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화 에세이/나도 내 마음을 모르겠어 4편
인터넷에서 층간소음에 대해 찾아보면 고통을 당하는데 증거 수집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글들이 많다. 내 귀에는 들리는데 핸드폰으로는 소음이 잘 녹음이 안된다는 거다. 우리 집은 그렇지 않았다. 직접 듣는 것보다 크기의 차이는 조금 있었지만 핸드폰 동영상으로 쿵쿵쿵 쿵! 뛰는 소리, 크아 아아 앙! 공룡 소리를 내는 건지 꺄아아아아! 익룡 소리를 내는 건지 구분될 정도로 선명하게 녹화가 됐다. 방 한가운데, 거실 한가운데서 말이다.
입주 후 한 달은 매일매일이 지옥이었다. 그땐, 코로나 3차 대유행이 진행되고 있었고 모두가 밖으로 나가는데 제약이 많았다. 나는 재택근무를 하고 있고 윗집 아이들은 유치원을 못 가고 있었다. 노트북을 들고나가고 싶었지만 카페들도 착석이 금지였고, 영하의 날씨에 아이들이 놀이터에 나가 놀 수도 없었다.
관리사무소를 찾아가 진지하게 물어봤다. '모든 집들이 이 정도는 들리는 상황인데 저희 집만 이해를 못하는 건 건가요? 다른 세대들도 층간소음 민원을 넣고 있나요?' 녹화해 온 동영상을 재생하자마자 앉아 있던 관리실 직원들이 모두 놀랐다. 특히 여자 직원은 "방 안에서 이렇게 들린다고요?" 반문을 해오며 한번 더 핸드폰을 가져가 동영상을 재생했다. 관리사무소 과장님은 우리 집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했다. 실제로 우리 동 같은 라인 저층세대에서 이미 한번 싸움이 났다고 했다. 첫 입주 아파트에서는 입주 후 3개월까지 층간소음 민원이 가장 많다고 했다. 3개월 동안 서로 합의가 되거나 한쪽이 포기를 한다는 뜻이었다.
"이렇게 사소한 소리가 다 들리는데.. 일단 건설사에 층간소음 관련된 시공이 제대로 잘 된 건지 이 세대에 시공 누락이 있었는지 확인 요청을 해볼게요."
희망이 생겼다. 그래! 뭔가 시공이 안 된 거겠지. 이게 말이 되는 일인가? 그날은 집에서 울리는 쿵쿵쿵 북소리들을 이해할 수 있었다. 저들의 문제가 아니라, 시공의 문제일 테니까. 이틀 후, 단지 내 하자 접수 문제로 상주해 있던 건설사 직원이 방문을 했다. 때마침 놀이터에 다녀온 건지 조용했던 집 안으로 아이들이 달려 들어왔다. 소리 나는 동선을 따라 집 안을 걷던 직원은 천천히 입을 떼었다.
"이렇게 뛰면 어떤 집도 방법이 없어요. 윗집에 한번 말을 잘해보세요."
이 집에 살기 위해서는 윗집을 이해를 해야 했다. 한 달, 두 달, 세 달째가 되면서 더 이상 이렇게 살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 들어오는 게 두려웠다. 조용한 상태에서도 언제 시작될지 모르는 소음을 두려워하는 상황까지 와버렸다. 집을 버릴 수 없으니 상황을 이해하려 발버둥을 쳐야 했다.
일단 정보를 모으기 시작했다. 윗집은 3,6살 아들 두 명을 아침부터 재우기 전까지 엄마 혼자 독박 육아를 하는 상황이었다. 아이를 한 명 케어하는 동안 다른 아이가 뛰는 것 까지 제재할 방법이 없다. 막내 아이가 말이 안 통하고 (아이 부모님 말에 의하면) 소리를 잘 지르고 울음이 많았다 (몇 번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칠 때마다 아이가 울면서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아이 엄마가 발 망치가 있다. (아이 아빠가 본인은 아니라고 했다). 거실과 복도에는 매트 시공을 했지만, 방에는 매트를 깔지 않았다 (방에는 매트를 깔 수 없고 하셨다)
나는 이때부터 비슷한 상황의 친언니와 많은 대화를 나눴다. 언니는 여자 아이들이지만 똑같은 나이의 조카 두 명을 키우고 있었고, 코로나가 시작되면서 휴직을 하고 독박 육아 중이었다. 왜 뛰는 걸까? 왜 계속 뛰는 걸까? 어디서 뛰어내리는 건가? 방에는 왜 매트를 못 깔아? 우리 한테 하루에 한두 시간 왜 못 참냐는데 우리가 이해를 못하는 거야? 질문 폭격기였다. 나는 매일 언니에게 묻고 또 물었다.
