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는 자기혐오와 염세주의로 파멸한 요조 이야기.
예전에 다자이 오사무의 [사양]을 읽었다. 그 당시 [인간실격]을 읽으려 했다. 우리나라에서 다자이 소설 중 가장 많이 알려진 소설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서평을 읽어보니 내용이 우울했다. 그래서 [사양]을 읽었다. 하지만 [사양] 또한 우울했다. 한동안 우울해 다자이 소설을 멀리하였다. 하지만 항상 출판사 블로그, 서점에서 그의 얼굴과 책이 보였다. 멀리하려 했지만 머릿속에 항상 남아있다. 그러다 번역가로 활동하고 계신 이웃님의 블로그에서 [인간실격]을 만나게 되었다. 번역을 하면서 웃기도 울기도 하셨다는 글을 읽었고 “소설이 마냥 우울하진 않나 보다.”라는 생각을 하였다. 이웃님께서 예전에 번역한 책을 재미있게 읽은 기억이 떠올랐다. 자극적인 내용은 아니었지만 난 좋았다. “아마 이웃님이 번역을 잘하셔서 그랬겠지.”라는 생각을 했다. 이번에도 완독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읽기 시작하였다. [사양]보다 더 우울하다는 평이 많지만 우울이란 감정뿐만 아니라, 다른 감정도 느낄 수 있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말이다.
요조를 보며 한심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남들보다 예민하고 여린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 생각했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주위 환경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더욱이 예민하고 마음이 여린 사람들은 특히 중요하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사회는 요조 같은 사람들을 선호하지 않는다. 답답하고 정신이 빠져 보이는 그를 누가 좋아할까? 하지만 요조와 같은 사람들을 이해하고 함께 해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독특하고 창조적인 일을 해낼 수 있다. 그들은 평범한 사람들이 보지 못한 것들을 발견하고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예민함, 여린 마음은 어떻게 관리하며 살아야 하는 걸까? 세상은 거칠고 험해 예민함, 여린 마음을 유지하고 표현하며 살 수 없다. 살아가려면 본인을 지지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이런 사람이 몇이나 될까? 결국 본인이 변하고 이겨내는 수밖에 없다. 매일 괴로워하며 무기력하게 살면 그 끝은 죽음뿐이라 생각한다. 죽으면 괴로움을 느낄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 요조 같은 사람은 뻔뻔해질 필요가 있다. 스스로 “이래도 되나?”라고 생각할 만큼. 나의 순수함과 예민함을 받아 줄 사람이 없다면 보란 듯이 “니들은 둔하고 멍청해”라며 자기중심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 많이 외로움을 느끼겠지만, 요조처럼 파멸하는 것보단 낫다. 요조가 학생 때 마음속에 품었던 화가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으면 했다. 자신 있게 그렸던 그림들을 세상에 보여줬으면 좋았을 텐데. 그랬으면 조금이라도 다른 삶을 살지 않았을까? 결국 파멸한 요조가 안타까웠다.
자신을 구원할 수 있는 방법은 자신에게서 찾아야 된다. 요조는 요시코를 통해 새로운 삶을 찾으려 했다. 특히 인간에 대한 신뢰를 얻으려 했다. 순진무구해 보이는 요시코를 보며 말이다. 하지만 요시코는 무너지고 만다. 이 사건을 통해 요조는 완벽히 파멸하고 만다. 희망마저 버린 것이다. 자신의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타인의 도움을 받는 것도 중요하다. 그렇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본인”이다. 변화의 주체가 본인이라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 많은 도움을 주는 조력자도 조력자일 뿐이다. 항상 자신이 주도권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조력자가 변하고 떠난다 해도 살아갈 수 있다. 그렇지 못한 인간은 요조와 같은 실수를 하게 된다. 명심해야 된다. “자신에 대한 변화, 결정은 본인만이 할 수 있다.”
요조가 쓰네코에게 느낌 감정에 대해 공감되었다. 객관적인 미의 기준으로 쓰네코를 보면 매력적인 사람은 아니었다. 오히려 불쌍하고 초라해 보이는 모습이다. 하지만 요조에겐 아니었다. 어느 여성보다 매력적인 사람이었다. 그랬던 이유는 본인과 같은 처치가 같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처음 이성을 만났을 때 외모가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을 부정할 순 없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외모는 처음처럼 큰 역할을 하지 못한다. 오히려 공통된 취향, 가치, 생각 등이 중요해진다. 요조가 아름답지 못한 쓰네코를 매력적으로 생각한 이유도 이 때문일 것이다. 자신과 같은 처지라는 동질감을 느낀 것이다. 살면서 자신과 비슷한 사람과 함께하는 것도 행운이라 생각한다. 물론 요조와 쓰네코처럼 서로 악영향을 주는 관계는 끝내야 된다. 서로를 위해.
책을 읽으며 계속 요조가 안타까웠다. 끝없는 자기혐오와 염세주의에 빠져 결국 파멸하고 마는 그가 안타까웠다. 한편으론 대학생 때 나의 모습이 떠올랐다. 당시 모든 것에 실패했다며 자기혐오와 염세주의에 빠져 생활했다. 산다는 것 자체가 불행하기 때문에 모든 것이 다 부질없고 사람이란 존재가 무섭고 귀찮게 생각되었다. 이때 내가 느끼고 생각한 감정이 요조의 마음일 거라 생각한다. 사람의 감정은 행복, 기쁨만 있지 않다. 우울, 슬픔, 분노, 혐오도 감정에 속한다. 살면서 행복, 기쁨보다는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는 경우가 훨씬 많다. 때문에 이런 부정적인 감정에 대해 알고 있어야 된다. 그래야 극복하며 살아갈 방법을 찾을 수 있다. 이런 면에서 인간실격은 좋은 책이라 생각한다. 파멸하는 요조의 모습을 보며 마음을 다잡고 열심히 살 수도 있고 옆에 요조와 같은 사람을 발견하여 도와줄 수 있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단순히 우울감만 주는 소설이 아니었다. 나에게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에 대한 질문을 줬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난 다시 한번 자기혐오, 염세, 허무주의에 빠져 요조처럼 파멸하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