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무제 Mar 27. 2018

우울의 바다에서 침몰하다.

10번의 면접 탈락, 그보다 많은 서류 탈락, 끝없는 우울감

 배가 고프다. 하지만 뭔가를 먹고 싶지는 않다. 자고 싶다. 하지만 자고 싶지 않다. 지금은 그런 새벽이다.


 요즘 다시 우울의 바다에 잠들어 있다. 방금 타이타닉을 봤는데 바닷속에 침몰해버린 그 배처럼 나도 우울의 바다에 침몰했다. 정확히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10번 가까이 면접에서 탈락했다. 그리고 그보다 더 많은 숫자로 서류 탈락을 했다. 이제 한 달. 본격적으로 취업전선에 뛰어든 지 한 달이다. 나는 내가 굉장히 빨리 취업될 줄 알았다. 바로 면접을 보게 되고 바로 면접에서 뽑힐 줄 알았다. 하지만 세상은 내 생각보다 훨씬 더 까다롭고 어려운 놈이었다. 계속 탈락의 고배를 마시고 있다.

 오늘도 면접을 봤다. 다행히 면접은 부드러운 분위기였고 나쁘지 않게 마무리됐다. 조금은 기대해도 좋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느낌은 느낌일 뿐이다. 지금까지 면접을 본 결과 내가 면접에서 어떤 느낌을 받았든 좋았든 나빴든 뽑히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나의 기분을 믿지 않는다. 면접을 끝내고 역까지 천천히 걸어갔다. 그 걸어가는 시간 동안 우울해졌다. 면접을 보고 나면 세상에서 가장 우울해진다. 그리고 떨어졌다는 소식을 들으면 아무런 일도 하지 못할 정도로 침몰한다. 나름 대범하고 사소한 일에 신경 쓰지 않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나이지만 계속되는 면접 탈락은 나를 우울하게 만든다. 오늘은 그 기분을 더 배로 느꼈다. 면접을 끝내고 집에 와서 침대에서 쉰 후 간단히 밥을 먹었다. 얼마 전 사랑니 발치를 한 후 이빨이 너무 아파서 제대로 식사도 못하고 있어서 맛있는 것들도 못 먹고 있다. 더욱 짜증 나는 상황이다. 우울의 파도에서 아픈 이를 붙잡고 저녁을 간단히 먹었다. 김치찌개에 있는 두부를 으깨서 조심스럽게 씹어 먹었다. 그러다가 문득 굉장히 우울해졌다. 왜 두부를 먹다가 우울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우울함을 느껴 눈에 눈물이 가득 고였다. 얼른 두부를 삼키고 방으로 들어왔다. 침대에 가만히 누워있으니 참았던 눈물이 또르르 흐른다. 왜 그렇게 우울했는지 돌이켜 생각해보니 저녁 먹기 전에 어떤 곳에 추천을 받아 지원을 한 곳에서 연락이 왔다. 내가 자신들이 원하던 방향과 다르다는 통보였다. 나에게 이 소식을 알리기 위해 전화한 추천인은 미안해 어쩔 줄을 몰라했다. 나는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괜찮은 척을 했다. 감사하다는 인사말로 전화를 끊었다. 그 후 밥을 먹었다. 그래, 떨어졌다는 그 전화가 나의 기분을 더 침몰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사실 그렇게 원하던 곳은 아니었다. 힘들다는 얘기를 많이 듣던 곳이어서 되기를 원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난 지금 일을 하기를 간절했고, 추천의 기회가 닿아 지원했다. 원하던 곳이 아니었지만 면접조차 보지 않겠다는 통보는 나를 다시 우울하게 만들었다. 너무 우울해서 눈도 제대로 못 뜨고 눈물만 흘리다가 쪽잠을 잤다.

 원하던 연락이 아닌 연락으로 얕은 잠에서 깨어났다. 그리고 깨어났을 때 ‘아차’ 싶었다. 저녁잠을 자버려서 새벽에 잠을 자기 글렀다는 깨달음이었다. 그 결과 이렇게 우울한 새벽을 보내면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잠에서 깨어나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침대에서 뒹굴거리기를 한 다음에 헬스장을 갔다 왔다. 헬스장에 가서 찔끔찔끔 운동하고 돌아왔다. 늦은 밤 대단한 운동을 한 것은 아니지만 걸으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할 수 있어서 좋았다. 나는 걸으면서. 많은 생각을 하는 편이다. 걸으면서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 고민했다.

 현재 나는 본사에서 일하는 꽤 괜찮은 조건의 일자리에만 지원을 하고 있다. 큰 곳에서 제대로 된 시스템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나의 목표였다. 하지만 연달아 떨어지면서 나도 모르게 지치게 됐다. 지금도 구인 사이트에 들어가서 여러 곳에 지원하고 다시 입사지원서를 작성해야 하는데 그런 행위에 의미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무감각해졌다. 사실 지금까지 우울을 많이 느끼고 자신감도 많이 잃었지만 지치지는 않았다. 면접에 떨어져도 얼른 다른 공고를 보고 지원했다. 하지만 오늘은 지쳤다. 그냥 높은 곳이 아니라 낮은 곳 어디라도 지원해서 일하고 싶다. 그러다가 또 별 볼 일 없는 곳에 들어가서 일하면 스스로 자존감이 없어진 내가 그려졌다. 원하던 곳이 아니던 곳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어디에서 일한다고 당당히 못 말하고 있는 나 자신이 그려져 초라해졌다. 가장 좋은 방법은 오늘 면접을 본 곳에 붙는 것이다.

 이렇게 우울한 감정이 생리 전 증후군일까. 날짜를 보니 점점 다가오고 있기는 하다. 그래서 내가 정말 지친 것인지 생리 전 증후군으로 인해 우울해져 그런 것인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이런 날 그냥 술을 된통 마셔 만취하고 싶다. 편한 사람과 마시고 그 사람에게 하염없이 신세한탄을 하고 싶어 지는 밤이다. 하지만 술을 그리 술집에서 마신다면 돈이 많이 나오고 돈이 없는 나는 그 돈을 낸다고 또 스트레스를 받겠지. 그리고 이빨이 너무 아파 제대로 못 씹는 내가 술자리에 간다고 제대로 먹지도 못하는데 기분이 좋아질 리 만무하다. 오늘 있었던 자리도 우울하다고 안 갔는데 말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