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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류작가지망생 Jun 09. 2024

엽편소설 ; 가스실 생존기

 나는 발끝을 세우고 어둠 속에서 흘러내리는 작고 동그란 빛을 입에 물었다.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알림 소리가 들려왔다. 어디서 들어오는지도, 그 정체도 모를 가스가 기도 속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왼손으로는 두 콧방울을 세게 붙들고 오른손으로는 주둥이와 빨대 사이를 빈틈없이 움켜쥐어야 했다. 눈을 감고는 호흡을 길게 늘어뜨려 작은 구멍으로 숨을 들이켰다.

 '일, 이, 삼......' 나는 속으로 되뇌면서 숨을 길게 내뱉었다.

 개 같은 곳에 얼마나 갇혀있었는지는 잘 모른다. 유일하게 외부와 연결된 이 빨대를 물고 버틴 게 대충 열흘 정도 되었으니 이 주일은 더 됐을 것이다

 '일이삼공, 일이삼일, 일이삼이......'

 방에서 일체 빛은 찾아볼 수 없고 낮시간대에만 빨대 구멍을 통해 들어오는 옅은 햇빛이 전부였다. 처음 이곳에서 눈을 떴을 땐 알람 소리가 무엇을 의미하는 건지도 모르고 소리를 지르며 발길질을 하다가 가스를 들이마시고는 쓰러졌다. 그러고 나면 흐릿한 정신 속에서 어느샌가 머리에 봉투가 씐 채로 구타당하고 있었다. 이걸 두세 번쯤 반복하고 나니 몸이 알아서 첫 알람 소리 전에 일어나 빨대를 물게 되었을 뿐이었다.

 '이구구구, 삼공공공, 삼공공일.....' 오늘의 첫 휴식을 알리는 소리가 울렸다.

 가스가 모두 빠져나갈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아주 살짝 눈꺼풀에 힘을 주고는 실눈을 뜬다. 따갑지 않은 것을 확인하고 나면 코를 붙잡은 왼손을 벌려 아직 냄새가 남아있는지 확인한다. 냄새를 확인했으면 마지막으로 둥글게 말아쥔 오른손을 살짝 풀고 빨대와 입꼬리 사이의 작은 틈새로 방 안의 공기를 조금 들이마셔본다. 이 모든 과정을 거치고 나서야 몸을 움직일 수 있었다.

 '일, 이, 삼......'

 나는 가스가 모두 빠져나간 것을 확인하고서 빨대에서 입을 떼었다. 그래도 아직 빨대를 떠날 수는 없었다. 간절하게 기다리던 시간이다. 그래, 지금이냐, 아니냐, 아직이냐, 입술을 오물조물거렸다. 두 손으로 벽을 짚은 채로 빨대 구멍을 쳐다보았다. 좁고 깊은 통로 속에서 톡 하고 물방울이 하나 떨어졌다. 지금이다.

 '이일이, 이일삼, 이일사......'

 빨대를 물고는 있는 힘껏 빨아들였다. 차가운 냉수가 목구멍으로 흘러 들어왔다. 목젖 언저리에서 느껴지던 모래 알갱이 같은 이물감이 씻겨 내려갔다. 다섯 모금쯤 삼키자 급수가 끝났고 다시 빨대에서 옅은 빛이 나왔다. 한 모금만 더, 딱 한 모금만, 아쉬운 마음에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있는 힘껏 빨대를 빨아들였지만 바람만 새어 났다.

 '이오사, 이오오, 이오륙......'

 발바닥이 욱신거려 그대로 자리에 쓰러졌다. 누군가가 발가락과 발꿈치를 잡고서 서로 반대방향으로 쥐어짜는 듯한 고통이었다. 한참을 주무르자 고통이 차츰 가라앉았다. 빨대의 위치에서 의도적인 악의가 느껴졌다. 한 치의 의심의 여지도 없이 엿 먹으라고 만든 숨구멍이다.

 소변이 마려워졌다. 지금 비워두지 않으면 분명 다음까지 참지 못할 터였다. 나는 벽을 더듬어 자리를 잡고 바지를 내렸다.

 방구석에는 머리 하나 간신히 들어갈 법한 사각형의 구멍이 있었고 그 안에서는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깊은 곳에서부터 악취가 올라왔다. 변기의 존재를 몰랐을 땐 그냥 아무 데나 오줌을 갈겼다가 알람도 없이 방출된 가스에 정신을 잃었다. 한 번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빨대를 문 채로 소변을 보는데 갑자기 빨대 구멍이 막혀 숨을 쉴 수가 없게 된 적도 있었다. 망할 녀석은 말 한마디 없이 '맞는 행동을 할 때까지 구타는 반복된다'는 것을 체습 시켰다.

