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이 어떤 날이었는지는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느 날, 나는 어릴 적부터 오래 알고 지낸 친구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
“너는 사람들을 대할 때, 늘 지키는 어떤 신념 같은 것이 있어?”
친구 입장에서는 조금 뜬금 질문이었겠으나, 당시 나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간절했던 것 같다. 사회생활하면서 새롭게 만난 낯선 인간관계들을 마주할 때 당황스러울 때가 많았던 시기였다.
그리고 문득, 어릴 적부터 오래 보아온 이 친구는 그 문제들을 해결해 줄 단단하고 견고한 답을 갖고 있을 것만 같았다.
뭐 하나 부족함 없는 이 친구는 언제나 안정적이었고 온화했다. 격하게 흔들린다는 사춘기 시절조차 나는 이 친구가 인상을 구기는 모습을 본 기억이 없다. 그렇게 20여 년의 세월 동안 꾸준했고, 믿음직스러웠던 친구였다.
참으로 뜬금없이 돌직구를 던진 내게. 친구는 살짝 당황한 듯 ‘허허’ 웃으며 숨을 고르더니 이 세 단어로 대답을 마무리했다.
‘진정성’
‘일관성’
‘그 사람에 대한 깊은 이해’
그 대답을 듣고 난 참 놀랐던 것 같다. 첫째 대답이 바로 나왔기 때문이었고(자식! 예상은 했는데 내공이 장난이 아니군!), 둘째 짧게 내보인 그 단어들 속에 내가 알고 싶었던 해답이 모두 들어있는 것 같았다(역시 진리에는 간결하다.
구구절절 설명이 필요 없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런 친구가 옆에 있다는 게 감격스러웠다. 당시에도 우리 둘은 모두는 성인이었지만, 기껏해야 이십 대 중, 후반이었는데, 친구가 내놓은 대답은 지금에 와 곱씹어봐도 역시나 해답이다. 곱씹을수록 의아하기까지 하다. ‘아니! 그 아이는 어린 나이에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고 살았을까? 그 생각을 얼마나 확고하게 새기며 살았기에 나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그런 대답이 톡하고 튀어나올 수 있었을까?’ 싶어서 말이다.
서른아홉. 이 나이쯤 되니 멋있는 사람에 대한 기준이 점점 확고해져 간다. 짧지도 길지도 않은 인생을 돌아보며 요즘 내가 멋있다고 느끼는 사람들의 공통점을 발견한다. 예상하겠지만, 그들의 공통점은 십여 년 전 내 친구가 건넨 그 답으로 수렴한다. ‘진정성’,‘일관성’,‘그 사람에 대한 깊은 이해’. 그리고 여기에 내가 삼십 대에 들어서며 만난 멋진 멘토들의 공통점을 더해본다. ‘솔선수범, 행동으로 보여주는 리더십’.
잊지 않고자, 펜을 잡은 손에 힘을 준다. 그리고 눈에 띄는 형광 포스트잇에 네 가지 덕목을 적어 늘 눈에 닿는 곳에 붙이며 스스로에게 물었다. ’ 나는 지금 이 네 가지를 얼마나 지키며 살아가고 있는가?’
고백하자면 처음 친구에게 신념에 대한 질문을 하고 해답을 얻으며 탄복한 이후, 나는 또 내 방식대로 이리저리 흔들리며 살아왔다. 그러나 요즘, 친구로부터 온 세 가지가 그리고 인생 멘토들로부터 받은 마지막 네 번째가 자꾸 머릿속을 맴돈다. 그간 나는 어떻게 살고 있나 반성하고 앞으로 나아갈 길을 바라본다. 이제는 진심으로 저 네 가지를 마음에, 행동에 체화하며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젠 '생각하는 것에서 끝내기'를 끝내보자. ‘흔들리지 않는 편안함, 마흔’을 위해서 제일 먼저 시작해야 할 것은 결국 내 옆에 있는, 내가 만나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의미 있게 깊이 가져가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이번엔 마음 한구석에 밀어놓지 않고, 책상 한편 포스트잇만 덩그러니 놓아두지 않고, 심장으로 끌어와 마음에 새겨본다. 그렇게 체화시킨 이 인생의 해법들을 품고 오늘도 나의 삶을 후회 없이 살아내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해당 에세이는 팟캐스트에서 오디오북으로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http://www.podbbang.com/ch/1788857?e=248041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