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할 것 없어도
"나또 사가는 사람들 이해가 안 되더라고요."
아침을 준비하던 아내가 어떤 아주머니가 그러더라고 이야기를 꺼낸다. 그런데 자기도 나또를 좋아하게 됐다고, 그 집은 식구들이 다 나또를 먹느냐고 궁금해하길래 자'랑'처'럼' 답했단다. 좋아한다고.
사실 아내는 나또 먹은 지 반년이 채 되지 않은 신참이다. 반면에 아이들은 학교 들어가기 전부터 먹었으니까 어림잡아도 6년은 족히 지났다. 고참처럼 아이들이 엄마가 나또 먹는 것을 거든다. 나또는 잘 비벼야 한다고 가르친다.
아침에는 거실에 음악이 흐른다. 특별할 것 없는 FM 라디오 방송이다. 사람이나 동물, 생명 있는 것들은 모두 편안한 자리가 어디인지 안다. 그 자리에 머문다. 그 자리는 공간일 수도 있으며 시간일 수도 있고 향기 같은 것이나 바람 부는 감각일 수도 있다. 나는 음악이 필요했었던 것이다.
어떤 음악이라도 믿음이 가는 것은 그동안 함께 보낸 세월의 공이다. 켜켜이 쌓인다는 말이 시처럼 발화하는 순간이 날마다 한 번씩 내게 도착한다. 그와 같은 아침에 네 사람이 지구의 한 점에서 나또를 하나씩 비비는 것이다.
"강이야, 아기 다루듯이 살살, 그것이 더 잘 비벼져."
먹을 만큼 먹었는데, 중고참들에게 뭔가를 알려줄 때 왕고참은 분위기를 살필 줄 알아야 한다. 그런 면에서 나는 군대 타입은 아니다. 산이가 강이가 집안의 서열을 따질 때면 내가 반박하는 말이 있다. 아빠가 하라면 하고 가자면 가야 하는 저희들이야말로 넘버 쓰리, 넘버 포라면서 아빠가 왕이라고 까분다. 내가 꺼내는 말, '왕이 설거지하냐?'
할 말이 쏙 들어가는 녀석들 목구멍이 훤히 다 보일 정도다. 밥알 씹는 소리가 양쪽 귀로 다 들리는 것이 어떤 날 아침 식탁의 풍경이었다면 오늘은 조금 우스웠다. 순전히 강이 때문이다.
간이 잘 됐다면서 무 생채가 어떠냐고 아내가 재촉했다. 맛있다는 말도 맛없다는 말도 거의 하지 않고 먹는 사람이 나다. 어떤 질문은 온기가 있어서 사람을 따뜻하게 하고 그 따뜻함으로 사람 사이에 싹이 트기도 한다. 나도 좀 변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나도 고마운 것이 무엇인지 알기에 입가에 도는 웃음을 다 감추지는 못하고 '맛있네' 그랬다. 그 순간 6학년 강이가 내게 써먹는다. '아빠, 아기 다루듯이 살살 다뤄.'
머리를 말리면서 자리에 앉는 산이는 왜? 뭐 때문에 웃냐면서 나또 포장을 벗긴다. 아내는 강이에게 늘 당하는 내가 고소했는지 아니면 그런 강이가 대견한지 흡족해한다. 아이고, 우리 강이. 연신 감격해한다. 밥을 먹자는 것인지, 뭐 하자는 것인지. 나는 쑥국에 나를 만다. 좋아하는 사람을 보고 멀리 돌아갔던 날이 쑥국에 비췄다. 향기가 돈다. 좋을 때 나는 페로몬은 사람을 너그럽게 만든다. 봄이 이만하면 좋은 것 같아서 또 웃음을 지었다. 밥이 살갑다. 산이 오빠한테 강이는 또 써먹는다. 이제 자기 것이 됐다면 좋아한다. 아빠가 그랬어, 배워서 남 주라고, 그래야 자기 것이 된다고.
산이도 천천히 나또를 비빈다. 아이들이 오늘 또 자랐다.
바쁘게 아침을 먹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초등학생과 중학생을 배웅하며 내 하루가 시작한다. 거룩한 설거지가 내 처음 일과다. 나또를 먹은 그릇들은 뽀드득 소리가 날 정도로 깨끗하게 닦인다. 주방 세재를 쓸 때마다 누가 이 아이디어로 제품을 내놓으면 대박 날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맑은 물기가 똑똑 떨어진다. 사람은 밥 먹은 만큼 쌓아 올린다. 무엇을 쌓을 것인지, 그것이 무엇인지 나는 궁금하다. 그리고 부탁한다. 내 신념 같은 것이 아니기를, 그것은 믿음이기를. 사람들을 번거롭게 하고 모이게 하는 외침이 아니라 사람들이 차분해지고 제자리로 돌아가는 속삭임이기를. 밥을 잘 먹으면 사람이 나아진다. 순전히 밥심이다.
그래서 내가 살아온 것은 전하고 싶지 않다. 나는 추억처럼 공중에 흩어지고 뒤에 남은 것은 이야기로, 밥 먹었던 이야기로.
봄이 배를 동동하고 두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