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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ywon Kim Apr 22. 2020

Arthur’s Underwear -
창피해도 괜찮아

픽쳐북 인문학

Arthur’s Underwear - 창피해도 괜찮아


내가 사랑하는 ‘Arthur’s Adventure’ ‘아서의 모험 시리즈’. 따뜻한 그림체, 그리고 다시 초등학교 시절로 돌아간 듯 생생한 이야기들. 가끔은 아서를 못살게 구는 친구들과 여동생, 그리고 착하기만 한 아서의 모습에 어른도, 아이들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시리즈다. 



‘Arthur’s Underwear’, ‘아서의 팬티’ 편은 표지를 보자마자 웃음부터 나왔던 책이다. ‘진짜? 아서가 왜 벗고 있지? 얘들이 진짜 좋아하겠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책을 폈는데, 아니나 다를까, 책 서문에  Arthur 시리즈의 작가, Marc Brown이 이런 헌정사를 써놓았다. “For all the kids who insisted on an underwear book” “팬티에 대한 책을 써달라고 졸라온 모든 아이들을 위해”. 


‘Arthur’s Underwear’는 아이들이 너무나 좋아하는 ‘팬티’에 대한 이야기다. 왜 아이들은 팬티를 그렇게 좋아할까? 팬티를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말아야 한다는 게 재미있는 걸까? 나만 알고 있는 비밀이라 그 자체로 재미있는 걸까? 보여주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 누군가 팬티만 입고 있는 모습이 너무나 웃긴 게 아닐까?


‘Arthur’s Underwear’는 어렸을 적 누구나 가끔씩 꿨던 섬뜩한 ‘팬티 꿈’에 대한 이야기이다. 즐겁게 놀러 나갔는데 허전해서 밑을 보니 바지는 온 데 간데없고 팬티만 입고 있는 내 모습, 화들짝 놀라 잠에서 깨 꿈이었음을 알고 안도했던 어린 시절을 기억하는가? ‘Arthur’s Underwear’를 읽고 나니 나에게도 팬티에 대한 추억이 있음을 기억해낼 수 있었다. 어른들도 이런 추억을 떠올리면 ‘팬티’ 애호가인 아이들과 더 재미있게 Arthur의 이야기를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Arthur’s Underwear’의 스토리는 Arthur의 친구 Binky Barnes 빙키 반스의 바지가 수업 중 친구들 앞에서 찢어지는 우스운 사건으로 시작된다. Arthur는 빨간 땡땡이 팬티만 입고 있는 Binky를 떠올리며 그날 저녁까지 웃음을 참을 수 없었지만, 그다음 날부터 눈만 감으면 팬티 바람으로 친구들 앞에 서는 꿈 때문에 괴로움에 잠을 이루지 못한다. 절친인 Buster 버스터에게 자신의 팬티 고민을 털어놓고, Buster의 조언에 따라 잠도 참아보고, 바지를 입고 잠에 들어보려고도 하지만, 다 무용지물이다. 



고민에 휩싸인 Arthur는 이젠 친구들이 자신의 ‘underwear problem’ ‘팬티 고민’에 대해 알게 될까 걱정이 한가득이다. 그런데 이게 웬일, 점심시간 카페테리아에 갔는데, 아이들이 Arthur를 보며 키득키득 웃는다. “Do you have your pants on?” “아서, 너 바지는 입고 있니?”. 아뿔싸, Arthur는 카페테리아를 가로질러 Buster에게 달려간다. “Buster, how could you?” “버스터, 너 어떻게 이럴 수가 있니!?”. “Well, I couldn’t help you. I needed some advice” “그게... 너를 도와줄 수가 없어서, 다른 사람들의 조언을 구했어”.


Buster는 답답한 마음에 (정말?) 친구들에게 Arthur의 고민을 말해버린 것이다! “This is so embarrassing!” “아 정말 너무 창피해..!” Arthur가 카페테리아를 뛰쳐나가려고 뒤를 돈 그 순간, ‘RRRIPPP!’ ‘찌이이익!’