'너희도 안됐고, 윗집 엄마도 힘들겠다. 춘춘아, 아마 윗집 아이 엄마는 시간이 엄청 빨리 지나갈 거야. 뭐 좀 하고 시계 보면 집에 방금 들어온 거 같은데 벌써 1시간이 지났다고? 애들 씻기고 내일 어린이집 보낼 거 챙기고 하면 재워야 할 시간이네 싶을 거야. 그래서 아니 이렇게 짧은 시간인데 왜 못 참고 인터폰 하는 거야 싶은 거야. 매트도 깔았고 애들도 앉아서 노는데 왜 이래 싶을 거야. 그 엄마도 본인 할 일도 해야 하니까 아이들이 뛰어도 뛰는 모든 순간을 눈으로 지켜볼 수 없으니까 얼마나 뛰었다고 생각도 들 거야'
그래, 혼자 힘드시겠지. 앉아서 놀면서 무릎으로 찍는 건지 책을 집어던지는 건지 쿵! 쿵! 소리가 갑자기 들리면 아래층은 등 뒤에서 총방아쇠를 당기는 것처럼 깜짝깜짝 놀라지만 애들이 일부러 하는 건 아니니까..
그래, 혼자 우는 아이 씻기는데 정신이 없어 다른 아이가 방을 뛰고 있는 것 까지 신경 쓸 수가 없겠지. 밤새 뛰겠어? 노이즈 캔슬링 이어폰을 끼고 볼륨을 올려도 벽을 통해 쏟아져 내리는 진동은 막을 수 없지만 소리는 안 들리니까... 아이 엄마도 최선을 다 하는 걸 건데 인터폰 해 봤자 서로 스트레스만 받겠지, 해결 방법이 없는데 참자. 오늘도 이렇게 지나가겠지. 1시간 40분만 더 참으면 된다! 생각을 하고 또 했다.
아래층인 우리 집에 시공을 해서 들리는 소음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 여러 곳에 문의를 많이 했다. 그런 방법은 없었다. 구조적으로 뭐가 문제 인지 공부도 했다. 비슷한 시기에 신축 아파트에 입주한 친구들과 이야기도 나눠봤다. 공통적으로 이전 아파트와 다르게 북이 울리는 것 같이 쿵쿵쿵 소리가 울려 힘들다는 이야기를 했다. 바닥은 강마루에 천장에는 시스템에어컨, 환기 시스템이 들어가야 해서 마무리가 가벽이고 빈 공간이 울림통이 되고 있는 것 같다는 거다. 내가 지혜가 짧아 이 문제를 센스 있게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고민상담을 하는 사내 모임에도 참여를 해봤다. 재택근무도 철회하고 사무실 출근을 시작했다. 민원을 넣고 싶어 하는 남편을 달래고 달래 저녁마다 산책을 나갔고, 너무 피곤한 주말에는 호텔을 예약했다. 내가 듣기 싫은 소음들을 우리 집에서도 나지 않게 조심하고 또 조심했다. 밑창이 더 높은 실내 슬리퍼로 갈아 신고, 의자마다 양말을 씌우고, 윗집으로 소음이 올라가 아이들이 깰까 봐 침실 드레스룸의 탕탕 닫히는 아크릴 문에 소음 방지 스티커를 덕지덕지 붙였다. 윗집에서 말하는 아이들이 집이 있는 유일한 시간이라는 저녁 7시에서 10시 사이가 우리도 퇴근 후 그 시간에만 집에 있지만 될 수 있으면 부딪히지 않기 위해 밖에서 최대한 떠돌아다니다 집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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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퇴근을 하고 집에 들어오자마자 스피커에서 층간소음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아무 생각 없이 방송을 들으며 물을 한잔 마시는데 방송이 끝남과 동시에 쿵쾅쿵쾅! 바닥을 찍으며 세게 걷는 어른의 발소리가 들려왔다. 한숨을 쉬는 남편을 데리고 그대로 밖으로 나가 아파트 안을 한 바퀴 걸었다. 돌아오는 길, 앞에 서서 걷는 아줌마 3명이 우리 동의 층수를 손가락으로 세기 시작했다.
‘**이네 집이 23층이랬지? 집에 있나 보네’
오잉? 우리 윗집 아는 사람들인가? 순간 남편과 나는 허공에 눈빛을 교환했다.
‘아랫집이 신혼부부라고? 엄청 예민하데’
‘불 꺼져 있네, **이네 오늘 편하겠네. 같이 애 키우는 집이면 편한데 신혼부부는 애도 없고 이해하기 힘들지’
그날, 나는 이해하려 했던 모든 행동과 생각을 멈췄다.
윗집 아이 엄마를 이해하라고 말하는 친언니와도 연락을 끊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