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민영의 한 솔로] 5화 어린 시절의 꿈과 현실의 거리
▲ 짙게 화장한 얼굴이나 그날의 시공간이 모두 꿈처럼 느껴졌다. ⓒ 게티이미지뱅크
"이쪽으로 오시겠어요?"
한 여성이 9박 10일도 버틸, 대용량 트렁크를 밀면서 나타났다. 직감적으로 큰일 났다는 위기감이 들었다. 푹신한 소파에 앉아 기다리던 나는 튕기다시피 냉큼 일어나서 그의 곁에 다가갔다.
화장대 위에 섹슈얼한 화장품 부대가 진을 치고 있었다. 나스를 중심으로 샤넬과 바비브라운, 그리고 용도를 알 수 없는 수많은 도구가 오와 열을 맞췄다. 겉으로는 화장품 부대와 기 싸움이라도 시작한 것 같지만 사실은 마주하기 두려웠다.
오르가즘, 러스터, 섹스어필. 이름부터 여성 혐오적인데다가 터무니없는 가격... 이것들을 아직 완전히 잊지 못했다.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한때 돈과 시간을 다 바쳤던 열정의 상대를.
본격적으로 화장이 시작되고 내가 할 일은 전혀 없었다. 그저 가만히 앉아서 눈을 떴다가 감기를 반복했다. 위로, 아래로, 이렇게 뜨라고 하면 이렇게 뜨고 저렇게 뜨라고 하면 저렇게. 부드러운 손이 소리 없이 분주하게 오가면서 얼굴 위에 화장이 한 겹씩 얹히고 있었다.
둥글고 커다란 브러시로 이목구비에 음영을 더하는 걸 끝으로 거의 한 시간이 걸린 화장이 마무리됐다. 결점은 지워지고 생기가 더해진, 거울 속의 낯선 얼굴과 마주했다. 오랜 시간 공들여 그린 눈썹은 원래 내 눈썹과 달리 너무 완벽하게 대칭이라서 되레 어색할 정도였다.
쇼트커트라서 모양을 내기 어려운 머리는, 왁스 한 통을 다 바른 듯 트렌디 드라마의 재벌 캐릭터가 할 법한 '쉼표' 형상이 됐다. 완성된 모습을 보자니 최선을 다했을 헤어메이크업 담당자가 조금 안쓰러웠다. 모델 사이에 껴있어도 인쇄 사고가 아닌 모양새로 만들기 위해 가진 능력을 아낌없이 나에게 발휘했다.
한 패션지의 요청으로 <운동하는 여자> 작가 인터뷰와 사진을 촬영하러 스튜디오에 간 날, 나는 뜻하지 않게 새로 태어났다. 이미 4~5년 전인 페미니즘 대중화 시기에 머리를 짧게 자르고 화장을 그만두었기 때문에 짙게 화장한 얼굴이나 그날의 시공간이 모두 꿈처럼 느껴졌다.
따지고 보면 그건 꿈이기도 했다. 10대 시절에 비슷한 꿈을 꾼 적이 있다. 적성 검사지에 장래 희망을 '작가'라고 적으면서 떠올린 이미지 속으로 들어간 셈이었다.
잠시 대기하는 중에 엄마를 떠올렸다. 그 순간 엄마가 나를 봤다면 '그러게 미리 준비했어야지' 하고 나무랐을 것이다. 날씬하고 예쁜 모습으로 세상에 나설 준비를. 엄마는 작가가 예쁘면 책이 더 주목받을 텐데 여태 잘만 꾸미다가 갑자기 노력하기를 멈춘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면서 덧붙인 주장은 내가 주짓수 때문에 점점 못생겨졌다는 거다. 역도까지는 양해할 수 있으니, 그 이상한 운동(주짓수라고 부르지도 않았다)은 그만두는 게 어떻겠냐고 틈만 나면 설득을 시도했다. 나의 엄마는 딸이 책을 썼을 때보다 51킬로그램일 때 훨씬 더 자랑스러워했다.
한번은 무더운 여름에 엄마와 대형마트에서 장을 보는데 어떤 중년 여성이 불쑥 다가온 적이 있다. 나는 슬리브리스 원피스 차림이었고 그 여성이 대뜸 '몸매가 끝내준다'고 말했다. 그때 엄마의 얼굴에 번지던 자부심 넘치는 미소를 아직도 잊지 못한다. 나를 대신해 "그럼요, 새벽마다 수영하는 걸요"라고 의기양양하게 대답했던 것도.
