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 가는 길에 벚나무는 건달 같이
거기는 그런 길
전주에서 군산 가는 도로를 전군도로라고 불렀던 시절이 있었다. 전주에서 나고 자란 나에게는 아직도 그 이름이 다정하게 들린다. 이제는 번영로라는 이름으로 다시 불리는 그 길이 우리나라에서 처음 깔린 포장도로였다는 사실, 말 그대로 신작로였다는 것을 어른들에게 듣고 자랐다. 일제 강점기에 쌀을 수탈해 가기 위해 근 40Km 가까운 도로를 만들었다는 것도 그리고 일본 놈들은 뭘 하나 만들어도 야무지게 만든다며 손바닥에 침을 뱉어가며 열을 올리던 아저씨들.
그 길이 벚꽃 백 리였다. 그 길을 구경하러 일찍 장사를 접는 아버지가 있다. 기억나지 않는 꿈처럼 그날 나는 어쩌다가 아버지와 그 친구분들을 따라 여기에 왔을까. 몇 살이나 먹었을까. 아버지는 하루만 쉬었다. 그 하루도 정해진 것이 하나 없이 그냥 어느 날, 지금 생각하니 그런 날이었을 것이다. 몸보다 마음이 힘든 날. 어째서 사람은 부모를 잘 모른 채로 어른이 될까. 아버지는 낭만도 추억도 사랑도 없는 줄 알았다.
전주가 고향인 나는 이 길을 아낀다. 이 길을 지나다니면서 사계절을 맞는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이 길에서도 곧잘 펼쳐진다. 벚나무 하나만 있어도 세월 하나는 충분히 그려낼 수 있다. 세월이 거듭 쌓이면 생이 되고 거기에 입김을 불면 나비 한 마리가 날개를 펴고 날아오르지 않던가. 나비의 날갯짓이야, 언제든 인생이란 글자를 빼닮았지. 가을에 저 길에 내려 볏단을 태우는 들판에 서 있었다. 탄 내가 다 스며드는 내가 보기 좋았던 날, 전라도 사람인 것이 어쩐지 시큰 올라왔다. 이 들판의 향기가 나면 이 들판 사람으로 살겠구나. 그게 흔적이겠구나.
계절 속을 걸었다.
전군도로를 따라가다 만경강으로 접어든다. 강이 좁아지고 넓어지면서 마주하는 풍경과 그 풍경 앞에서 해가 지는 저녁은 꼴딱 죽을 것처럼 예쁘다. 그대로 선유도까지 달려갈 것만 같아서 질식한다. 좋은 것도 대충 그,쯤,에, 서, 멈췄으면 싶어질 때 해가 다 지고 주위가 사르르 허물어진다. 꽃이 열매를 맺지 못했구나. 그 꽃을 불꽃이라고 부르고 만경강 물소리를 가만히 듣는다. 어디 망해사 쪽으로 갈까. 밤새 걸어가 볼까. 망설이는 사이, 누군가 많이 생각난다. 거기는 그런 길이다.
꽃이 피면 그릇을 굽는,
이름에 여름이 들어간 여자는
꽃이 지면 그릇을 담아,
겨울을 마음에 그리는 여자다.
죽은 아이를 달처럼 보듬고 사는 여자는
말을 다 놓아버리고 자기도 잃어버린 여자다.
내 상상은 절대로 현실이 되지 못할 것이다. 그런 것만 골라서 꿈을 꾼다. 안녕, 하루 낮 밤을 통째로 내게 내어준 그대, 따뜻하고 뜨거운 헌신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