이런… Arthur가 무서워하던 그 순간이 결국 오고야 말았다. 찢어진 바지 밑 흰 팬티를 숨기려 어쩔 줄 몰라하는 Arthur를, 그 창피함을 누구보다 잘 아는 Binky가 도와준다. Binky는 쟁반으로 Arthur의 팬티를 가려주고, Arthur를 카페테리아 부엌 안으로 데려간다. 앞치마를 두르고, 영양사 선생님이 자신의 바지를 꼬매주는 걸 기다리는 동안 Arthur는 미안하다고 하는 Buster에게 자신을 도와주려고 그런 걸 이해한다며 그것보다 부모님께 전학을 가야 한다고 말씀드려야 하는 게 더 걱정이 된다고 말한다. 


영양사 선생님은 Arthur의 바지를 돌려주시며, Arthur에게 “Do you know the old saying, ‘a banana without its peel is still a banana’?” “‘껍질이 없는 바나나도 여전히 바나나다’란 말을 들어본 적이 있니?”라고 여쭤보신다. 이에 Binky는 “It means people get embarrassed all the time” “그건 사람들이 매 순간 창피를 당한다는 뜻이지” 하고 자신감 넘치는 자세로 설명을 거든다. 그리고 영양사 선생님은 “But you’re still Arthur, a smart, kind young man - with or without your pants.” “바지가 있든 없든, 아서 너는 여전히 착하고, 똑똑한, 멋진 친구란다.”라고 Arthur를 위로해주신다.  


 ‘Arthur’s Underwear’ ‘아서의 팬티’ 이야기는, Arthur의 비밀을 알린 친구 Buster가 팬티만 입고 있는 악몽에서 소리를 지르며 깨어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끝까지 매우 유쾌하다. 







 ‘Arthur’s Underwear’는 단순한 즐거움을 넘어, 우리가 ‘창피함’을 대하는 자세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팬티바람으로 친구들 앞에 울상이 된 Arthur를 보며 내가 온몸이 뜨거워지도록 민망했던 순간들을 떠올려봤다. 친구들에게 내가 처음 진지하게 생각한 커리어에 대해 말했다가 놀림을 받았던 순간 (고등학교 때 나는 패션 MD 가 되고 싶었다. 친구들은 그게 뭔지도 몰랐다),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용기를 무릅쓰고 강연자에게 질문을 했던 순간 (나는 시골의 학교에서, 혼자 런던의 유명 대학교에 강연을 들으러 온, 코리안이었다), 처음 네트워크 이벤트라는 곳에 가서 모르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말을 걸지 고민하던 순간, 첫 직장의 대표님께 퇴사하겠다고 말하던 순간, 아, 그리고 저번 주 옆 사무실에 조용히 해달라고 했다가 어린 친구한테 무시당한 순간...


우리 모두는 창피당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팬티’ 사건처럼 사람들 앞에서 나의 실패한 모습을 보이거나, 사람들의 눈총을 받으며 행동해야 하는 순간들은 혈압을 높이고, 얼굴을 붉히고, 열 손가락 제 각각 떨게 할 만큼, 우리에게 큰 두려움을 안겨준다. 내가 실수하진 않을까? 나에 대해서 뭐라고 생각할까? 나에 대해서 안 좋은 말을 하거나, 나를 깔보지는 않을까? 내가 패배자처럼 보이진 않을까? ‘Arthur’s underwear’에서 Arthur가 팬티 악몽에 괴로워할 때 우리는 팬티를 보고 웃고 있었을지 모르지만, 사실 Arthur가 두려워했던 것은 팬티 그 자체가 아니라 여전히 어른이 되어도 무서운, 다른 사람들의 시선과 평가였다. Arthur는 망신을 당하는 순간, 자신이 사람들 앞에서 실패자가 되는 그 순간을 너무나 피하고 싶었고, 그래서 그런 일이 일어났을 때 창피함을 용납하지 못하고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학교를 떠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Arthur를 위로한 한 마디, "A banana without its peel is still a banana" ‘껍질이 없는 바나나도 여전히 바나나다’. Binky가 설명해준 것처럼  “It means people get embarrassed all the time” “그건 사람들이 매 순간 창피를 당한다는 뜻”이다. 우리는 살면서 벌거벗긴 바나나처럼 창피함을 종종 느낀다. 그 누가 창피당하는 것을 좋아하겠냐만, 가끔씩 창피를 당하는 것을 피할 수는 없다. 


