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복종 / 한용운
남들은 자유를 사랑한다지마는 나는 복종을 좋아하여요.
자유를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당신에게는 복종만 하고 싶어요.
복종하고 싶은데 복종하는 것은 아름다운 자유보다도 달콤합니다.
그것이 나의 행복입니다.
그러나 당신이 나더러 다른 사람을 복종하라면 그것만은 복종을 할 수가 없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복종하려면 당신에게 복종할 수 없는 까닭입니다.
침묵(沈默)이란 말이 어울리는 사람입니다.
나와 비슷한 또래가 아니어도 누구나 한 번쯤 들어본 적 있을 그의 시, 님의 침묵에서 떠올리는 모습이겠거니 할지 모르지만, 나는 아무래도 '만해'그러면 고요한 강원도 山寺에 소리 없이 내리는 젊은 눈송이가 떠오릅니다.
힘없이 쓸쓸히 내리는 눈이 아니라 크고 작약꽃처럼 탐스럽게 굵게 내리는 그런 눈입니다.
힘 있는 말없음, 젊은 침묵을 나는 그의 어디에서 봤던 것일까요?
스물여섯이면 자기의 삶에 어떤 기대를 품고 있을 때일까?
분명히 나도 그 나이를 지나왔었는데 이제는 그런 시절이 있기나 했었는지 모든 것이 희미하기만 합니다.
1905년이면 깊은 산속에 아직 호랑이라도 살고 있었을 시기입니다.
백담사까지 찾아가 머리를 깎는 생때같은 스물여섯을 나는 무어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헤어질 때 돌아보지 않는 것은 너무 헤어지기 싫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헤어지는 것이 아니라 같이 있다는 말입니다.’
그의 인연설因緣說에 적혀 있는 글입니다.
진실로 사랑할 줄 알고, 사랑하며 살고 싶었을 그의 가슴에 침묵 두 글자는 참으로 형벌과도 같은 운명이었다고 감히 그보다 백 년 뒤를 살아가는 나는 위로합니다.
복종하고 싶은데 복종하는 것은 아름다운 자유보다 달콤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어느 만큼 좋고 예뻐 보여야 이런 마음이 저절로 찾아올까요?
복종이란 말을 세상에 태어나서 이처럼 멋스럽게 마주친 적은 없었습니다. 세상에 사랑이란 꿀 같은 단어에 복종이란 말을 어쩌면 이렇게 근사하게 끌어다 놓을 수 있었을까 하며 감탄했던 적이 나에게도 있었습니다.
처음 이 시를 접했을 때가 한참 사춘기를 지나는 학생 때였으니까 얼마나 많이 인용하고 싶었겠습니까?
연애편지 같은 것이라도 쓸라치면 으레 편지 중간쯤에 슬쩍 끼워놓고 제멋에 겨워 즐거워했던 시절이 있었다고 고백합니다.
어떻게 살았는지 모를 시간들이 나를 지나갔습니다.
그동안 어디에 뒀는지 찾은 적도 없던 시를 우연처럼 오늘 만났습니다.
역시 시는 늙지 않습니다. 늙으면 시가 아니라고 누군가 그랬었는데, 그 말이 실감 납니다.
‘당신에게는 복종만 하고 싶어요. 자유를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당신에게는 복종만 하고 싶어요.’
시가 외워지는 것이 아니라 그대로 고백이 되어 흐릅니다.
마치 제 곡조를 견디지 못한 거문고 줄이 투명한 밤공기 속으로 터질 것만 같습니다.
이제 당신을 떠올리는 일은 푸른 핏줄이 먼저 알아보고 챙깁니다.
선명하고 따뜻한 혈관은 그대가 앉아 있는 객석을 향해 달립니다.
심장을 울림통으로 하여 곡을 연주하기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