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하는 로망도 존재는 합니다
단칸방에 들어가 책을 읽기 직전이면, 괜스레 혼잣말로 중얼거린다.
‘하아, 그럼 출근해볼까?’
육체적 성장이 멈춘 지도 어언 십 년이 되었으니 명색이 어른이라 불릴 법한데, 이 나이에 출근하지 않는다는 것은 가슴 찔리는 일이다. 딱히 출근이 필요하지 않은 일을 하고 있긴 하지만, 역시 어른이라면 출근을 해야 자연스럽다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방구석에서 일(비슷한 것)을 시작할 때면, 어설프게 출근하는 기분이라도 낸다. 스스로 잉여 인간으로 느끼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방어 기제인 셈이다.
자러 가는 와중에도 출근하는 척을 한다. 아무래도 출근을 하지 않다 보니 생활 패턴이 불규칙적이었던 탓이다. 특별한 약속이 없으면(거의 항상 없다) 낮과 밤이 뒤바뀐 올빼미 생활을 한다. 아침 해가 뜨고 ‘슬슬 자러 가볼까.’ 생각할 즈음이면 가족들이 깨어난다. 다른 사람들이 하루를 시작할 시간에 아직도 잠에 들지 않았다는 건 꽤 민망한 일이다. 그래서 나는 그럴 때마다 종종 일찍 일어난 척을 한다. 가족들이 모두 일하러 나가면 곧바로 침대로 뛰어들 생각이지만, 일단은 주섬주섬 아침 운동이라도 나가는 척을 한다.
오후가 지나 느지막이 일어나면 온 집안이 고요했다. 가족들이 모두 출근한 집에 홀로 남겨지는 건 맞벌이 가구의 미취학 아동이 되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나는 결코 어린아이가 아닌 것을 알기 때문에 더욱 마음이 편치 않았다. 조금 부풀려 말하면, 카프카 변신에 나오는 쓸모 없고 흉측한 벌레가 되어 벽을 타고 다니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다 슬그머니 거실로 기어나가면, ‘드디어 이 집을 차지했군.’ 하고 착각하는 고양이가 대자로 뻗어 일광욕을 즐기고 있었다. 눈이 마주친 녀석은 사생활을 들켜서 언짢은 표정으로, ‘뭐야? 너는 또 출근 안 했느냐?’ 하고 한심하게 쳐다봤다. 그러면 나는, ‘아냐 아냐, 이제 막 하려던 참이라고.’ 하면서 집 근처 카페로 도망치곤 했다. 적어도 가족들이 퇴근할 시간에는 집에 없어야 할 것 같기도 했고.
결론적으로, ‘출근하지 않는 삶’도 나름의 고충이 있다. 물론 ‘출근하는 삶’의 고충에 비하면 땅강아지 다리털만큼도 안될 테니 어디서 함부로 이런 얘기를 늘어놓지는 않는다. 아무리 이해심 깊은 친구라도 출근하고 싶다는 말을 들으면 화낼것이 분명하므로. 그래서 늘 머릿속으로만 생각하는 편인데, 그러다 보니 ‘출근하는 삶에 대한 로망’ 같은 것도 생겼다. 예컨대 퇴근길 지하철에서 일몰을 바라보는 거? 정확히는 이런 상황이다.
“매일 상사가 벌인 일 뒤처리를 하느라 야근에 시달렸는데, 어제는 우연히 제시간에 퇴근하는 날이었어. 얼마나 지쳐 있었는지, 모처럼의 시간인데 누군가 만나고 싶다는 생각도 들지 않더라고. 그래서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가면서, ‘내 삶은 이제 이런 기분의 반복인걸까?’ 하고 고민하던 중이었지.
그런데 문득, 푸근한 따스함이 머리를 쓰다듬는 느낌이 든 거야. 나는 고개를 들었지. 창밖을 바라보니 어느새 한강을 지나가고 있더라고. 그것도 해가 지고 있었어. 생각해보니 항상 저녁 늦게 퇴근하느라, 이 장면을 본 지도 꽤 오랜만인 것 같더라. 보석처럼 반짝이는 해 질 녘의 한강은 얼마나 눈부시던지. 가만히 미소지어 봤어. 그 선명한 황금빛이 혈관을 통해 퍼져 나가기 시작하면서, 어쩐지 나를 위로해주는 기분이 들더라.”
으음, 이것 말고도 ‘출퇴근의 로망’ 시리즈가 몇 개 더 있긴 한데(매일 ‘4412 버스’에서 마주치는 다른 부서 직원과의 로맨스 따위), 아무래도 세상 직장인들의 비난을 한몸에 받을 것 같아 더는 얘기하지 않는 게 나을 법하다. 출퇴근하는 삶을 사는 분들 모두, 뼛속 깊이 존경합니다.
