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 고등학교 학생시절 시험기간이 가까워오면 나와 내 또래들은 으레 습관처럼 동네 독서실에 등록하고 벼락치기 공부 시작했다. 그러나 아무리 마음이 급해도 나는 자리에 앉자마자 바로 공부를 시작할 수 없는 학생이었다. 자고로 어떤 일을 시작하기 전에는 꼭 치러야 하는 신성한 의식 같은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시험공부 ‘계획을 짜는 것’이었다.
주별로, 시간대별로 어떤 과목의 공부를 몇 시간씩 하고 다음 과목으로 넘어갈 것인지 세세하게 계획을 짜고 나면 자를 대고 섬세하게 줄을 그은 후, 색색깔의 펜을 활용해 스케줄 표를 멋들어지게 만들었다. 독서실 등록 첫날의 거룩한 의식은 보기에 아름다우면서도 내용까지 완벽한 정성스러운 계획표를 독서실 책상 한편에 가지런히 붙이고 나서야 끝이 났다. 그리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집에 돌아와 ‘이대로만 공부하면 이번 시험 성적이야 아무런 문제가 없지!’라 생각하며 벅찬 마음을 안고 꿀잠을 잤다.
그 이후의 일은 아마 예상이 될 것이다. 완벽한 계획이 품은 촘촘한 스케줄을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었던 나는 하루, 이틀, 삼일이 지나 나흘쯤 되면 또 각 잡고 앉아 기존의 계획을 수정하고 있었다. 수정된 계획을 다시 예쁘게 재단해서 독서실 책상에 붙이면 또다시 이론상으로는 완벽한 계획표가 완성됐다. 그러나 애초에 힘이 너무 들어간 채 무리해서 계획을 잡았으니 이를 실행에 옮기고 끝까지 지속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울 때가 많았다. 그렇지만 괜찮았다. 잘하진 못했지만 끈기와 성실함을 무기로 뭘 하든 평균 이상은 해내곤 했으니까.
청소년기를 지나 성인이 되고 나서도 나에겐 창대하게 꿈꾸고 계획하고 실행하다 흐지부지 끝내는 일들이 부지기수로 많았다. 세상에는 재미있는 것, 궁금한 것들이 너무 많았으니까. 음악에 꽂히면 피아노, 기타, 작곡 등 일단 관심 가는 건 다 도전하고 배웠던 것 같다. 그러다 방송일이 좋아 보이면 콘텐츠를 제작하는 프로듀서가가 되겠다며 카메라를 들고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유튜브는커녕 스마트폰도 없던 시절이라 얼굴만 한 비디오카메라를 들어야 영상을 촬영할 수 있었던 시절이었음에도 촬영은 물론 유명하다는 편집 프로그램은 무엇인지 밤새 검색해서 배웠던 기억도 난다. 마음에 울림을 주는 멋진 글을 보면 소설가가 되어볼까 하다 또 벅찬 감동을 주는 드라마를 보면 어느 시나리오 작가의 문하생으로 들어가야 하나 인맥을 수소문했다. 그러다 누가 목소리가 참 좋다고 칭찬하면 ‘그렇지! 나는 성우가 어울려’라며 개인 라디오 계정을 파고 엎고 또 녹음하고를 반복했다.
뭐 하나 제대로 끝을 보지 못하는 것이 아쉽긴 했지만, 나의 작심삼일에 대해 크게 개의치 않았던 이유, 깊게 고민해보지 않았던 이유는 그것들이 내 인생에 필연적인 요소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취미쯤이야, 관심사쯤이야 얼마든지 작심삼일 하고 넘어가도 문제가 되지 않았으니까.