 '오륙칠, 오륙팔, 오륙구......

 다음 가스 알람 소리의 예상시간에 맞춰 미리 일어나 빨대 앞에 섰다. 육백 십일의 숫자에서 알람이 울렸다. 발끝을 세우고 왼손으로 코를 막고 오른손으로 빨대를 말아 쥐었다.

 '일, 이, 삼......'

 처음 며칠간 아무 저항도 하지 못하고 내리 기절만 하다 보니 이후에는 자연스럽게 초를 세고 있었다. 하나 둘 셋으로 세다가 백 단위가 넘어가니 머릿속에서 숫자가 꼬여 단위를 생략한 일 이 삼으로 세기 시작했고, 또 며칠이 지나니 머리로 헤아리는 초 단위의 정확도가 높아져 평균값의 오차범위가 줄어들었다.

 '구구팔, 구구구, 일공공공......'

 종종 숫자를 세다 보면 중간에 잡생각이 끼어들었다.

 어떤 놈이 그런 걸까. 이유가 뭘까. 어떻게 해야 빠져나갈 수 있을까. 놈이 앞에 있다면 어떻게 패 죽일까. 이 상황이 언제까지 반복되는 걸까. 내가 죽으면 끝날까. 제일 간편하게 목숨을 끊는 방법은 뭘까. 혀를 깨물어도 쉽게 죽진 않는다던데. 방 안에 옷감을 말아 걸 수 있는 곳이 있나. 정수리를 중심으로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빙글빙글 돌아다녔다.

 '비슷한 게 있었는데 뭐였더라.'

 이름을 떠올려보지만 희미하게 아른거리기만 했다. 개미와 관련된 단어였다. 개미는 페로몬을 따라 집으로 돌아가는데 그 페로몬이 끊어지면 선두의 개미는 후발대의 페로몬을 돌아가는 길의 정보로 오인하는 일이 발생한다. 선두의 개미가 잘못된 페로몬을 뿌리며 걷고 행렬 사이로 끼어들면 이후 모든 개미들이 서로의 페로몬을 쫓아 죽을 때까지 나선형으로 도는 행위를 말하는 단어였다. 개미, 나선, 소용돌이, 토네이도. 이런 느낌의 단어였다. 그런데 왜 이 단어를 떠올리고 있었나 되짚어보니 잡생각 때문이었다.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을 잊고 있었던 것 같았다.

 '내가 몇까지 셌더라.'

 초를 세는 것은 단순히 초 단위가 정확해지는 것 이상의 효과가 있었다. 얼마나 더 까치발로 서서 빨대를 물고 있어야 하는지 가늠할 수 있다는 것은 돌아오는 휴식시간까지 버티는데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도 큰 안정감을 제공했다.

 불안해지자마자 다시 발바닥 경련이 일어나 그대로 고꾸라졌다. 코와 입으로 가스가 들어오자 바로 숨을 참긴 했지만 의미는 없었다. 가스가 유발한 기침에 기도가 완전히 열렸고 의식이 점점 흐려졌다.

 누가 왜 나를 여기에 가두고 이런 짓을 하는 걸까. 놈이 눈앞에 있었다면 죽기 직전까지 팼을 것이다. 그다음에 이유를 말하면 살려주겠다 하고는 이유를 들은 뒤에 최대한 천천히 고통스럽게 죽였을 것이다. 어떻게 하면 후회하며 죽어가게 할 수 있을까. 손톱과 발톱을 빼내고 관절을 하나씩 부러뜨려볼까. 정수리를 중심으로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빙글빙글 도는데 그 사이로 단어 하나가 번뜩였다.

 '아, 앤트밀.'

 감긴 눈꺼풀 위로 흰색과 회색, 빨간색 혹은 파란색 그 경계선 어딘가에 있는 멍울들이 퍼져나가며 빙글빙글 둥글게 돌기 시작했다. 빙글빙글 나선 모양으로 계속 돌고 있었다. 동그랗게 빙글빙글 돌아갔다. 빙글빙글.....


 초를 세면서 알아낸 건 일종의 패턴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가스는 딱 아침부터 오후까지만 방 안으로 흘러들어왔다. 평균적으로 가스가 들어오는 시간이 삼천 초, 가스가 빠져나가는 시간이 육백 초. 얼추 오십 분의 가스 배출과 십 분의 휴식시간이 반복되고 있었다. 가스는 하루 동안 총 여섯 번이 배출되었고 네 번째 배출과 다섯 번째 배출 사이에는 십 분이 아닌 한 시간 정도의 휴식이 주어졌다. 휴식시간에 종이컵 두 컵 정도의 물이 빨대를 통해 들어오고 네 번째 휴식시간에는 미음 같은 것이 흘러나왔다.


(미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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