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의 건강 검진 - 한 번이면 충분했었는데 멍청하게도 진료 시간을 오전에서 오후로 착각하는 바람에 한 번 더 쓰고 말았다 - 과 과민성 복통으로 인한 오전 반차가 지금까지 사용한 연차의 전부였다. 다음 달 26일까지 남은 여덟 개 하고도 절반의 휴가를 모두 사용해야 했다. 그래서 별 일은 없었지만 그냥 사용했다.
침대에서 한참을 미적거리며 집 주변의 새로 생긴 카페들을 검색해 보다가 벌써 두 시가 넘었길래 일단 무작정 씻고 밖에 나왔다. 목적지가 없을 때의 발걸음은 늘 똑같다. 빌라 옆 화단에서 담뱃불을 붙이고는 생각한다. 어디를 갈까. 지도 어플을 켰다가 정신을 차려보면 유튜브 영상을 보며 낄낄 거리다가 결국 끝내 목적지를 정하지 못하고 자리를 뜬다.
원래는 따릉이를 타고 개천을 따라 교보문고를 갈까 했다. 핑계는 아닌데 너무 덥다. 조금만 열감이 돌아도 땀이 줄줄 쏟아지는 태음인의 몸뚱이로, 게다가 검은색 티셔츠를 입은 날에 자전거를 타고 31도의 열기를 가로지른다라. 분명 얼마 가지 못해 등에는 하얀 산수화가 그려져 있고 앞머리가 갓 떠내려 온 미역 줄기처럼 이마에 널린 지독한 페로몬 덩어리가 되어있을 것이었다.
정수리가 조금씩 뜨거워지는 것을 느끼고는 바로 인근의 카페로 피신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라지 사이즈를 시킨 뒤 창가에 자리를 잡았다. 불과 지난주까지만 하더라도 외투 차림이었던 사람들이 반팔 반바지로 거리를 활보한다. 이제 진짜 여름 시작이구나, 나는 빨대를 입에 물며 생각했다.
오랜만이었다. 평일 오후의 어찌 모를 자유. 유튜브를 보다가 또 오랜만에 글을 쓰고 싶어 져서 가방에서 태블릿을 꺼냈다.
그게 여기까지였다. 넉 대의 담배와 한 번의 화장실, 삼십 분 가량의 딴짓을 거쳐 두 시간 동안 작성한 문장이 말이다. 이상했다. 글을 쓴다는 것이 지루했다. 예전에는 괴롭기는 했어도 지겹게 느껴지지는 않았는데, 해가 떨어진 줄도 모르고 문장을 다듬어가던 사람이 이제는 미뤄뒀던 방청소처럼 등허리를 질질 끌다 마지못해 몸을 일으키고는 집어 담는 것처럼 글을 쓰고 있다.
분명 아직까지도 나는 글에 뜻을 가진 사람인 것 같은데 작가는 한낱 꿈일 뿐이라는 생각인 건지, 아니면 애초에 그럴 재목이 되지 못한다고 여기는 것인지, 지금 이 글을 쓰는 와중에도 문장들을 대충 구석에 밀어 넣고 있다. 다섯 시간짜리 영상은 집중해서 보면서도 고작 A4 한 장 짜리는 채우기 버거운 문학적 죽음에 다다른 것인가.
원래 시-세이를 시작했던 의도와는 달리 새롭게 시를 쓸 의지도 없어 전에 썼던 시를 가져왔다. 장문을 마무리하면서 '잃어버린 길 위에서'와 어떻게 어우러질 수 있을까 고민했었다. 굳이 억지로 연관 지을 필요가 없었다.
나는 이미 그 길 위에 서 있다. 시에서와는 달리 애석하게도 한 줌의 연민도 없는 방향으로 서 있다. 밤눈도 어두우면서 눈꺼풀이 닫힌 채로 빛을 좇아 더듬으니 어쩌면 나는 내가 잃어버린 것이 아닌 내가 잊어버린 길 위에 서 있는 것이다. 나는 빨대를 물고서 절반쯤 남은 커피를 한 번에 빨아들이고는 자리를 정리했다.
따릉이에 올라타 교보문고로 향했다. 29도의 공기를 가로지르니 등이 축축하고 앞머리가 젖어간다. 개천을 따라 잊어버린 기억들이 떠오른다. 커피 한 잔 값도 아까워 머뭇거리던 지리한 순간들이 스친다.
그렇다. 그게 뭐 대수라고. 땀 좀 나는 게 뭐 대수라고 핑계 삼았던 걸까. 일단은 갖고 있어야 잃어버리는 법인데 손에 쥐어 본 적도 없으면서 잃어버렸다는 듯 여겼으니 얼마나 멍청한 자기 연민인가. 온몸이 땀범벅이 되어 간다. 오랜만에 찾아온 불안 속 자유가 오늘로 끝이 나더라도 결코 잊으면 안 되는 사실이 있다. 인정하기 싫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