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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쏭쏭작가 Mar 08. 2024

과정을 즐긴다는 것

과정의 힘듦과 결과의 조급함은 점점 줄어들고 그 자체를 즐기게 된다.

지난 주말 집 근처에 있는 관악산을 올랐다.


작년에는 매주 오를 정도로 자주 갔던 산인데 추운 겨울 날씨로 한동안 못 가다가 서서히 날씨가 풀려 올해 들어 처음으로 올랐다. 최소 스무 번 넘게 가던 길이 다 보니, 이젠 길도 뻔히 다 보인다. 어디쯤 가면 벤치가 있어 쉴 수 있고, 어디가 가장 가파른 곳이어서 조심해야 하는 것까지 안다.


그러고 보니 작년 처음 산을 오르기 시작할 때와 비교해서 많은 부분이 달라졌다. 체력은 둘째치고 산을 오를 때의 마음이 달라졌다.


처음 산을 오를 때에는 정상에 도착했을 때만 기뻤다. 산 초입에서는 '아, 또 한참을 가야겠구나, ' '정상까지 갈 수 있겠지?'라는 각오와 초조함이, 중간지점에 들어서는 '힘들다, 빨리 정상이었으면 좋겠다' '인생 참 쉽지 않네'라는 푸념 또는 '할 수 있어'하는 다짐으로 머릿속이 가득 찬다. 그러다 드디어 정상에 도달하면 '와, 해냈다!' 라며 성취감을 느꼈다.


그런데 이 과정이 반복되다 보니 초입에서 느꼈던 부담과 정상에서의 성취감은 조금씩 적어지고, 그 대신 오르는 과정에서 느끼는 담담함과 설렘이 더 커졌다. 숨이 턱까지 차서 들숨 날숨을 쉴 때마다 배가 들어갔다 나갔다 하는 순간, 살이 빠지는 거 같아서 신이 났고, 웬만해서 땀이 나지 않는 얼굴에 땀방울이 맺힐 때는 뿌듯했다. 또 몇 달 전에 없었는데 새로 생긴 계단길과 낡은 안내 표지판이 새것으로 바뀐 것을 볼 때면, 나만 아는 것 같아 뿌듯했다. 산을 오르다가 다람쥐나 까치를 만나면 지난주에 만난 그 아이들인가 하는 우스운 생각을 하는 여유까지 생겼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 힘들고 집으로 돌아가고 싶고 그만두고 싶은 마음은 순간이며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거라는 것을 알고, 그런 나의 마음에 내가 그려러니 하게 된다.




과정의 힘듦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결과의 조급함이 줄어들며 그 자체를 더 즐기게 된다.


과거 순간의 힘듦에 온 신경이 쏠리고 예민해져 지나가는 사람을 쳐다볼 여유조차 없었다면, 지금은 이 순간이 하나의 퍼즐조각처럼 아주 작은 부분이라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아, 다리가 아픈 구간이 됐구나,' '어 오늘은 숨이 덜 차네.' '숨이 차지만 조금 있음 가라앉는 것을 알아.'라는 생각을 하니 지금의 이 순간을 크게 받아들이지 않게 되고 어느덧 나의 신경은 다른 데로 분산되어 옆에 지나가는 다람쥐와 계곡물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나무의 풀 냄새를 맡는다.  지금의 순간을 너무 크게 생각하지는 말 것. 이것은 이제 나의 하루에도 적용된다.  


매일 출근하고 퇴근하고, 집에 와서 운동하고 책 읽고, 투두 리스트를 지워가는 하루가  가끔 그 자체만으로 부담과 피로로 다가올 때가 있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나."라는 생각도 한다. 하지만 옛날과 지금의 내가 다른 점이 있다면, 하기 싫고 놀고 쉽고 쉬고 쉽은 마음까지 전체 인생에서  퍼즐 조각 같은  일부분이라는 것이다. 그것을 인정하고 나니, 회사 업무의 부담, 피로, 운동하기 싫은 마음, 티브이 보고 누워만 있고 싶은 마음들이 오히려 담담하고 당연하게 여겨지고, 신기하게도 덜 힘들게 느껴진다. 물론 여전히 눕고 싶고, 책상보다 침대가 좋다. 여전히 퇴근 후 보는 넷플릭스는 달콤하며 퇴근 후 나의 소중한 2-3시간을 1시간으로 만들어버리는 마술을 부린다. 하지만 이런 마음이 드는 것이 당연하고 또한 곧 지나가며, 조금 애를 써서 운동을 하고 책상에서 책을 읽는 것이 더 나를 즐겁게 하는 소중한 조각이라는 것을 안다.


인생은 소중한 과정의 퍼즐조각으로 이루어져 있다. 구태의연하고 뻔하여 새로울 것 없는 이 문장을, 남들이 꼰대라고 말하는 나이의 언저리가 되어서야 진정으로 깨닫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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