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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르 May 03. 2019

사람 사이를 연결시켜주는 커피

나의 커피 일대기

 나는 커피에 미쳤었다. 집 안 사정이 되어, 많은 사람들이 바라는 유학의 길목에서 나는 우연히 커피와 마주하게 된다. 그게 벌써 6년 전의 일이다. 내가 아르바이트를 하던 카페에서 나는 커피의 세계에 눈을 뜨게 된다. 어떻게 검은 액체가 하나 같이 맛이 다른지... 이런 신비로운 향은 도대체 어떻게 나는 지 너무 궁금했다. 도서관에서 토플 공부를 하던 중, 나는 잠시 쉬는 시간을 이용해 도서관의 커피 잡지를 봤다. 한국에 유일하게 있는 바리스타학과가 있는 대학교. 나는 그 잡지를 본 순간부터 몇 날 며칠 머릿속에서 그 대학교가 떠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곳은 사회에서 잘 인정해주지 않는 전문대. 나는 유학이 결정된 나의 길목에서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주도적인 선택을 내린다.

 집 안의 반대는 극심했다. '취미로 해도 충분한 걸 왜 배우겠다고 그곳에 가냐며' 부모님은 나를 설득시키려 하셨다. 나는 집 안의 눈치가 보이고 많은 쓴소리를 들었지만, 이미 커피라는 유혹에 홀린 나는 내가 그냥 좋아하는 것을 하기 위해 결단을 내린다.

 

 학교에 들어간 첫 수업... 수업이 이렇게 재미있던 적이 있던가? 공부가 이렇게 재미있는 거였나? 하루 종일 수업을 들어도 지치질 않았다. 모든 것에 열정이 가득했고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학교의 로스팅 기를 만지기 위해 아무도 없는 시간 새벽 5시에 일어나 용인에서 방배역까지 등교를 했다. 단지 수업 1시간 전에 가서 커피를 로스팅하고 싶다는 이유였다. 남들은 나를 보며 미쳤다고 했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않는 그 들이 미친 것 같았다. '어떻게 이렇게 매력적인 커피를 보며 미치지 않을 수가 있지? 미친 거 아냐?'라는 생각이었다.

 나는 학교에 입학했을 때 2가지 목표를 세웠다. 첫째 학교를 다니는 도중 나만의 카페를 만들기, 둘째 우리 학교 학생을 직원으로 쓰기. 가끔 나에게 '그렇게 2가지를 목표를 잡은 이유가 있나요?'라고 묻는다. 나의 대답은 간단하다. '그냥 내가 하고 싶으니깐.' 나는 이 두 가지 목표를 이루기 위해 밤낮으로 이리 뛰고 저리 뛰었다. 부동산 계약을 했다가 취소하기도 하고, 교수님과 함께 뭔가를 하려다가 어그러지기 일 수였다. 나는 우여곡절 끝에 친구와 작은 작업실을 차리게 되었다.

전동 칼디 로스터기

작업실에 이 작은 가정용 로스터기를 두고 원두를 납품하고자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미치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한 번 원두를 넣고 로스팅을 하면 약 250g의 원두가 나온다. 보통 원두 납품은 1kg 단위로 진행이 되는데, 1kg을 하기 위해서는 4번의 로스팅이 필요하다. 1번의 로스팅에 약 15~20분이 걸린다. 그럼 1kg을 하기 위해 약 1시간이 넘게 걸린다는 소리다. 1kg에 약 50~60잔의 커피를 내릴 수 있다. 상상이 되시나? 보통 한 번 주문을 하면 3kg, 그럼  약 4시간 정도를 로스팅을 해야 했다. 로스팅 후 쿨링, 포장, 주위 청소 등 여러 작업이 있었다. 그럼 3kg의 주문이 들어오는 날에는 하루 반나절을 날려야 했다. 그럼에도 나는 이곳저곳 영업을 다녔다. 문전박대를 당하기 일 수였지만, 꾸준히 한 결과 작은 업체 3곳을 2개월 만에 잡을 수 있었다. 그렇게 2개월이 지나, 나에게 생각지도 못한 기회가 왔다. 나의 원두를 받던 미용실에서 2층에는 미용실 1층에는 카페를 하려 하는데, 내가 운영을 해줬으면 좋겠다는 제안이었다. 나는 바로 흔쾌히 수락했다. 이유는 단 하나, 내가 꿈꾸는 나의 카페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간간히 커피 능력 향상을 위해 대회들도 참가했다. 커피 대회 프레젠테이션을 하고 있는 중이다.