그런데 아이를 낳고는 상황이 달라졌다. 한 사람을 책임져야 하는 기나긴 그 시간 속에서 나는 나 자신에 대해 깊이 고찰하는 시간을 자주 갖곤 했다. 아니, 그래야만 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힘을 내었다가도 쉽게 지치고 좌절하는 과정들을 반복하며 진을 빼는 나 자신을 이해해야 살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나온 세월들을 곰곰이 되짚어 보다 나는 어려서부터 늘 이 패턴을 반복해 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찾았는데 그건 바로 내가 ‘완벽주의자’라는 사실이었다. 살면서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사실에 화들짝 놀랄 수밖에 없었지만, 사실이었다. 완벽하지 않은데 완벽을 추구하느라 진을 빼는 완벽주의자. 그게 바로 나였다.
내가 겪은 ‘완벽주의’란 이런 종류의 것이었다. ‘완벽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 때문에 시작하기 전에는 반드시 촘촘하게 계획을 세워야 하고, 실행단계에서 조금이라도 오차가 발생하면 그 틈을 용납할 수 없어 다 엎어버리고 0에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애초에 가능하지 않은 것을 가능하게 하려다 결국엔 지칠 수밖에 없는 상태 말이다. 시작은 창대하나 끝을 볼 수 없는 이유였다. 세상엔 완벽한 사람이 없고, 돌발상황은 언제든 발생하는 법인데 모든 것이 생각대로 돌아가지 않으면 매번 좌절하고 자책하면서 도돌이표처럼 처음으로 다시 돌아가기를 반복하고 있으니 지치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노릇이었다.
혼자서 공부를 하고 일을 하고 취미를 갖는 일은 중간에 그만두면 그만이지만, 육아는 잠시도 손을 놓을 수 없는 최소 20년 이상의 프로젝트이다. 누구나 알고 있듯 아이들을 키우는 것은 내 열심히 해결되는 문제가 대부분이다. 예상치 못한 일이 끊임없이 발생하기 때문에 애초에 계획이라는 것이 의미 없을 때가 더 많다. 때문에 엄마가 된 이상 쉽게 흔들리지 않는 지속가능한 삶을 살 방법을 찾아야 했다.
그래서 제일 먼저 버려야겠다고 생각한 것이 바로 나의 ‘완벽주의’였다. ‘예상과 조금 달라도 괜찮아.’, ‘지금 최선을 다하면 그거면 된 거야.’, ‘잘 못하면 어때? 잠깐 쉬었다가 다시 하면 되지.’ 이렇게 나 스스로에게 숨 쉴 틈을 주고 나의 부족함을 인정해 주고 다시 일어날 때까지 기다려주기 시작했다.
완벽하지 않아도 견딜 수 있는 힘을 조금씩 키워나갔다. 그리고 나를 조금 더 관대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늘 서둘러 앞서나갔던 조급한 템포가 잦아들고 나니 주위 사람들을 대하는 마음도 달라졌다. 나의 템포가 아니라 그들의 속도를 존중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기 때문이다. 늘 내 옆에 두고 살던 정밀한 저울을 내려놓으니 나도, 남도 내 기준에 맞춰 재단하고 판단하지 않게 된 것이다.
때때로 나도 모르게 오랜 시간 나를 옥죄며 살아온 내 안의 조급함과 완벽하고 싶은 마음이 올라오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철없던 내 인생 초반 서른 해를 너무 안달복달하며 스스로가 만든 틀에 가두고 옥죄며 살아왔으니, 이제 나의 인생 중반기는 좀 자유롭게 살아보고 싶다.
계획하되 숨 쉴 구멍을 곳곳에 뚫어두고 궤도가 바뀌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무엇보다 끝을 정해놓고 달리지 않는 것. 그게 완벽한 계획보다 더 손쉽게, 맘 편히 원하는 곳에 닿는 방법임을 깨달았다. 곧 사십 대를 맞이하는 나의 인생 중반은 좀 더 여유롭게 그래서 행복하게 하고 싶은걸 끝까지 해내는 사람이 되길 소망해 본다.
▼해당 에세이는 팟캐스트에서 오디오북으로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http://www.podbbang.com/ch/1788857?e=24804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