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지인, <일하고 일하고 사랑을 하고>, 창비, 2022
내가 말하는 것
네가 말하는 것
아무도 아닌
우리가 위험을 감수하는 것
불가피한 존재
태어난 이래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들을 기회는 자주 있었고
혹시 질문 있습니까?
다음 이어지는
침묵과 자주 마주쳤다
몇십년이 지난 지금
세상이 많이 바뀌었다
신이시여, 멈추지 마소서
갈 길이 먼 순례자들과
무수한 실패작들
다 잊고 없던 일로 해요
알았죠?
결과 없음에 대해; 추운 겨울 길거리에서 벌벌 떨며 기타 치고 노래하는 너는, 십년 넘게 성실히 작업에 임했다. (생계를 이어가야 했기에 아르바이트를 하고 남 뒤치다꺼리를 하고 남는시간에) 결과를 내기 위해 거세게 몰아치는 십대와 이십대를 견뎠다. 『아뇨, 결과는 그런 것입니다』는 네가 구독하던 매거진의 100호 특별 부록 제목이었다. 거기에 「음악가의 음악」이 유명 아티스트에 의해 (250자 정도) 언급되었다. 나는 그 부분을 스크랩하여 밥상 유리 밑에 두었다. 무엇을 노래할 것인가, 밥 먹을 때마다, 무엇을 결과라고 할 것인가, 고민하는 네 표정을 내가 지켜보았다.
이제 실패하지 않겠다고 선언할 테야
형제들이여, 오늘부로 우리는 실패하지 않겠노라
원래 우린 실패뿐이잖아
목소리가 높아지고
자기 할 말만 떠들다가
흩어졌다
혼자 커피숍에서
마음이 상해서
너희는 정말 무례하구나 실패는 날 슬프게 하고 그것의 그물에서 벗어나려 할수록
더 엉키고 말았다
여기,
사람이 있다
너라면 현명하게 행동하겠지
그렇지 않다
나도 안다
꽃의 목이 바닥에 널려 있다
희디흰 목들
살아 있다면 언젠가 만나겠지
영혼이 떠도는 곳
나는 그냥
서 있다
그것들 사이
계속
서 있을 것이다
집이 엉망이라서 찾을 수 없는 물건, 매일 같은 시간, 같은 버스와 지하철, 같은 도보, 이년 동안 마주치는 옆집 사람
알은체하지 말 것
이사 가면 그리울 거야
너무 깊게 넣지 마 자꾸
헛구역질하잖아
사랑해
내 말 들었어?
나무늘보에겐 천적이 없대
살아남기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대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자고로 겨울은 추워야 한다
그래야 벌레들이 죽고
내년에 새 벌레들이 살 수 있다
죽기 전에 사랑을 나누는
벌레, 벌레들
“우리 서로 올인 해요.
초심을 잃지 말아요.
오늘 너무 좋았어요.
그 일은 제가 해결할게요.”
사람들 갑자기 뛴다 이유도 모른 채
나도 뛴다
여긴 어디지?
남산타워를 보면 네가 생각나
근무 시간에 슬쩍 빠져나와 담배를 태우는 네가 점심 메뉴를 고민하다가 통장 잔고를 헤아려보는 네가 여섯시 퇴근을 앞두고, 옆 사람과 대각선에 앉은 팀장 눈치를 보는 네가
집에 아무도 없어서 키우던 고양이를 두고 와서 아무에게나 전활 걸어 살아 있다는 걸 알리고 싶은 네가
제 나름대로 보통의
인간인 네가
생각이 나
엘리베이터
오층 할아버지가 한 손에 막대 사탕 가득 쥐고 다른 한 손으로 그것 중 하나를 쪽쪽 빨았다
자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어. 들어주겠나? 돌이켜 생각해보니 사소한 실수 때문에 청춘을 다 망쳐버린 것 같아. 이제야 깨달았다네. 모두 부질없는 일이었다는 걸……
문이 닫히고
나는 남겨졌다
엘리베이터가
지하로 향하는 줄도 모르고
그럴 수도 있겠다
미안해 미안하다고
넌 아주 기계가 됐구나
입만 열면 사과부터 하는구나
극단적이야
난 고개를 끄덕였고
(어떤 부분이 극단적이고
무엇이 극단인지 묻고 싶었지만)
계속 고개를 끄덕였고
또 딴생각했지?
두 손을 크게 휘저으며
반성하고 있었어
거짓으로
말했다
이것이 고생한, 아니
고상한 이야기였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