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또 글을 쓰고 있는 걸까. 분명 삼 년 전에 절필을 했다. 매년마다 글밥 먹고사는 꿈을 잘라내고 찢어내도 매년마다 플라나리아처럼 다시 자라났다. 정신을 차려보면 어느샌가 카페에서 글을 쓰고 있다. 잦은 퇴사와 맞물려 일어나는 현상은 사실 플라나리아보다는 악성 종양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애석하게도 작년에 제거했던 종양은 올해에 다시 재발했다.
나는 다시 소설을 썼다. 제대로 쓰기 시작한 건 23년 11월이었다. 소설은 이제 갓 5만 자를 넘겼고 일수로는 15일이 걸렸다. 퇴사한 건 6월이었으니까 나는 고작 하루 평균 삼천 자의 분량을 간신히 짜낸 15일, 그리고 이와 무관한 약 160일가량의 의미 없는 5개월을 흘려보낸 것이다.
의미 없는 기간이라고 했지만 정확하게는 계속 글을 쓰긴 했다. 조금씩 그냥 떠오르는 것들, 내가 쓰고 싶은 것들, 쾌락적이고 즉흥적인 것들. 나는 글을 쓴다는 행위 자체로 안도했다. 나는 여전히 글을 쓰고 있어, 그리고 아직 글을 쓸 수 있어, 마음만 먹으면 금방 쓸 수 있어, 더 먼 길을 수월하게 가기 위한 수단이고 지금은 칼을 벼르는 중이라 생각했다.
수술 후 재활치료처럼 반복되는 글에서 성장이라도 체감했던 걸까. 그 안도감은 자신감이나 성취감이 아니라 무딘 불안감이고 현실도피였다. 결정적으로 깨달은 순간은 올해의 소설에 작년의 단편을 끼워 맞추던 때였다. 플롯의 발전도 없으면서 관성적인 표현들이 반복되었지만 나는 올해도 안도감을 느끼고 있었다.
퍽 좋은 말이다. 글을 쓰면 안도감이 든다니. 짤고 단단하게 단련한 결과물이라고 생각한 글의 파편들은 사실 나의 무책임함 속에서 길바닥에 널어진 사생아들인 것이다. 그런 줄도 모르고 여태껏 나는 결심만 하면, 상황만 주어지면 멋진 자식을 낳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거였다. 그게 악성 종양의 원인이었는데 말이다.
그래서 나에게 위안이 되는 글쓰기를 그만두기로 했다. 글에 대한 악성 종양이 발견되기 전, 그러니까 절필을 결심했던 삼 년 전의 처절하고 간절한 글쓰기로 돌아갔다. 바로는 바뀌기 어려우니 매일 조금씩 개선해 나갔다. 식단 관리처럼 정확하고 일정하게, 운동처럼 부지런하고 꾸준하게.
여전히 아직 잘 지키지 못하고 있고 2023년은 다 지나갔지만 이 일기 같은 수필에서부터 새로운 시작을 선포하려고 한다. 매년 비슷한 시기에 돌아오는 검강검진이 필요 없게 되기를 바라며.
- 2023.12.31 작성 -
글짓기의 병세가 악화된 시점에서 이전에 썼던 글들을 회고하다가 알게 되었다. 내가 이런 다짐을 했나. 나는 관절이 굳은 매끈한 손가락으로 정수리를 더듬었다. 종양이 부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