구들도 그럴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부석사는 내게 그런 곳이다. 최순우 선생이 쓴 책,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그 표지를 볼 때마다 외톨이 같았다. 다들 좋은 데를 잘도 찾아다니는 것 같았다. 나만 못난 것 같아서 그 표지 사진이 싫으면서 좋았다. 누가 부석사 이야기를 하면 귀 기울여 들었다. 신경숙 작가가 부석사라는 소설을 썼을 때도 한 줄을 두 번씩 왕복해서 읽느라, 심술이 났다. 다른 사람들이 먼저 와서 다 봐 버리고 껍데기만 남을 것 같은 속상함이 있었다. 내가 가져다 쓸 것을, 내가 그리고 싶은 것을, 내가 품고 싶은 것을·····

좋았다. 浮라는 그 글자를 찾은 거 같았다. 부석사도 떠 있었고 돌계단도 얼마든지 떠서 흘렀다. 삼층석탑도 평범해 보였다. 평범해서도 아니고 내가 볼 줄 몰랐던 탓도 아니다. 다만 잘 떠 있어서 그것으로 됐다 싶었다. 봉황산 아래가 깊어 보였고 멀리 건너편 산들이 다도해 풍경 같았다. 범종루를 올려다보면서 안양루를 부끄러운 듯 바라보면서 그리고 무량수전 앞에서 입이 닫히고 여름인 줄도 잠시 잊었다. 됐다는 마음만 있었다. 여기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뭉게뭉게 일었다. 안양문으로 들어선 것이 다 올라서는 안양루가 되었다. 앞 모양은 극락으로 통하는 문, 뒤는 극락에서 마주한 첫 누각이었다. 기둥과 지붕으로도 사람의 심줄을 울린다. 내가 여기 와서 울릴 줄은 몰랐다. 그 뜨거움 그대로 극락세계, 무량수전에 들었다. 발이 부끄러웠어도 온몸을 접어서 바닥에 머리를 대고 절을 했다. 종교도 떠나고 부모도 잊고 다만 거기 있는 기둥이며 마루며 천장이, 다 지워진 단청무늬가 다른 것들보다 옳아 보였다. 옳은 것에 머리를 숙이고 할 수 있는 대로 바닥으로 물밑으로 가라앉고 싶었다. 이것이 부석이었구나. 꽃이 환했던, 여름꽃 부용이 색색으로 고왔던 들길이 떠올랐다. 마음 없이 마음이 머물 자리도 챙기지 않고 동동 떠서 구름이 되어도 좋은 것, 옳은 것들이 땀 흘리며 여름을 나고 있는 세상에 무량수전 기둥에 두 손을 대고 한없이 곱고자 하는 뜻, 나는 그만 허공 중에 사라질 것만 같다. 그래도 좋을 것 같았다. 먼 데를 바라보다 사라지는 원을 그렸다.

무엇이었을까. 까마득하게 모르는 눈동자들이 길을 밝히는 것 같았다. 한낮인데도 그 눈동자들은 수국처럼 몽글몽글하게 어울려서 어디까지나 사람들 눈 같았다. 별빛이나 달빛처럼 절 마당을 쓸고 가는 옛날 사연 하나가 우뚝 멈춰서 나를 돌아본다.

浮石寺

平生未暇踏名區 / 평생에 여가 없어 이름난 곳 못 왔다가

白首今登安養樓 / 백수가 된 오늘에야 안양루에 올랐구나

江山似畵東南列 / 그림 같은 강산은 동남으로 벌려 있고

天地如萍日夜浮 / 천지는 부평초 같아 밤낮으로 떠 있구나

風塵萬事忽忽馬 / 지나간 모든 일이 말 타고 달려온 듯

宇宙一身泛泛鳧 / 우주 간에 내 한 몸이 오리마냥 헤엄치네

百年幾得看勝景 / 백 년 동안 몇 번이나 이런 경치 구경할까

歲月無情老丈夫 / 세월은 무정하다 나는 벌써 늙어 있네.

김 병연, 삿갓 쓴 김립이 남긴 부석사를 다시 적어서 그와 그의 발걸음과 그의 눈동자를 함께 실어 띄어 보낸다. 우리는 만난 적 없어도 부석사에서 시름 한 사발 나눴다고 그때에 나도 적을 것이다. 울고 있는 것과 울리는 것들이 가득한 절을 내려오면서 첨벙첨벙 물에 빠졌다. 어떤 물은 눈물 같았고 어떤 물은 바다 海水 같았다. 두 물이 다 짜서 하나는 사람을 다른 하나는 세상을 띄운다. 부석사는 아픈 곳 없이 오래 이 언덕 위에 있어야 한다. 김삿갓이 안양루에서 영주를 바라보며 삼켰던 백 가지 마음을 고스란히 받아먹었던 팔작지붕이며 배흘림기둥은 이제 내 이야기를 들어줘야 한다. 살아서 줄을 이어 가는 여름날 오후가 사실처럼 빛난다. 소금쟁이 발끝에서 생겨난 인연이 동그랗게 번져가는 화엄華嚴이 거기 있다. 길 양쪽으로 은행나무가 한창 사이가 좋아 보인다. 확실히 여름은 덥다. 살아 있는 것들이 죄다 한 뼘쯤 떠 있다. 잘 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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