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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쑥과마눌 Nov 13. 2024

솔 벨로-오늘을 잡아라

잡고 싶지.. 물론..


"인생 절반에 저질렀던 실수를 만회하느라


인생 후반을 고스란히 바쳐야 한다면...."


                              -오늘을 잡아라 중에서




좋은 책, 훌륭한 고전의 특징을 두 가지로 들자면,

하나는 시대를 뛰어넘는 삶에 대한 고찰이겠고,

다른 하나는 바로 그 점 때문에 읽으면서 괴롭다는 점이다.


오늘을 잡아라는 윌헬름이라는 중년의 위기 속의 남자의 하루를 

3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따라다니며 기록한다.


이 소설에는 윌헬름외에  부유하게 은퇴한 의사인 그의 아버지, 

사기꾼인 듯, 사기꾼 아닌 듯, 사기꾼 같은 탬킨박사

증권가 객장에서 만나는 늙어 기운 없지만, 돈만은 많은 래퍼포트,

자신을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온갖 경제적인 요구를 끊임없이 하며,

자신이 원하는 건 무조건 안 들어주려는 아내 마거릿이 전화 통화 속에 등장한다.



이런 조합의 인물들이 등장하면, 

스토리는 다 읽기도 전에 예측이 가능하다.


인간관계나, 직장에서 이런저런 결정적인 실수를 하겠고, 

선택 앞에서는 장고 끝에 악수를 두다가,

계속 몰리는 상황으로 자의 반타의 반에 몰리면 

자신마저 틀리다고 생각하는 희망에 덧없이 모든 것을 날리는 이야기가 될 것이다.


이 작품, 오늘을 잡아라, 도 예상하던 대로 흘러간다. 

감정적이고 즉흥적인 결정으로 경제적으로 쪼들리게 된 중년의 남자가,

여전히 매력적인 외모와 호감 가는 성격에도 불구하고,

아내는 이혼을 못해주겠다고 각종 고지서를 보내며 난리고,

부유한 아버지는 한 푼도 못 보태겠다고 단호하며,

사랑하는 여자는 이혼을 하지 않는 한, 관계를 끝내겠다고 나와 더욱  궁지에 몰린다.


그렇게 궁지에 몰린 남자는 그런 처지에 사람들이 흔히 하듯이 잘못된 선택을 하게 된다.

탬킨 박사가 윌헬름의 불안을 이해하고, 

옹색해진 자신의 처지와 헛헛한 마음을 적절하게 위로하며, 

모든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다며 라드라는 종목에 선물 투자하기를 권유했기 때문이다.

평소에는 가타부타 말씀이 없으신 아버지가, 유일하게 탬킨을 조심하라고 경고했건만 말이다.

반신반의하면서도 그렇게 하기로 결정을 해버린 윌헬름은

라드값이 폭락하면서, 패닉 하는데,

같은 호텔에 머물던 탬킨박사는 자취를 감춘다.


그를 찾아 헤매던 윌헬름은 어느 성당 앞에서 탬킨박사의 모습과 비슷한 이를 봤다고 

생각하며, 가까이 가려다가, 그만, 그 성당에서 이뤄진 장례식 인파에 쓸려서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러다가, 열린 관속에서 가족친지들에게 마지막 모습을 보여주고 있던 걸 보게 된다.

자신처럼 중년의 남자였다. 


윌헬름은 순간 멈추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앉는다.

그리고는, 눈물을 흘린다.

너무나 진심으로 우는 그를 보고, 유족들이 소곤거린다.

친척인가.. 하고.

그럼에도 윌헬름은 녹아내릴 듯이 울고 있다.







우리는 세상이라는 막강한 적을 만나, 

골목으로 몰리며 정신 똑바로 차리고 제대로 살라는 협박을 받으며,

그 대가로 무용하고 아름다운 많은 것들을 사그라뜨리는 걸로 지불하며 산다.


나라는 사람이 순하든 아니든, 

안물안궁인 세상이  출구를 막고, 냉혹한 현실을 들이밀면, 

결국 누구든 백전백패당할 것이 이 세계 논리다.


이렇게 사는 게 녹록지 않아서,

가장 걱정되는 건 아이들이었다.

이 책이 말하는 대로,

인생 전반에 저지른 실수를 만회하는데,

인생 후반이 다 소모된다고 나도 생각하니까.


지난주에는 컴퓨터공학을 전공하는 큰 아이가,

자신은 철학이나 문학으로 부전공을 하고 싶다고 했는데,

내가 한방에 일축해 버렸다.


철학과 문학은 하버드 간 아이들에게 전공을 맡기라고.

하버드라는 간판이 그래도 밥은 먹게 해 줄 테니까.

너는 AI에 필요한 수학이나, 통계 뭐 이런 걸 하거나,

굳이 문과 쪽 공부라면 경제를 하라고.


애 아빠가 거침없는 내 직설화법에 눈치를 보면서,

조심스레 철학과 문학은 평생에 걸쳐서 탐구하고 추구하는 거지,

학교에서 전공해서 그걸로 학위를 딸 필요는 없는 것이라고 거들었다.


주인공 아버지가 윌헬름이나 윌헬름의 누나가 

부유한 자신에게 경제적인 지원을 기대하고 요구할 때,

그가 보인 태도를 보면서, 큰 아이에게 발끈하며 내리꽂았던 나 자신이 돌아 보였다.


