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나의 일생
'여전하구나!'
햇살 가득한 거실 탁자에 앉아 책을 열심히 읽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며 제나는 생각했다.
30년전 중학생때 혼자 골방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모습이 떠올라 제나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모든 것을 빠짐없이 놓치지 않고 제대로 공부하고 싶은 마음.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자신의 계획에 맞춰 스스로를 통제하는 모습.
변한 줄 알았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변한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전처럼 슬프지는 않았다.
그때는 그냥 그래야할 것 같아서, 자신도 인지하지 못한 욕구때문에.
달리 원하는 것이 없어서. 스스로 뭘 원하는지 몰라서였다면(지금도 어떤 면에선 마찬가지다)
지금은 그런 모습을 순간순간 알아차리고 있다.
그 덕분에 여전한 모습 틈 사이로 잠시 멈출 수 있게 되었다.
그래도 여전하구나..
제나는 속으로 같은 말을 내뱉었다.
무언가를 제대로 해내고 싶은 마음
의미있는 변화를 추구하고 있는 마음
짝사랑처럼 다른 사람보다 마음을 더 쓰고 있는 마음
자신의 진실이 가닿길 바라는 마음
깨어진 관계를 회복하고 싶은 마음
상처받고 치유되지 않은 마음
자신의 존재를 증명해내고 싶어하는 마음
자기도 모르게 열심을 내고 있는 마음
무언가를 한다고 해서 크게 변화될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마음
30년 전과 달라진 게 없이 여전히 없어지지 않는 마음이 늘 둥둥 제맘대로 떠다닌다.
제나는 그 마음을 이전보다는 조금 느긋하게 바라보고 내려놓는다.
뭘 노력한다고 해서 그 마음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무언가를 해결하려 드는 순간 새로운 문제가 생긴다는 것을..
삶의 밑바닥에 몇번 가라앉고 난 이후에서야
아주 조금 희미하게 알아차리게 되었다.
계속 제자리를 맴도는 2차원의 세상에서 이분법적으로 생각하는 패턴은 여전히 맹렬한 속도로 의식을 지배한다.
그 순간 3차원으로 이동해 요동치는 회오리바람 속 어디에 마음이 떠돌고 있는지 바라본다.
그리고 그 태풍의 중심에서 잠시 고요함을 느끼며 4차원의 세계를 상상한다.
눈을 들어 하늘을 바라본다.
늘 그렇듯 한번도 본 적 없는 새로운 하늘,
붓칠하듯 그려진 구름이 처음으로 말을 건넨다.
보이지 않는 마음의 근육이 살아 움직이고 있다.
여전하지만 괜찮아!
삶이 원한다면 여전한 제나의 마음에 답을 줄 것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