 학교와 카페 오픈을 준비하며 하루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게 살았다. 오픈을 1달 앞두고 제안이 들어온 것이었기에 더욱 정신이 없었다. 다행히 내가 커피의 매력에 빠진 카페에서 어깨너머로 배운 카페 컨설팅 수업으로 인해 1달 안에 어찌어찌 카페를 완성할 수 있었다.

 그렇게 탄생한 곳이 모완10 카페였다. 나는 이 곳의 월급쟁이 사장이었다. 아쉽게도 위치와 인테리어, 카페 명칭은 내가 선택할 수 없었다.(지금 생각해도 명칭과 인테리어가 너무 아쉽다...) 이미 3가지는 다 선정이 되어있는 상태였다. 그럼에도 나는 나의 목표를 이뤘다는 사실에 너무 행복했다.

 하지만 행복도 잠시 생각만큼 카페는 잘 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쉬운 부분이 많지만... 그때 당시에는 커피라는 악마에 빠져있어, 경영이라는 측면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아쉬움을 뒤로한 채, 늦게 국가의 부름을 받아 군대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로부터 약 2년 후 나는 브런치라는 사이트를 알게 되었다. 이 곳에 글을 쓰고 싶었다. 이유는 단지 멋져서다. 브런치에는 아무나 글을 올릴 수 없다. 오직 브런치에 작가로 선정된 자들만 글을 올릴 수 있다. 나는 브런치에서 말하는 작가라는 칭호가 끌렸다. 나는 생전 내가 글을 쓰는 사람이 될 것이라 생각해보지 못했다. 하지만 작가라는 칭호는 탐났다. 그래서 나는 5수 끝에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

 원래 나는 브런치에 커피 관련하여 글을 쓸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나를 자꾸 좌절시키는 브런치 작가 심사팀? 에 의해 나는 나의 가장 주력 무기인 커피로 승부를 볼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 5수째 나는 무엇을 주제로 할까 하다가 요즘 내 주의에서 많이 물어보는 카페 창업을 소재로 떠올렸다. 기왕 글을 쓰는 거, 내가 아는 정보로 남에게 도움을 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카페 창업 글을 썼다. 그 후 이렇게 작가라는 칭호를 받았다!


 브런치 작가가 되지 않아 얼마 후 나에게 브런치에서 제안 메일이 하나 날아왔다. 지금 생각해도 이게 참... 신기한 일이었다. 이때 내 기억으로는 브런치에 3개 정도의 글을 올린 시점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나는 카페 창업 칼럼을 연재하는 사람이 되었다.

나는 '핀업 스타터'라는 곳에서 카페 창업 칼럼을 연재하는 사람이 되었다. 아니 되었었다. 이젠 아니라는 소리다... 필력이 부족한 관계로 아쉽지만 얼마 전에 잘렸다. 하지만 나의 인생에 있어 큰 터닝포인트가 되었다. 다시는 커피를 하지 않을 거라는 나에게 새로운 프랜차이즈 카페 사업 모델을 만들고 싶다는 목표를 주었다. 칼럼을 연재하는 기간 동안 나는 다양한 사람을 만났다. 그 다양한 사람 중, 대부분은 카페를 창업하고 싶어 하는 40~50대 분들이었다. 나는 그분들과의 만남을 통해 그분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내가 선택하게 된 새로운 목표는 40~50대 분들이 정년퇴직 후, 제2의 인생의 새로운 막을 열 수 있는 프랜차이즈 카페를 만드는 것이다.

 

 나는 커피를 통해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나는 커피를 좋아한다는 것이다. 내 뜻대로 커피 맛이 나오지 않아서, 한 때 커피를 싫어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때 일뿐 언제나 나는 분위기 좋은 카페와 맛있는 커피를 찾는다. 나의 인생에서 이제 커피가 절대 빠질 수 없게 되었다. 커피를 통해 나는 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만나고 나누었다. 나에게는 커피가 사람과 사람을 연결시켜 준 매개체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사람과 사람을 연결시켜주는 커피라는 매개체가 좋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처음 사람을 만날 때 빠지지 않고 하는 말 중 하나가 '커피 한 잔 하실래요?' 다. 이것 자체가 커피는 단지 기호식품을 뛰어넘어 사람 사이에 인연을 만들어 주는 마법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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