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1985년의 끝자락인 12월 어느 날 서울의 한 평범한 동네에서 태어났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당시 나와 내 또래들은 지금과는 정말 판이하게 다른 세상에 살았던 것 같다
꼰대처럼 들릴 수 있지만... 라테는... 매일 당연하게 먼지 하나 없는 청명한 하늘을 누렸고, 엄마가 저녁 먹으러 들어오라고 할 때까지 친구들과 동네 놀이터에서 흙놀이를 하며 하루를 보냈던 기억이 난다. 또 그 당시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친구들은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부터 걸어서 15분이 넘는 거리에 있는 초등학교를 혼자 등, 하교를 하곤 했다. 가는 길 중간에 큰 대로도 있었고 좀 더 가까운 학교로 전학을 가기 전까지는 버스까지 타고 다녔는데, 학교 앞까지 아이를 데려다주고 데리러 오는 요즘 시대에 생각해 보면 그때는 어쩜 그렇게 어린아이들을 혼자 학교에 보냈었는지 의아한 생각이 들 정도이다. 아무튼 우리는 지금 생각해 보면 참으로 신기한 시대를 거쳐왔다.
또 그 당시에는 성적만큼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이 있었는데, 그건 바로 근면성실의 대명사이자 없으면 조금 창피하기까지 한 '개근상'을 타는 것이었다. 초등학교 6년 내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집에 무슨 일이 있든 없든 한 번도 빠지지 않고 학교에 등교하는 것이 당연하던 시절. 그 시절 우리는 '아파도 학교에 가서 쓰러져야 한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참으로 성실하게 학교를 다녔다. 6년 개근상은 타지 못했더라도 대부분 1년 개근상 하나정도는 가지고 있었던 시대였다.
서울 한 귀퉁이에 있는 평범한 학교를 다녔던 나는 중학생이 되면서 처음 이발기로 머리를 잘라보기도 했다. 그 당시 우리 동네 여학생들은 학교 규정상 머리 길이를 귀밑 2 cm이하로 유지해야 했으므로 뒷 머리를 깔끔하게 정리하는 건 늘 이발기의 몫이었다. 층을 내거나 커트를 하는 등의 멋을 부리는 행동은 전혀 용납되지 않았고 우린 그저 정해진 규칙에 크게 어긋 나지 않게 멋을 내는 법을 연구하면서 선도부의 눈에 띄지 않기 위해 종종걸음으로 등교를 서둘렀다. 그 당시 모든 학교가 그렇게 엄격한 두발 단속을 했던 것은 아니지만, 그 시대를 공유한 대부분의 또래들은 기억하리라 생각한다. 당시 우리는 학교라는 작은 사회 속에 살면서 순종적이며 성실한 사회인으로 자라는 법을 학습해 온 것 같다.
이름보다는 7번, 11번처럼 학급 번호가 나를 대변하던 그 시절, 지금 생각해 보면 부당하다고 생각되는 일이나 사건들도 군소리 없이 쉬쉬하며 묻어야 했던 순응의 시대를 살아온 우리다. 날 것 그대로 표현하자면 '까라면 까'는 시대를 지나온 사람들이 현재 사회를 이끌어가는 어른들이 되었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나와 같은 80년대 생들의 삶은 조금 고단 한 것 같다. MZ 세대의 한 끝자락을 담당하고 있다곤 하지만 MZ 세대와 전혀 다른 점이 있기 때문이다. 여전히 우리는 주변을 의식하며 둥글게 둥글게 조화롭게 사느라 나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오롯이 드러내는 것이 부담스럽다. 그래서 위로는 상사들 눈치 보며 충성하느라 바쁘고, 아래로는 자기주장 확실한 후배들에 치여 회사에서 제대로 끼인 세대로 통한다고 한다. 아래위로 끼여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식은땀을 흘리고 있는 우리네 모습이 참으로 안타깝다. 틀에서 벗어나 나 다움을 보여주고 싶어도 몸은 관성대로 움직이니 선뜻 용기가 나지 않고, 어쩔 수 없이 '라테는...'을 떠올리다 보면 자기의 생각을 거침없이 쏟아내는 후배들이 야속하고 한편으로 부러운 것이 현실이다.
다행히 모두가 정해진 틀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고 살아갈 때 수많은 비난을 받으면서 자신만의 뾰족한 아름다움을 지켜낸 이도 있다. 심지어 반짝반짝 빛나기까지 해서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존재가 된 사람. 바로 '너 커서 뭐 될래 했는데, 뭐가 된 노홍철'이라는 재치 있는 이름으로 사업자를 낸 '방송인 노홍철'이 그 주인공이다. 어려서부터 줄곧 틀에서 벗어나려는 자신을 문제아, 특이한 사람으로 치부하던 사회 속에 살아가면서 자신을 굽히지 않고 굴복하지 않고 살아온 그의 행보들을 바라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모두가 비난하는 자신의 독특함을 스스로로 어여쁘게 바라봐주고 사랑해 주기까지 혼자서 얼마나 방황하며 외로웠을까? 그리고 얼마나 많은 고민 끝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지키고자 용기를 내었을까?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고 인정해 주는 법을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는데도 스스로 그 엄청난 일을 해낸 그가 참 멋있고 존경스럽게 느껴진다.
지금껏 자신만의 길을 개척하고 신나게 살고 있는 그는 스스로를 ‘세상에서 노홍철을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렇게 사랑하고 탐구한 자신을 물성화해 세상에 선보이고 있다. 겉으로 보기엔 그저 자신의 이름을 내세운 특이한 전시물이 가득한 빵집, 문화공간을 만들어 돈을 벌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사실 그는 그의 수많은 시도와 행동들을 통해서 온몸으로 세상에 이렇게 외치고 있는 것 같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믿어주고 사랑해 주세요. 그게 얼마나 행복한데요. 절 보세요. 제가 그 증인이 되어 줄게요" 그런 그의 행보를 따라가다 보면, 나도 조금은 용기가 생기는 것 같다. 사회에서는 타박만 당했던 '나의 부족함도 사랑해 줄 용기'를.
'까라면 까' 시대가 익숙한 사람들에게 요즘 시대는 급작스럽게 방향을 선회해 호통을 친다. '눈치 보지 말고 네가 원하는 걸 해'라고. 그런데 몸에 깃든 습관은 그렇게 한 번에 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서 우리는 여전히 이전과 현재의 간극 속에서 눈치를 보고 어쩔 줄 몰라 서성이고 있는 듯하다. ‘정신 차려! 세상이 변했어!’라고 다그치는 세상을 뒤로하고 나는 나와 같은 시대를 살아온 동년배들에게, 성실한 사회인들에게 이렇게 말을 건네고 싶다. 사실은 우리에겐 참 낯선 말. 마음속 깊숙한 곳에 자리한 내면 아이가 늘 듣고 싶었던 말을. 기왕이면 국민 멘토 오은영 박사님의 따뜻한 목소리를 빌어서 말이다.
'괜찮아' '네 생각은 어떠니?' '그랬구나' '그럴 수도 있지' '너는 존재만으로 참 소중하단다'
만약 시간을 거슬러 10대를 살고 있는 과거의 우리에게 돌아가 이 말을 해준다면, 지금 우리의 삶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아마 조금은 더 자신을 믿어주고 인정해 주고 사랑하며 선택하고 살게 되지 않았을까? 그리고 그렇게 더 넓어진 마음으로 눈으로 세상을 더 이해하고 품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해당 에세이는 팟캐스트에서 오디오북으로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http://www.podbbang.com/ch/1788857?e=248041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