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글쓸 때 우리말 속담을 즐겨 쓴다. 다른 글에서도 밝혔지만, 한국어를 모국으로 쓰는 사람으로서, 속담은 한국인의 삶과 정서를 잘 포착한 문화와 예술의 진수라 할 수 있다. 세월이 흘러 오늘의 정서에 안 어울리는 속담마저도 그게 나온 사회적 맥락을 보여주고 있어서 재미있다. 오늘도 속담 하나로 놀았다.
"과부 사정은 홀아비가 안다."
이 속담이 재미난 포인트는 두 가지다. 과부와 홀아비라는 단어와, 서로 먼 젠더가 서로 사정을 이해한다는 맥락이다. 과부(寡婦)란 남편이 없는 여자다. 남편이 죽을 때같이 따라 죽지 못하고 아직도 살아남아있는 미망인이란 말처럼 존재 자체가 결핍인 걸 보여주는 말이다. 홀아비는 짝이 아닌 홀로, 아내가 없어서 혼자 고생할 남자의 삶에 방점이 찍힌 단어다. 아내 없지만 따라 죽지 않아 욕먹을 존재는 아닌 게다. 아내 다시 얻어 자식 키우면 되는 세상이었다. 반면 여자는 홀어미라기보단 남편 없는 존재로 규정되었다. 젠더 이분법으로 기울어진 세상이었으니까.
그런 세상에서 과부 사정을 홀아비가 안다고? 공통된 결핍을 인식하면 그리된다. 과부 사정을 옆집 아줌마가 안다고 하지 않았다. 생물학적으로 같은 여자가 아닌데, '정상성'으로 살 땐 전혀 멀던 남자가 여자 사정을 이해한다고 한다. 정치사회적인 맥락이 같을 때, 공통된 결핍을 인식할 때 사람들은 연결되고 이해할 수 있게 된다는 말이다. 정상성이 깨지고, 소수자가 되어 옆구리 시린 결핍, 이게 과부와 홀아비를 연결하는 고리다.
아침에 연대에 대해 생각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대는 결코 생물학적인 성이 같다고 이루어지는 게 아닌 거야 두말하면 잔소리겠다. 이웃에 살아도 한 집에 살아도, 같은 여자 같은 남자끼리도, 부부라도, 너와 나를 구별하는 다름에 방점을 찍는 순간 연대는 어렵다. 같은 직업이라고 연대가 쉬운 건 아니다. 장애인 비장애인, 페미 또는 보수, 너는 기독교 나는 불교… 이런 라벨링이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과부 사정은 홀아비가 안다. 작가와 독자와 글쓰기를 생각하다 그리됐다. 이름 모를 작가들, 이름 없는 출판사들, 그리고 책 읽고 글을 써주는 이들이 과부와 홀아비처럼 연결돼 보였다. 내 책을 낸 출판사 생각비행과 내가 과부와 홀아비처럼 서로의 사정을 아는 관계였다. 땀 흘리고 구토하며 쓴 내 책을 마음 들여 읽고 글로 연대하는 이들이 눈물나게 고맙게 와닿았다. 작가로서 책을 잘 읽어내고 좋은 글 쓰는 건 기본 중의 기본이겠다. 책쓰기, 읽기와 서평 쓰며, 치유와 연대의 글쓰기로 잘하고 싶어진다. 과부 사정 홀아비가 아니까.
새 책 『숙덕숙덕 사모의 그림자 탈출기』가 나온 지 3주 차다. 두 번째 책이라 서서일까, 전작 『내 몸은 내가 접수한다』 때도 그랬던가 싶을 만큼, 이 책 홍보에 촉각을 세우고 있는 나를 본다. 그런들 뭘 거창하게 하겠는가. 책이 조금이라도 알려지고 팔리길 바랄 뿐, 고작 인터넷으로 기사나 서평이 올라오는지 살피는 정도다. 지금까지 확인된 책 소개 글은 '캔서앤서'에 홍헌표 대표와 청어람의 오수경 대표의 포스팅이 있었다. 이고은 작가 통해 연결된 경향신문엔 책 표지 없는 신간소개, 그리고 내가 애독하는 여성신문 '책타래'에 표지와 함께 소개된 게 전부였다. 역시 여성신문이었다. 종이신문이 오길 기다리며 여성신문 인터넷판에 나온 책 소개 글을 옮겨 적어 본다.