그나저나 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이 일을 시작해서 그런가? 가끔 친구들이 직장 얘기를 하면 동갑인데도 형이나 누나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맞장구치며 공감하고 싶지만, 어색하게도 늘 ‘어른들의 대화를 엿듣는 꼬마 아이’가 된 기분이다. 한때는 교실에서 함께 공부하던 친구들인데 같은 속도로 어른이 되지 못하는 것 같아 아쉽기도 하다.
사람에게는 ‘스스로 어른이 됐다고 느끼는 순간’이 있는 것 같다. 사람은 서서히 나이 들어 가지만 평소에는 그것을 느끼지 못하고 살다가, 어느 특별한 순간에 이제 나도 어른이 되었구나, 하고 생각하게 된다. 예를 들어 주민등록증을 발급받았을 때, 운전을 시작할 때, 처음 술집에서 술을 마실 때, 백화점에서 정장을 구입할 때, 신용카드를 만들 때, 내 이름 뒤에 ‘님’자가 붙기 시작할 때, 은행에서 대출을 받을 때, 직장에 취업할 때, 결혼식 청첩장을 받을 때, 가까운 사람의 부고를 받을 때... 사람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일정한 속도로 어른이 되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사건들이 계단이 되어 한 층 한 층 어른이 되는 것이다.
나는 아직 독립도 못했고 신용카드도 만든 적 없다. 그러니 어른이 되는 계단을 많이 밟지는 못했다. 하지만 살다 보면 때로는 어른처럼 보여야 할 자리가 있어서, ‘어른인 척’만 자꾸 늘어간다. 특히나 내가 하는 일과 관련된 건으로 혼자 어딘가 방문할 때에는 상당히 신경이 쓰인다.
나는 원래 멀리 일정이 있어 하루를 묵어야 할 때, 호텔보다는 찜질방에서 자는 것을 좋아한다. 비용도 그렇고 대부분 평일이라 찜질방에 사람이 없어서이기도 하고, 아무도 없는 이른 새벽의 목욕을 좋아해서 그런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갑자기 전화가 걸려와서, “작가님, 어느 호텔에 계신 지 말해주시면 내일 아침에 모시러 가겠습니다.” 하면 심장이 덜컥 내려앉을 정도로 당황스럽다.
어쩐지 ‘무슨 무슨 맥반석 사우나에 묵습니다.’하고 말하기엔, 보통의 어른은 그렇게 말하지 않을 것 같아서 그렇다. 출장을 나온 사람으로서 조금은 더 바빠 보여야 할 것만 같은데, 홀로 구운 계란을 까며 바나나 우유를 마시고 있다는 게 민망해진다. 그래서 나는 묵지도 않는 호텔을 검색하고는, “예, 내일 아침 9시에 어디 어디 호텔 사거리에 있겠습니다.’하고 대답하기도 한다. 그러고 다음 날에는 목욕으로 뽀송뽀송해진 몸에 여러 가지 어른의 물건으로 치장해서 일터로 간다. 검정 구두와 다려진 셔츠, 서류가방, 명함집 등등.
이건 허세가 아니라 나를 불러 준 사람을 위한 배려 차원이다. 남의 눈을 크게 의식하는 타입은 아니지만, 세상은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는 사람을 주의하며 살 필요가 있는 것 같아 그렇다. 만약 내가 일을 잘 마치고 나가는데 어떤 높은 분이 내 옷차림만 보고, “에이 쯧쯧, 누구 씨는 어디서 굴러먹던 저런 풋내기를 데려온 거야.” 하고 관계자를 질책한다면 상당히 미안할 것만 같다. 기껏 불러 주셨는데 괜히 나 때문에 욕까지 먹다니, 생각만 해도 가슴이 아프다. 그래서 나는 늘 전문적인 어른처럼 보이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물론 실제로 전문성을 기르는 것이 우선이겠지만.
각설하고, 나의 이런 ‘어른이 되지 못했다는’ 생각은 트라우마까지는 아니어도 대충 ‘물고 꼬집으면 아픈 약점’ 정도는 되는 것 같다. 누군가 장난인지 진심인지 모를 말투로, ‘성호씨는 회사를 안 다녀봐서 사회생활은 잘 모르겠어요?’하고 묻는다면 당황해서 어버버하게 될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언제쯤 어른이 된 기분을 느낄 수 있을까 생각해보기도 하는데, 적어도 지금처럼 출근하지 않는 삶이 계속된다면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할 듯싶다.
언젠가 친구 결혼식 사회를 보던 날이 기억난다.
결혼식이 열리던 날 아침, 대학교 졸업식 이후 처음으로 정장을 꺼냈다. 신발장 앞에서 넥타이를 매는데 어떻게 매야 하는 건지 몰라서 한참 인터넷을 찾아보았다. 결국 어떻게 성공은 했지만, 거울을 쳐다보니 어색함을 감출 수 없었다. 잠에서 깨신 어머니가 그 모습을 지켜보시다 한마디 하셨다.
“저러고 출근하는 거면 얼마나 좋아.”
으음, 이거 아무래도 너무 늦지 않게는 성공해야 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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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º사진 : 박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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