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많은 감성 소녀
나는 태생적으로 굉장히 섬세하고 감성적인 사람인 듯 하다. 그래서 작은 일에도 쉽게 감동하고 실망하며 또 기뻐하다가도 슬퍼한다. 그러다 보니 어떤 일을 하거나 누군가와 관계를 맺을 때도 쉽게 마음을 주고 그러다 상처받고 회복하느라 꽤 많은 에너지를 쓰곤 한다. 이렇듯 감정이 널뛰듯 변화가 잦은 것은 단점이었지만, 세상 모든 일에는 장점과 단점이 존재하지 않는가. 일단 마음이 동하면 바로 도전하고 실행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 탓에 나의 매일은 참으로 바빴고, 그래서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었으며 덕분에 매일매일이 새로운 반짝반짝 빛나는 하루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
대학 새내기 시절, 영화에서 보아왔던 기타 매고 M.T 가는 대학생의 로망을 실현해 보겠노라며 대뜸 음악 동아리 방에 찾아가 오디션을 보았고, 수많은 밤을 캠퍼스의 너른 잔디밭에 둘러앉아 목이 터져라 떼창을 부르며 참으로 행복했었다.
그뿐이랴, 그 시절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따뜻하게 만들어주었던 SK의 텔레콤의 ‘사람을 향합니다.’ 광고를 보고는 마음 한편이 뜨거워져 주르륵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광고인이 되겠다며 의지를 불태웠다. 그리고는 바로 이런저런 광고 모임을 나가거나 광고 회사에서 직접 모집하는 대학생 모임에 지원하며 매일매일의 열정을 불태우는 화끈한 대학생활을 했더랬다.
그렇게 새로운 모임에 들어가고 새로운 일을 하고 하나의 프로젝트가 끝날 때마다 훈장처럼 경력들이 쌓여가는 기분은 꽤나 짜릿하고 가슴 벅차오르는 일이었다. 원하는 일을 성취했을 때는 하늘을 나는 듯 기뻐했고, 그렇지 않을 때는 한참이나 땅을 파고 들어가야 할 정도로 실망하고 자책하는 날들이 계속되었다. 이렇게 매일을 롤러코스터 타듯 지내다 보니 시간이 지날수록 지쳐갔다. 그리고 점점 나와는 다른 사람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무서운 언니들 vs. 온화한 언니들
회사에서 일을 하다 보면 성과를 정말 잘 내는 분들이 있다. 나 또한 잘하고 싶은 마음이 앞서있는 열정녀이기에 항상 그분들을 닮아가려 노력하며 탐구하곤 했다. 그분들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었는데, 한쪽은 누구도 쉽게 다가오지 못할 만큼 사람들을 긴장시키는 센 캐릭터로 대표되는 ‘무서운 언니들’이었고, 다른 한쪽은 온화하지만 중심이 잡혀있어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매력을 소유한 ‘온화한 언니들’이었다.
전자의 사람들은 일이 잘못되면 불같이 화를 내고 채찍질하며 정상까지 끌고 가는 스타일이었고, 후자의 사람들은 일도 사람도 진심으로 대하며 함께 결과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이었다.
처음에는 ‘무서운 언니들’의 방식이 효율이 더 좋아 보였다. 그 카리스마에 눌려 함께 일하는 직원들이 미친 듯이 달렸으니까. 그만큼 성과도 빠르게 났다. 하지만 일이 끝난 후에 그녀 곁엔 아무도 남아있으려 하지 않았다. 당연했다. 그녀의 세계는 자신의 성과를 위해 다른 이들을 갉아먹는 식으로 운영되었으니까.
나는 함께 가는 느낌이 좋았다. 그리고 ‘온화한 언니’들은 같이 일하는 모두에게 ‘안전하다’는 느낌을 주었다. 눈으로 보이진 않지만 서로를 지지하고 이끌어주는 유대감과 견고한 안전망은 가끔 헛소리를 해도, 어쩌다 실수해도 주눅 들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든든한 지지대가 되어주었다. 어찌 보면 그건 나약한 방식이 아니냐고, 그렇게 해서 일이 되겠냐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그 느낌 때문에 팀원들 모두 새로운 아이디어를 두려움 없이 낼 수 있었고 서로를 믿고 거침없이 실행할 수 있었다.
“<온유함>은 나약한 관대함이나 수동적 태도가 아니라 통제된 강인 함이다”
-스티븐 그레이브스-
감정에 휩싸여 불 같이 화를 내거나 비난하지 않고 문제에 집중해서 일을 해결해 나가는 강인함을 가진 존경하는 선배들은 그렇게 하나같이 ‘온유함’이라는 통제된 강인함으로 일도 사람도 강하게 당기고 있었다.
‘예쁜 할머니’ 보다 ‘온화한 할머니’가 될래
불혹을 맞이해 한 가지 선물을 받을 수 있다면 나는 주저 없이 ‘온화함’을 고르고 싶다. 그렇게 마흔, 쉰, 예순을 지나면서 관리가 잘된 ‘몸짱 할머니’, ‘예쁜 할머니’보다 주위의 사람들을 품을 수 있는 그래서 항상 찾아와 기댈 수 있는 ‘온화한 할머니’가 되고 싶다.
▼해당 에세이는 팟캐스트에서 오디오북으로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http://www.podbbang.com/ch/1788857?e=248041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