엄마는 특히 나의 기다란 목을 좋아했다. 어떤 옷을 입더라도 너는 목 덕분에 태가 날 것이라고 하면서 당신에게 고마운 줄 알라고 했다. 그런 긴 목으로 나는 '길로틴 초크'(단두대에 목을 밀어 넣듯 상대의 목을 감싸 안고 위로 들어 올려서 조르는 주짓수 기술)를 연습하고 파트너와 둘이 시뻘게진 서로의 목을 보며 웃고 있다.
촬영이 시작되자 나는 목이 졸린 사람처럼 뻣뻣해졌다. 자연스럽게 웃으며 카메라를 응시하는 건 내가 잘하지 못하는, 동시에 잘하기를 일찌감치 포기해버린 몇 안 되는 일 중 하나다. 나는 그처럼 전면적인 노출에 자기를 편안하게 드러낼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 스튜디오 촬영이 시작되고 나는 목이 졸린 사람처럼 뻣뻣해졌다 ⓒ 게티이미지뱅크
굳이 거울을 보지 않아도 얼굴 근육이 얼마나 굳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런 채로 미소까지 지어야 하는 상황에서 도망치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모니터링용 노트북에 사진이 수십 장씩 쌓이는데 얼핏 봐도 하나같이 엉망이었다.
'좋아요, 지금 좋아요'를 외치는 포토그래퍼에게 도대체 뭐가 좋으냐고 되묻고 싶었다. 나를 섭외하고 인터뷰한 에디터와 현장의 스태프들에게 폐만 끼치고 촬영을 망치는 게 아닌가 불안했다. 벌써부터 잡지에 실린, 도저히 봐줄 수 없는 사진과 괴로움에 몸부림치는 내 모습이 눈에 선했다.
<운동하는 여자>를 출간하고 몇 가지 비현실적인 제안이 있었는데 결과는 하나같이 자괴감만 안겨주었다. 패션지에 인터뷰가 실리거나 텔레비전에 출연하는 건 분명히 어릴 때부터 꿈꾸던 일이었다.
그러나 철부지 시절의 꿈은 아주 능숙하고 편안하게 나를 표현하는 세련된 유명인이지, 그 일을 제대로 해내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얼뜨기가 아니었다. 그런데도 경험을 핑계 삼아 제안은 죄다 받아들이고 낯선 일을 제대로 해내지 못한 채 휘둘렸다.
가슴이 답답해지던 차에 저 멀리 웨딩드레스 입고 지붕 위에 서 있는 여성이 보였다. 잘못 본 게 아닐까 싶은 정도로 비현실적인 광경이었다. 그러나 신사동은 스튜디오 밀집 지역이니 웨딩 콘셉트의 촬영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모델과 포토그래퍼는 로맨틱하고 도회적인 분위기를 위해 지붕 위에 위태롭게 올라선 것 같았다.
그 광경을 보자 갑자기 마음이 차분해졌고 나약한 생각도 저만치 달아났다. 어릴 때 꿈꿨던 완벽한 모습이 아니면 어떤가, 엄마의 기대를 역행하면 또 어떤가? 순전히 내 노력으로, 내가 바라던 꿈속에 지금 들어와 있는데. 웨딩드레스를 입고 지붕 위에 올라가는 만큼은 아니어도 용기를 보여줘야 했다.
꿈같은 촬영이 끝났고 나는 곧바로 화장을 벗었다. '쉼표'는 도무지 손을 쓸 수 없어 집에 와서 거의 빨다시피 했더니 원래 머리로 돌아왔다. 갑자기 극심한 피로가 몰려와 침대에 쓰러져 잠들었다. 다음 날까지 묻어나던 검정 아이라인이 아니고서야 긴 꿈을 꾼 것처럼 현실감이 없었다.
수업이 끝나고 주짓수 자매들과 근처의 대형서점으로 몰려갔다. 그곳에서 패션지를 사서 근처 커피숍에 자리를 잡았다. 자매들이 보는 앞에서 문제의 사진을 공개했을 때 그들은 나를 부치(butch, 레즈비언 가운데 중성적인 스타일을 칭하는 단어) 언니 같다고 평했다. 뭐라고 받아치고 싶어서 입이 근질거렸지만 맞는 말이어서 그냥 깔깔 웃었다.
덧붙이는 글: 오마이뉴스에 연재하는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