저자는 폐쇄적이고 가부장적인 선교 단체에서 자기를 버리고 낮추기를 강요당하며 살아온 목사 사모였다. 하지만 페미니즘을 접하고 그는 달라졌다. 사모라고 평생 그림자 노동을 요구받는 것 역시 폭력이라는 것을 깨닫고, 저자는 마흔의 나이에 기독교 선교 단체를 떠났다. 대신 남편과 함께 페미니즘을 공부하고, 교회에서 페미니즘과 기독교의 맥락을 토론하는 독서 모임을 만드는 등 주변을 변화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그런 60대 기독교 페미니스트의 인생이 담긴 책이다. 여성신문(https://www.womennews.co.kr) 인터넷판 7월 6일 자.
서평 글이 아직 안 올라오니 기다리기 갑갑할 정도다. 이번엔 출판사에서 홍보용으로 책을 직접 보낸 곳이 모두 27권이었는데 말이다. 내가 연을 가진 모임의 리더, 토론 모임 이프, 백합과 장미, 글쓰기 모임 수글수글, 블로그 이웃과 브런치 글벗들을 망라했다. 글을 잘 쓰고 못 쓰고 따지지도 않았고 조회수나 방문자 수도 따지지 않았다. 오직 내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인터넷에 노출하도록 올리는 조건뿐이었다.
"서평 왜 아직 안 올려? 릴레이로 올라올 때 된 거 아냐?"
어제는 가까운 글벗 짱아와 심박에게 전화로 물어보았다. 돌아오는 대답은 약속이나 한 듯 같았다.
"화숙이 책이니까 더 잘 써주고 싶어서 그래."
"너무 좋은 책인데 뭐라 써야 할지 고민이 많아서 그래."
아~ 심각하지 말고 쉽게 편하게 쓰라고 했잖아. 노출이 중요하다 했잖아. 단톡방에 또 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서평 쓰는 벗들아! 또 부탁할게. 아는 사람 책 서평 쓰자면 더 잘 써야 할 거 같고 부담되고 의식될지 몰라. 부디 쉽게 일단 써서 포스팅해 주길 부탁할게. 합평할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합평 후에 인터넷 글은 수정 가능하니까, 일단 글을 노출시켜주길 부탁해. 글벗들이 쓴 서평이 릴레이로 올라오는 상상만으로 나는 행복해. 그리고 인터넷 서점 한 줄 평이라도 써 주길!"
" 다 아는 소리지만 서평 구성이랄까 간략 팁! 이건 글쓰기 쉬우라고 하는 소리지 더 잘 쓰라고 하는 소리 아니니 명심하길. 자기만의 제목 잡기. 본문 구성에 책 제목, 저자 이름, 책 간략 소개 들어가게. 안 읽은 독자를 위한 정보인 셈이지. 읽고 싶으라고.ㅋㅋㅋㅋ 한 문장이든 카피든 책에서 인용하고 자기 목소리로 풀어내기. 누가 읽으면 좋을지 추천하고, 자기만의 관점까지 들어간 글이면 금상첨화겠지. 홧팅이야!!!!"
