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절한 사랑의 결말은 아득하니 멀고도 지루하다. 그 사람을 어떻게 잊었는지도 모른 채 나이만 먹다 보니 30대 중반을 지났다. 연애의 애틋함은 문방구 앞 오락기처럼 이제는 그 재미를 온전히 느끼기 어려운 종류의 것이 되었다. 감정이 사라진 ‘아재’의 마음에는 확증편향이 남았다. 예쁜 여자를 만나려면 사회적 지위와 부가 있어야 한다든지, 그게 현실이라는 인터넷 글에 동조한다든지, 그런 생각으로 ‘나는 solo’를 보면 다르다. 매 기수의 초기 하이라이트는 자기소개인데, ‘사’자 들어가는 직업인지, 어느 대기업에 다니는지가 관심사다. 하지만 직업보다는 외모가 으뜸이더라. 직업만 좋다고 여자 출연자들의 호감을 얻는 건 아니었다. 잘 생겨야 한 번 더 눈길이 가고, 더 얘기하고 싶어 했다. 남자라고 다를까. 여자 출연자에게 갖는 호감은 외모에 비례한다. 노력해서 성취할 수 있는 것은 능력과 지위뿐인데, 실전 연애 앞에서 그건 대단한 게 아니었음을, 외모라는 태생적 우월함은 넘기 어렵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으며, 온라인 커뮤니티로 쌓은 자신의 편견을 무너뜨리는 것이 ‘나는 solo’의 첫 번째 재미다. 그런데 외모도 잠깐이다. 하룻밤이 지나고 남녀 출연자들의 대화가 진전되면 상황이 달라진다. 코드가 맞아 대화가 잘 통하거나,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줄 수 있다거나, 아니면 노력으로 호감을 얻어내거나 한다. 그제야 ‘나는 SOLO’의 본 재미가 시작된다. 내 연애의 기억을 불러오는 것이다. 내 얘기를 잘 들어주던 대학 후배, 알바하다 친해진 리액션 좋던 친구, 거래처 직원과의 썸들이 전두엽을 스친다. 나도 광수 같았고, 영철 같았다. 출연자의 행동은 나를 닮았고, 동기들끼리 수군대던 그 누군가를 닮기도 했다. 그래서 이건 엄친아들이 서로의 매력을 보여주는 순정만화 같은 다른 연애 방송과는 다르다. 뒷말과 섣부른 추측, 말실수, 의도와 다른 행동들, 오해와 자신을 구덩이로 몰아넣었던 사건들, 과거 우리의 교재 활동을 닮아서 귀가 쫑긋한다. 영숙과 상철이 얼마나 서로를 좋아하는지는 관심거리가 아니다. 그 옛날 대학 시절 수 많은 CC들이 가진 사랑의 농도 보다는 그들의 근거 없는 소문과 오해에만 귀 기울였던 것처럼. ‘나는 SOLO’는 연애를 하기 위해 아등바등하던 그 시절의 유치한 감정을 일깨운다. 지금 생각하면 별거 아닌 오해들인데, 그때는 세상이 끝날 것처럼 울고불고 싸우곤 했다.
-맨노블레스 2023년 1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