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121,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
사실 두브로브니크를 갈 생각은 없었다. 인생 샷 성지이자 왕좌의 게임 촬영지로 유명하다는데. 그놈의 '인생 샷 성지'에 속은 게 한두 번이 아니고, 왕좌의 게임은 본 적이 없어서. 그러나 한 장의 사진 때문에 이곳에 왔다.
안 좋았던 첫인상 때문에 금방 떠나온 자그레브에서 유일하게 기억에 남았던 곳이 전쟁사진박물관이었다. 별생각 없이 들어간 곳인데, 눈길을 끄는 사진들이 몇 장 있었다. 상당수의 사진들 밑에는 파보 우르반(Pavo Urban)이라는 젊은 사진사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의 사진 속 크로아티아 군인들의 눈빛이 매서우면서도 애처로웠다. 흥미롭게 보던 중 맞닥뜨린 'last shot'이라는 제목의 사진 한 장. 그의 마지막 사진이다. 그는 이 사진을 찍고 수류탄 파편에 맞아 살해됐다.
두브로브니크는 1979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일찍이 관광지로 유명했던 도시다. 아일랜드 출신 극작가 버나드 쇼는 이곳을 '지상낙원'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1991년 크로아티아가 유고슬라비아로부터 독립할 것을 선언하자 이곳은 순식간에 전쟁터가 된다. 다른 곳이 함락되는 와중에도 크로아티아군과 시민들은 이곳을 끝까지 지켜냈다. 이후 세계유산 파괴행위에 대한 국제사회의 맹비난이 이어지면서 명분을 잃은 유고슬라비아 정부는 크로아티아의 독립을 승인한다. 두브로브니크는 우리에겐 아름다운 관광지이자 드라마 촬영지이지만, 크로아티아 시민들에게는 전쟁의 격전지이자, 독립의 상징이기도 한 셈이다.
젊은 사진사는 그 전쟁의 한 복판에 있었다. 총알이 발사되고 수류탄이 터져도 끝까지 셔터를 눌렀다. 전쟁이 인류의 가장 큰 야만 중 하나라면, 그것을 기록하고 알리는 전쟁보도는 저널리즘의 가장 중요한 책무 중 하나다. 그래서 많은 기자들이 전쟁터에 나선다. 낱낱이 밝힐수록 가해는 처벌되고 피해는 치유되며 재발은 방지된다는 믿음 때문에. 그렇게 나간 종군기자들은 종종 사라지거나, 납치되거나, 살해당한다.
대중의 미움을 온몸으로 받는 직업 1, 2위를 다투는 게 요즘의 기자다. 이러다 언젠가 '기레기'가 표준국어대사전에 오르는 날이 오지 않을까. 요즘에는 '기더기(기자+구더기의 합성어)'라는 새로운 별칭도 등장했다고 한다. 그래도 나는 기자가 없어져서는 안 될 직업 1, 2위를 똑같이 다퉈야 한다고 믿는다. '역사의 초고'로서의 뉴스가, 두브로브니크 파괴의 증거로서의 파보 우르반의 사진들이, 눈 뜬 장님 같은 우리에게 다음 발을 어디에 딛어야 할지 알려주고 있기 때문에.
두브로브니크 곳곳을 뒤져 그가 마지막 사진을 남긴 곳을 겨우 찾았다. 알고 보니 두브로브니크 구시가지의 가장 중심 되는 곳이었다. 공사 중이라 찾는데 애를 먹었다. 두브로브니크의 수호성인 성 블라시오의 성당이 있는 광장, 그 중심에 기사 롤랑의 기둥이 있다. 그와 똑같은 앵글로 찍어보려 했는데 영 자세가 엉성했다. 아무리 카메라를 낮춰봐도 같은 앵글이 나오지 않았다. 바닥에 엉거주춤 주저앉아 카메라를 바닥에 두다시피 하고 아래에서 위로 올리니, 그제야 그가 찍은 것과 같은 구도가 나왔다.
그가 죽어간 자리에서 그를 생각했다. 빗발치는 총탄 사이에 엎드린 채 도시의 두 수호자를 찍고 있었을 젊은 사진사의 마음을. 그의 한껏 찡그린 표정과 덜덜 떨렸을 온몸을, 그러면서도 조리개의 넓이를 신경 썼을 그 악착같은 순수를. 지금의 나보다도 어린, 스물세 살의 젊었던 그를 위해 기도를 올렸다. 왁자지껄한 관광객들의 소음 사이로 어디선가 찰칵대는 셔터음이 들리는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