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머문 단어, ‘이루어지다’
패기 넘치게 주오일 운동을 해보겠다던 때와는 다르게 요즘엔 등록해놓은 단체 트레이닝 수업에 잘 나가지 않고 있다. 운동 자체는 너무 필요하고 좋다고 느껴지는데 단체 운동이니 늘 손목이나 발목에 무리가 오는 운동을 하게 되고, 한 주 열심히 그렇게 운동한 다음 주면 어딘가 크게 고장 났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실제로 발목 같은 곳이 이상하게 아프지만 억지로 운동에 갔을 때, 달리기나 제자리 뛰기 같은 운동을 하려고 하면 발이 땅에 닿는 소리가 거칠게 느껴지는지 천천히 하라거나 자세를 바꾸라는 지시를 받는다. 내 무게를 내 두 팔이나 두 다리로만 버티는 게 아직 난제인 상황에 탈이 나지 않아도 이상한 일. 그리고 선생님이 하는 말들에 모두 대답하고 싶지 않은데(종교적인 이야기, 본인 신념 이야기 등 정신을 교육하려는 듯한 이야기가 너무 많은 편) 대답을 강요하시기도 하고, 대상을 가리지 않고 너무 많은 사연을 들려주는 것도 걸림돌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아주 긴 변명일까? 하지만...
오늘도 9시 운동을 가야 한다는 사실을 마치 잊은 것처럼 느지막이 일어나 해야 할 일을 하고 있었다.
나는 원래 시계나 장신구를 전혀 착용하지 않는 사람이라 애플워치에 관심이 없다. 또 핸드폰의 모든 알람을 몸에 밀착된 기계로 받는다는 사실이 굉장히 피곤하게 여겨져서 구매할 생각이 없었다. 손목에 오는 알람을 확인하는 상대방의 행동을 살짝 피곤하게 느낄 정도이니 말 다했지. 하지만 지난여름부터 걷기나 수영, 단체 트레이닝 등의 운동을 꾸준히 지속하다 보니 운동할 때는 운동 기록용 장치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연스레 하게 되었다. 그래서 서울시에서 여기저기 홍보물을 붙여둔 운동용 스마트워치를 신청했고 그걸 받아둔 지 며칠이 지났다.
이제 날도 풀리고 이제 다시 밖을 걸어보려는 심산이라 예전만큼만 걷는다면 역시 잘 쓰겠지 하며 놀고 있던 워치를 차고 산책에 나섰다. 하루에 8천 보를 걸으면 포인트가 쌓인다는데 실은 하루에 5천 보 걷기도 쉬운 게 아니다. 예전에 파주로 직장을 다닐 때에도 하루 5천 보 정도 걸으면 많이 걷는(?) 수준이었으니까. 지난 여름부터 겨울이 오기 전까지 저녁이면 으레 천변이나 한강으로 나섰던 것처럼, 습관처럼 별생각 없이 나가야 되겠다 싶었다.
목표도 생겼고 날씨도 괜찮은 편이고. 오랜만에 이렇게 해가 슬슬 떨어지려는 오후 시간대에 한강변을 걸으며 노란 햇살이 비추는 강을 떠다니는 아기 오리들을 보니 기분이 사뭇 묘했다. 봄... 봄이 오고 있구나. 집 밖을 나오기 전에 설거지를 하면서 문가영 배우의 '왓츠인 마이 백' 영상을 봤는데, 그가 본인의 공책에 ‘오늘 꽂힌 낱말’ 같은 걸 적고 그에 관련한 생각을 적는다는 이야기를 했다. 본인이 얼마 전 꽂힌 낱말은 ‘선택’이었다고 하면서. 그래서 그런지, 쏟아지거나 흘러가거나 스치고 있거나 다가오거나 하는 봄을 바라보다가 이런 게 바로 ‘이루어지는 것’이구나 했다. 괜히 '이루어지다', '이루어지고 있다' 등의 단어를 몇 번씩 되뇌며, 오가다 턱하고 걸리는 어떤 단어들에 조금은 더 머물러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요며칠 나는 ‘발견되고 싶다’는 감각의 끝을 이으려 노력하고 있다. 지난 금요일에 친구와 나눈 인터뷰 속 벗어날 수 없는 결론처럼, 발견되려면 밖으로 나가야지, 존재를 드러내야지,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잘 말할 수 있어야지 하며 배짱 좋게 답을 내본다. 또 괜히 이런 나를 그 누구나 좋아할 봄 같은 것에 굳이 가져다 대며, 혹시 나도 이루어지고 있나? 하는 질문을 했다. 그렇다면 역시 환영할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열심히 걷는다고 걸었지만 왠지 오늘의 목표를 달성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치만 그게 뭐 큰 문제겠어. 내일도, 내일 모레도 또 멀리의 모레도 있으니 괜찮다. 무엇보다 해가 지려니 슬슬 더 추워지고 있어...! 날이 풀리는 요맘때가 딱 감기 걸리기 좋은 시즌이다. 조심 또 조심. 나의 건강, 나의 몸, 나를 구성하는 모든 부분을 아끼는 마음은 많으면 많을수록 더 좋은 것이라고 (여전히) 믿는다.
걷기를 마치고 실내에 들어와 보니 핸드폰 피트니스 앱에서는 목표를 이미 초과 달성했다며 축포를 쏘고 난린데, 워치에는 3천 보도 못 걸었다고 뜬다. 내가 받은 이것... 연동이 잘 안 된다는 단점을 가졌구나... 에라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