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한 사람들이 다시 일어서는 과정에 대해
그냥 우울할 때 보면 짜증나지만 우울하고 의욕이 떨어지지만 지금 이 상태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욕망이 스멀스멀 올라올 때! 그 때 보는 드라마다. 바로 꽤 유명세를 탄 “중쇄를 찍자”다.
연신 감바레! 감바리마스!(파이팅, 힘내, 열심히 하겠습니다) 이런 말을 내뱉는 명랑한 주인공 쿠로사와 코코로를 비롯해 원하지 않는 영업부에 배정받은 후 늘 하루하루를 버텨내기만 하는 영업부 사원, 고인물이라는 소리를 듣게 된 노장 만화가, 10년째 만화 어시스턴트를 하고 있는 사람 등 여러 캐릭터가 등장한다.
제목답게 만화잡지를 발간하는 편집부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는데,
사실 이 드라마의 소제목이 있다. 물론 나만의 소제목이다. 몰라 내맘이야.
너무 긍정적인 사람을 보면 괜히 더 심산이 꼬일 때가 있다. 사람은 부정보다 긍정을 유지하기가 훨씬 더 어렵다. 나의 장점보다 단점을 찾기가 훨씬 더 쉽고, 감사함보다는 불평 불만을 내뱉기 쉽다.어쩌면 인간 본연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늘 플랜B를 생각한다(아니 사실 최악의 사태를 상상하고 만다).
그렇기에 한 우물만을 파다가 결국 성과를 얻게 되지 못했을 때, 깊이를 가늠하지 못할 때, 또는 다신 우물을 파지 못하게 됐을 때 우리는 갈 곳을 잃은 신세가 되고 만다. 마음 속 깊이 구덩이를 파서 그 안에 들어가 있는다. 주인공 코코로는 원래 유도 국가 대표였다. 운동이 전부였던 코코로는 시합 중에 부상을 입었고 한동안 어쩔 줄을 모르다가 이전에 유도 만화를 통해 세계에 유도를 알리는 일을 고귀하다고 느낀 감정 하나로 편집부 취업에 도전한다. 하지만 늘 긍정파워 뿜뿜인 코코로만 놓고 보면 실패한 사람들의 모임이라 볼 수 없지.
정말 다양한 실패 사례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만화지망생들의 이야기가 심금을 울린다.
아 나는 고구마였구나, 라고 깨달아버리는 것. 또는 내가 힘차게 꽃을 피워 예쁜 꽃가게로 들어가 잘 팔릴 것만 같았는데 단순히 잡초에 그쳤다던가. 그런 만화지망생들이 나온다. 아가리에는 그림을 굉장히 잘 그리지만 자신만의 이야기를 그리는 게 어렵다. 그래서 콘티 짜는 것만 해도 거듭된 수정 요청을 받게 되고 데뷔용 원고를 완성조차 못하고 만다. 그러던 와중에 인기소설이 실사 영화화되면서 콜라보 기획으로 만화도 같이 연재하게 됐는데 그 만화의 그림작가를 해달라는 요청을 받는다. 이 신인을 발굴한 신인 편집자 코코로는 당신은 여전히 재능이 있고 분명 자신만의 스토리로 만화를 그릴 수 있다고 설득하지만, 제 풀에 지쳐버린 데뷔 직전의 신인 작가는 단행본 계약이 확정되어 있는, 어찌보면 어느 정도 흥행이 보장된 세상과 계약을 하고 만다.
자신의 힘을 시험해보고 싶다고 말하지만 사실상 자신의 힘을 믿지 못해 결정하게 된 계약이다.
신인들은 늘 자기 정도 하는 사람은 이 업계에 차고 넘친다고 생각한다. 자신은 진짜 만화가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가능성을 자꾸만 닫아버린다. 누가 크게 뭐라 한 것도 아닌데 스스로 주눅들어 있는 모습이 내 모습과 겹친다. 나 역시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일본어 잘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 내가 이 업계에 발디디고 살아남을 수 있을까? 괜한 짓을 하는 게 아닌가? 다시 신입으로 잘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아도 잔뜩 주눅 들어 있는데 사회(또는 회사)는 냉정한 지라 기회를 주지 않는다. 결국 아가리에는 단순히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지 만화가가 아니기 때문에 계속되는 무리한 요구를 받아들이며 소모되어 간다. 본인이 원하는 대로 그릴 수도 없었고 편집자와 대등하게 작품을 논할 수도 없었다. 깔아 놓은 레일을 달리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레일은 깔려져 있지 않았다. 아가리에는 철저하게 부품으로서 소모된다. 본인의 이야기가 아닌 남의 이야기를 그저 그림으로 그린 것이기에 말도 안되는 요청에도 응할 수 밖에 없었다.
누마타는 첫 신인상을 수상한 뒤 유명 작가의 어시스턴트로 들어가 정식 데뷔를 꿈꾸지만 10년을 데뷔하지 못한 채 치프어시스턴트로 지내고 있다. 그는 꿈을 좇는 사람이니 행복하다고 스스로를 다독여보지만 이미 자신의 길이 사라졌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할 만큼 했다고 10년간의 시간이 누군가는 헛짓거리라 할지언정 나는 가슴을 펴고 만화를 포기하겠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시간을 보냈다고, 그렇게 그는 꿈을 접었다. 누군가에 의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포기했다.
포기에도 자신의 결정이 제일 중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그 후회와 아쉬움은 평생을 갈 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 장면은 참 평범한 사람으로서 늘 마음이 쓰리다. 그리고 다짐한다. 나는 정말 할 만큼 해보고 할 수 있는 모든 걸 쏟아붓고 좌절한 것인가. 그리고 지금의 내 좌절이 정말 그렇게까지 거대한 것인가. 당연히 거대하지 않다. 우리 모두에게 서툰 시기가 있다. 분명 익숙해졌을 때 그 날을 잊어버렸을 뿐이다.
실패의 고통에 좀 젖어보고 싶을 때 이 드라마는 소위 짜증을 유발할 수도 있다. 만화 원작 드라마라 수용하기 힘든 명랑함, 연기도 그렇고 말이지. 그래도 중쇄를 찍자는 늘 나에게 진심으로 감바레!(힘내!)라고 말해주는 드라마다. 주인공들과 함께 웃고 실컷 울다 보면 다시 시작할 힘이 생긴다.
누군가 나를 우울해(海)에서 끄집어 내주길 바라는가? 또는 새로운 일을 시작해야 하는데 두려운가?
오글거릴 수 있지만 새로운 일에 첫 걸음을 내딛으려 한다면 코코로의 힘찬 응원이 당신에게 큰 힘이 되어 줄 거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