내가 이 시대에 너무나 익숙해진 탓인지,

아버지의 논리가, 아버지의 시선이 공감이 되어서이다.


물론, 자신의 취미로 그린 그림의 전시회를 열어 달라는 윌헬름의 누나의 요구와,

실직하고 사이 안 좋은 아내에게도 끊임없이 많은 돈을 보내는 윌헬름의 케이스는 다를 수 있지만,

중년이 되어 읽는 고전은 어느 캐릭터 하나도 쉽게 평가할 수 없게 된다.

세상의 경험치가 배경이 되어 있어, 어느 것 하나도 간단하지 않게 되거든.


주인공 윌헬름은 어디에나 어느 집에나 있다.

그가 한 선택은 누구나 할 수 있는 판단이고 잘못이 아니었다.  

그의 외모를 보고 접근한 배우 스카우터의 말에 현혹되어 캘리포니아에 갔고,

자신의 재능이 없음을 깨닫고도 7년을 뭉그적 되었고,

그 후에 행로가 꼬여서 이런 하루를 보내게 된 것이다..


누구든 정해진 안전한 선로를 이탈한 선택을 한다면,

다시 그 트랙으로 돌아오는데, 예상외에 품이 많이 들게 된다.

세상은 그렇게 그 모양으로 설계되어 있다.


가보지 않았던 그 길을 가 보겠다는데,

반대한 결정을 한 그가 버텨보겠다는데,

그 후에 딱히 원하던 직장은 아니지만, 들어가서 잘 해내다가,

누구나 맞는 뒤통수에 그 역시 맞았고, 

그 배신감에 감정적으로 그만두게 되었다는데..

누가 윌헬름의 선택이 어리석기만 하다고 할 수 있을까 싶다.


그 결과로, 이리저리 헤매는 주인공이 일상에서 맞닥뜨린 후회와 회한에,

끊임없이 스스로 이제는 과거는 그만두고 현실에 집중해서 살아야겠다고 되뇌는데..

어찌나 공감이 되던지,

독자로서, 엄마로서, 

참 읽어내기 힘들었다.



또 가을이다.

명언이 많은 책이니, 몇 가지 가져와 보았다.


#솔벨로

#노벨문학상타셨다고

#역시

#아무나타는상아니다

#오늘을잡아라

#잡고싶지

#암만


그는 행동을 취하기 전까지 많이 생각하고 망설이고 또다시 한번 숙고하지만, 결국 어떤 식으로든 행동해야 할 시기가 닥치면 하지 않기로 수없이 마음먹었던 바로 그 길을 선택하고 말았다. 그는 자신의 생애에서 열 번이나 이런 결정을 내렸다. 그는 할리우드행이 큰 잘못이라는 결론을 내리고도 그곳으로 갔다. 그는 자기 부인과 결혼하지 않기로 결심하고도 도망까지 가서 결혼했다. 그는 템킨 박사와 함께 돈을 투자하지 않겠다고 마음먹고도 그에게 수표를 주었다. (41쪽)


"잘 가거라, 청춘이여! 오, 잘 가거라, 경이로웠지만 어리석게 허송세월한 나날들이여! 나는 그때 얼마나 철없는 멍텅구리였던가. 지금도 그렇지만." (52쪽)


존재 자체가 그에게 안겨 주는 특이한 부담감이 혹이나 짐처럼 그를 억눌렀다. 조용한 순간, 약간의 피로감으로 생존 경쟁에서 싸우기 버거워졌을 때, 그는 존재의 불가사의한 무게를 쉽게 느꼈다. 이런 이름 없는 것들을 모두 모아서 짊어지는 것이 그의 인생살이였다. 분명 이런 것이 사람이 살아가는 이유일 것이다. (67쪽)


"나는 누구도 내 등에 짊어지고 싶지 않단다. 다들 내 등에서 내려가! 그리고 윌키야, 너에게도 똑같은 충고를 해 주마. 누구도 네 등에 태우지 말아라." (95쪽)

결국 인생살이란, 즉 인생의 진짜 임무란, 윌헬름처럼 특이한 짐을 짊어지고 수치심과 무력감에 사로잡혀 눈물 맛을 보는 것이다. 이 유일하고도 최고로 중요한 일을 행하는 것이야말로 진짜 인생을 사는 것이다. 아마도 실수를 저지르는 것이야말로 그가 사는 목적이며, 이 세상에 살고 있는 그라는 존재의 본질을 보여 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97쪽)

"나는 자네에게 좋은 일을 하려고 하는 거야. 자네에게 고통과 결혼하지 말라고 말해 주고 싶어. 그런 사람들이 좀 있거든. 그들은 고통과 결혼해서 꼭 부부처럼 함께 먹고 자고 하지. 그러다가 즐거움을 알게 되면 자기가 간통을 저지르고 있다고 생각할 정도가 된다니까." (167쪽)


나는 살아남으려고 너무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그것이 내 머리를 돌게 만든다. 이렇게 열심히 노력하면 오히려 궁극적인 목적을 잃게 된다. (169쪽)


그들은 돈이 필요 없는데 돈이 있고, 나는 돈이 필요한데 돈이 없다. 그 반대로 된다면 일이 굉장히 쉬워질 텐데. (17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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