사실 민망함을 느낀다는 것은, 종종 내가 한 단계 성장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Arthur가 두려워하던 그 순간을 마주하고 더 이상 ‘팬티 악몽’을 꾸게 되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 내가 강연 중 민망함을 무릅쓰고 손을 들어 질문을 했을 때, 네트워크 이벤트에서 모르는 사람에게 용기 내 다가가 말을 걸었을 때, 어려운 순간에 내 의사를 정확히 밝히고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결정을 내렸을 때. 나는 내가 이렇게 창피함을 넘어서는 순간, 나에게 자신감과 기회, 그리고 행복이 찾아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쩌면 새로운 생각, 질문, 그리고 도전에 어느 정도의 창피함은 당연히 따라오는 것인지 모른다. 새로운 생각이란 다른 이들에게는 당연해 보이는 현재 상황을 발전시킬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는 것, 고로 다른 이들과는 다른 생각을 내놓는 것이니까 (사람의 생각이 다 다른 건데도 우린 종종 다름에 대해 창피함을 느낀다). 개인적으로 어떤 새로운 것을 준비하고 있을 때, 주변 사람들이 '요즘 뭐해?'라고 물어보면 대답하면서 나도 모르게 느껴지는 그 쑥스러움도 이런 새로운 도전에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민망함'이 아닐까?



물론 사람들 앞에서 보여주고 싶지 않은 모습 - 팬티를 입은 모습 - 에서 오는 창피함과 주도적으로 행동함으로 인해 느껴지는 쑥스러움은 그 성격이 조금 다르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중요한 건 둘 다 지나가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창피를 당한다고 해서, 그 창피함이 영원히 남아있는 것은 아니다. 창피함은 순간이고, 순간은 잊히기 마련이다. 


Arthur의 바지가 친구들 앞에서 한 번 찢어졌다고 Arthur가 영원히 팬티바람으로 다니는 게 아닌 것처럼, 내가 실수하고, 망신을 당했다고 해서 그것이 나를 규정하지는 못한다. 찢어진 바지는 꿰매면 된다. 아니면 새로운 바지를 살 수도 있다. 한 번 아쉬운 performance를 보여줬다고 해서 내가 영원히 아쉬운 사람이 되는 건 아니다. Performance가 아쉬웠다면, 다음에 더 나은 결과를 만들기 위해 다시 준비하고, 도전하면 된다. 노력한다면 결과는 언제든 바뀔 수 있다. 그러나 내가 더 나은 performance를 보여주는 영광의 순간도 창피함의 순간처럼 빠르게 지나갈 것이다. 그래서 사실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의 평가에 따른 순간의 감정보다, 결과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 가운데 성장한 나 자신을 바라보고, 칭찬해주는 것이다. Arthur의 찢어진 바지를 꼬매 주신 영양사 선생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실수를 하고 망신을 당해도 우리는 여전히 멋지고, 소중한 사람이니까. 그리고 창피한 순간은 지나가기 마련이니까. 


"But you're still Arthur, a smart, kind young man - with or without your pants"



창피하다고, 망신당할까 봐, 다른 사람들의 시선과 평가를 걱정하느라, 새로운 도전을 피하는 실수를 저지르지 말자. 도전하지 않아도 사람들은 매 순간 창피를 당한다. 그리고 더 나은 사람이 되는 데에는 실수와 민망함과 어려움이 필요하다. 해보지 않은 것을 하는 것, 옳은 것을 하는 것,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 것을 하는 것, 그리고 실패한 것에 다시 도전하는 것 모두 Arthur가 친구들 앞에 팬티바람으로 섰을 때 느낀 그 당혹스러움과 창피함을 수반한다. 당신의 열심 가운데 많은 이들이 당신의 실수와 실패에 주목하고 당신의 꿈에 대해 회의감을 가질 수도 있다. 그러나 창피함은 피할 수 없는 것이고, 또 지나가는 것이다. 그리고 창피함이 나를 규정할 수 없다는 것을 믿는다면, 다른 사람들의 피상적인 평가는 그 효력을 잃기 마련이다.


팬티가 '창피'해서 재미있어하는 아이들에게 창피함은 나쁜 게 아님을 알려주자. 종종 창피함을 경험하겠지만, 창피해도 괜찮다. 순간의 쑥스러움을 넘어서면 더 멋진 사람이 될 수 있기에.


창피함은 피할 수 없다, 지나간다, 그리고 창피함은 넘어설 때 우린 성장한다.

A banana without its peel is still a banana. 

껍질이 없는 바나나도 여전히 바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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