아~ 오늘 아침에 드디어 블로그 이웃의 포스팅이 올라오긴 했다. 파워블로거에 인플루언서이신데 서평이라 하기엔 아쉬운, 체험단 제품 써본 후기 같은, 아주 '겉핥기' 포스팅이었다. 솔직히 너~무 양도 질도 모자라는 글이라 실망을 금할 수 없었다. 책을 어떤 식으로 읽느냐는 전적으로 독자의 몫이란 거 나도 안다. 작가는 책을 떠나보내고 책이 만들어내는 새 이야기를 들을 수 있으면 영광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읽으라고 쓴 책 소개 블로그 글 아닌가. 내 성질머리 참지 못하고 비밀글로 피드백 남기지 않을 수 없었다. 이렇게 남겼다.
책벗님 블로그 서로이웃 꿀벌작가 김화숙입니다. 마나블로그 님들 중 첫 포스팅이 올라와서 반갑게 읽었습니다. 써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책벗님의 취향 책은 아니었던 듯요.^^ 제 전작 『내 몸은 내가 접수한다』 나왔을 때 뵌 인연이라 더욱 반가웠습니다. 바쁘신 블로거로서 책 한 권 완독하기도 서평 쓰기도 얼마나 어려운지 이해하며 또 감사합니다. 그럼에도 지나치기엔 아쉬움이 있어서 씁니다. 누군가가 읽을 글을 쓰는 블로거니까 책 소개 잘하는 인플루언서로 승승장구하시길 응원하는 맘으로요.
1. 제목을 좀 더 고민하셨으면 좋았겠다 싶고 아쉬워요. 글 쓰는 사람은 단어 하나도, 아 다르고 어 다르다고, 제목 특히 중요하잖아요. '중년 할머니의 수필'이라니, 책벗님의 관점이지만, 책 소개로도 작가 소개로도 무성의해요. 손자 가진 할머니 이야기가 아니잖아요. 본문에 책 제목이 한 번도 정확히 안 나와요. 해시태그에 책 제목 정확하지 않게 썼고요. 책을 완독 못하고 하는 포스팅이면 솔직히 고백하는 게 좋아요. 애정으로 찬찬히 읽고, 책의 장점과 성격을 포착한 제목부터 고민하시길 바라봅니다.
2. 작가는 어떤 사람이지? 무슨 생각으로, 무슨 말을 하려고 이 책을 썼는가? 어떤 독자에게 가닿고 싶은가? 서평에서 빠질 수 없는 요소죠. 막연히 이분과 비슷한 사람이 읽으면 좋다니, 어떤 사람을 뜻하죠? 할머니? 생각하기 머리 아프니까 이렇게 모호한 표현을 쓰면 독자가 싫어해요. 어떤 사람이 이분과 비슷하다는 거야? 정보가 없잖아요. 책 앞날개에 작가 소개 있잖아요. 프롤로그 에필로그 요약해서라도, 어딘가에서 이런 책을 찾을 독자를 배려하는 책 소개로 쓰면 좋겠습니다. 너무 과한 욕심인가요?
3. 책 벗님의 독서 취향이 자기 계발서라 분류 카테고리가 그것뿐인 건 이해했어요. 그렇다면 이 책이 어떤 점에서 자기 계발이 되는지, 책의 정신이라든가 키워드가 나오도록 써주시면 좋겠어요. 종교 이야기가 나온다며 퉁치면 독자는 무슨 종교? 이 세상엔 종교가 참 많죠. 종교 가진 사람은 이 책 읽지 말라는 건지 읽으라는 건지, 독자를 고려하시는 서평쓰기, 진심으로 부탁드려요. 저는 다양한 종교 관련 책 아주 관심있게 읽어요. 왜냐면 종교는 소재일 뿐 인문학적으로 정치사회적으로 들여다보면 성차별, 여성 혐오, 여성의 자아 찾기, 가부장제 비판, 하프타임, 자유와 해방, 민주주의 등 무궁무진 쓸 말이 많거든요.
할 말은 태산이나 요정도요. 글쓰기를 너무나 사랑하며 글쓰기로 스스로를 치유하며 사람들과 연대하는 한 사람의 애정으로 받아주시면 고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