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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쏭쏭작가 Aug 15. 2023

잔인한 현실에 대한 삶의 태도  

드라마 '인간실격'은 내 마음의 거울이자 친구이자, 위로였다.

40대는 이상한 나이다.

젊음에서 나이 듦을 신체적으로 또 사회적 관념으로 느끼기 시작하는 나이이고,

지금까지 몰랐던 삶과 나 자신에 대해 아주 희미하게 알게 되는, 다행스러운 시기이다.  

또 앞으로의 긴 삶을 준비해야 하지만, 그에 반해 얼마 남아있지 않은 나의 에너지를 어떻게 채워야 할지를 고민하는 시기다.


좋다고도 나쁘다고도 할 수 없는, 말 그대로 사십춘기.  


나는 지금 사십춘기를 겪고 있다.

결혼과 육아의 표준화된 삶이 아니어서 가끔 더 심하게 이 시기를 보내고 있는 거 같다.  

자의 반 타의 반 사회적 동물로써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껴야 하고

때때로 불필요한 도전정신도 끌어올려야 한다


몇 년 전에 방송한 '인간 실격'이라는 드라마가 있다

전도연, 류준열이 출연한 드라마인데, 나는 이 드라마를 좋아한다.

아마도 전도연이 연기한 '이부정'이란 인물이 나이 듦을 경험하며 표현하는 회의, 상실감, 슬픔을 같이 느꼈기 때문인 거 같다.


이부정은 책이 좋아서 출판사에서 책을 만들고 먼 훗날 막연하게 자기가 쓴 책을 꿈꾸며

설사 아무도 안 읽는 책이더라도 자기가 그린 미래의 모습을 위해 한 걸음씩 걸어온 사람이다.  

뭔가 대단하게 성공하지 않았어도 내가 어렸을 때 꿈꿨던 것, 한두 개 정도는 이룬 그런 삶을 바랐다.


딱히 뭐라고 큰일이 있지도 없지도 않았지만,  

이부정은 아빠에게 "도대체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지금까지 아무것도 아니었다"라고 눈물을 흘린다.


뭔가 이뤘어야 하는데, 지금쯤 나는 달라야 할거 같은데, 이상하게 어디서부터 그랬는지 모르지만

한 발자국씩 조금씩 다른 곳으로 와버린 것처럼 그렇게 와보니 나는 어느덧 다른 곳에, 아예 탈선해 버린 기차가 되어있는 거 같았다. 그래서 다시 돌아가야 하는데, 그땐 이미 많이 지쳤고 또 어디로 가야 할지, 어느 세월에 이 길을 다시 돌아갈 수 있을지, 한숨이 나온다.  


드라마에서 류준열은 바르게 살고 싶어 발버둥을 치는 20대의 남성이다.

남들에게 지기 싫어 다르게 살지만, 틀리게는 살고 싶지 않아서 발버둥을 친다.  

일찍 돌아가셨지만 언제 아버지를 만나면 나 이렇게 잘 살았다고 칭찬받고 싶다.

그렇지만 녹록지 않은 현실과 상황에 가끔 '막살자' '막 가자'라는 젊은 나이의 치기도 부린다.

발버둥을 백번 정도 해도 결국 제자리인 자신의 모습을 본 날, 류준열은 "아무것도 내 것이 아니라는 생각에 외로웠습니다."라고 독백을 하며 눈물을 흘린다.


뭔가를 가져야, 뭔가를 이뤄야 숨을 쉴 거 같았던 이 두 명은 매일 같이 현실을 도피하고 싶은 마음으로

현실을 부인하며 살아간다. 그리고 가끔 불쑥불쑥 잔인한 현실을 대면하던 그때, 이부정은 열심히 돌리던 다람쥐 쳇바퀴를 그만 돌려야겠다고 다짐한다.


한평생 남에게 그리고 자식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으려 노력했던 이부정의 아버지가 돌아가신다.

죽는 그 순간까지 조금이라도 뭐라도 해서 자식에게 도움이 되려고 했던 아버지다.

힘드니깐 박스 주워 다니는 거 그만하라는 이부정의 말에 아빠는 "세상에 쉬운 일이 어디 있니? 너 하는 일은 쉽니"라고 오히려 이부정을 다그친다. 그렇게 한평생을 하루하루 바르고 성실하게 살아온 아버지 인생을 통해, 이부정은 인생은 무언가 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무엇을 하고 있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을 조금씩 느끼기 시작한다.


무엇이 되었는지, 무엇을 가지고 있는지가 아니라

무엇을 하고 있는지, 어떻게 하고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


아직 나도 이부정처럼 과정보다 결과에 더 매력을 느낀다.

하루하루 조급함을 느끼고, 지친 몸을 다그치며, 변화하지 않은 결과에 답답해한다.  

어떻게 하는지에 상관없이 좋은 결과를 얻고 싶다. 그리고 그 결과가 남들이 다 선망하는 것이기를 바란다.  

하지만 희망의 환상에서 벗어나, 너무나도 사실적인 현실을 당면할 때 슬픔과 박탈감이 덮친다.


그래도 조금은 성숙해졌는지, 이젠 이 슬픔과 박탈감은 오고 가는 것이고, 나를 찾아왔을 때 담담하게 두면 된다는 걸 안다. 머리로는 그렇다. 가끔 내리는 비처럼 담담하게 바라보며, 내리는 비와 젖은 땅보다, 우산의 감사함으로 어서 오세요.라고 맞이하고 싶다.  


"어서 오세요, 우산도 있고, 집도 튼튼해서 걱정 없습니다.

머물다가 떠나고 싶을 때 돌아가셔도 됩니다.

저는 제게 주어진 일을 하겠습니다."  


드라마에서 이부정은 비에서 개인 맑은 날처럼 다시 책을 만드는 일을 한다.

본인이 좋아하는 작은 것부터 조금씩 순간을 좀 더 집중하며 예전과 똑같지만 다르게 살아간다.

이부정은 슬픔을 다루는 방법을 조금 더 알게 됐을까.

나는 지금의 '내가 하고 있는 것'에 더 집중하고 있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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