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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꿀벌 김화숙 Aug 23. 2024

제발 비건도 먹을 게 있는 백두산 여행이길 기도한다

단체여행에서 설마 식사 때마다 논비건 음식만 나오는 거 아니겠지?

설마 백두산 여행 3박4일간 논비건 음식만 맨날 나오는 건 아니겠지? 백두산으로 떠날 날이 35일 앞으로 다가온 오늘, 먹는 문제를 질문하게 됐다. 단체 여행에서 비건으로서 겪는 딜레마 때문이다.


동안은 단순히 생각하려 노력했더랬다. 중국 현지 식당이란 게 워낙 음식이 푸짐하고 여러 메뉴가 나오니 몇 가지 채소 요리를 골라 밥이랑 먹으면 배곯을 일이야 있겠냐고. 도저히 먹을 게 없으면 과일이라도 사 먹으면 되지 하고 말이다. 그런데 오늘은 다르다. 덮어뒀던 질문들이 속에서 다 쏟아져 나왔다.  


3박 4일 단체 여행 동안 과연 비건이 안심하고 맛있게 먹을 음식이 있을까?

식당과 메뉴 선정 과정에서 비건은 고려 사항에 포함되기나 할까?

비건은 티 내지 않고 먹는 시늉 하며 싫은 음식 앞에 버텨야 할까?

비건은 먹을 게 없어 배를 곯아도 말없이 견뎌야 하는 걸까?




그럴 만한 일이 있었다. 홍천으로 17명이 함께 다녀온 여신협 여름수련회 덕분이었다. 모든 게 자연스럽고 만족스러운 1박 2일이었는데 오직 하나 음식이 문제적이었다. 내돈 직접 내고 사먹는 게 아니지만 눈 질끈 감는다고 될 일이 아니었다.


첫날 저녁 식사 메뉴에서 유일하게 가능한 선택지는 '차돌박이 된장찌개'였다. 나는 고기 빼고 해달라고 주문했다. 16,000원 가격이 무색하게 된장찌게는 두부 한 조각 없는 짠지 찌게 맛이었다. 곁들여 나온 반찬이란 열무김치, 어묵, 오징어젓갈. 생채소 하나 없었다. 그야말로 밥과 된장찌개 건더기만 먹었다.


다른 벗들이 샌드위치 등으로 아침을 먹을 때 나는 차와 복숭아 몇 쪽 먹었다. 아침이야 평소 안 먹으니 아쉬울 게 없었다. 점심 식당은 오리고기구이집, 고기를 구워 먹는 사람들 곁에서 메밀국수를 먹었다. 아침에 비건 이야기를 들은 후라 고기 아닌 쪽을 택한 사람들이 다행히 6명이나 있어 함께였다.


용산역까지 카풀로 함께 온 것만도 고마운데 빙수와 저녁식사 대접까지 받게 됐다. 적당히 대화하고 먼저 일어나고 싶었으나 그러지 못했다. 저녁까지 먹여 보내고 싶어 하는 호의를 거절할 수가 없어서였다. 비건이 기쁘게 먹을 수 있는 식당 찾아주길 말할 배짱도 없었다. 불편한 맘으로 미적대다 이끌려 다섯 사람이 일식집에 들어갔고 대접하는 분의 추천대로 한 그릇 초밥을 29,000원짜리로 먹게 됐다.


가지가지 생선살이 초밥 그릇 위에 덮인 걸 보는데 비위가 상했다. 솔직히 이런 상황이 너무 싫었다. 내가 어린아이도 아니고 이게 뭐란 말인가. 비건이 뭔지 사람들은 역시 잘 모르는 눈치였다. 아침에 그렇게나 열심히 비건 이야기를 한 건 뭐란 말인가. 내게 이런 음식점에 가도 되겠냐 묻지도 않았다. 대접하고 싶은 마음을 원망할 수도 거절할 수도 없는 내가 바보같았다. 생선살을 보는 맘이 편치 않았다.


"사케 한 잔 어떨까요?"

내게 괜찮겠냐 묻길래 기다렸다는 듯이 내가 말했다. 사케 힘으로 초밥을 먹어볼 심산이었다. 와인 맛 나는 사케를 나 혼자 한 잔 받았다. 큰 수행이라도 하듯 나는 한 조각 생선 살과 밥 한 덩이와 고추냉이 간장을 김에 싸서 입에 넣었다. 진심으로 맛이 없었다. 분위기를 생각해서 어쩌지 못하고 씹고 씹고 삼켰다.


"괜찮아요? 드실만해요?"

질문을 받았을 때 내가 웃지도 울지도 못하고 말했다. 대접하는 사람 맘 상할까봐 최대한 완곡하게 말했다.

"네, 사회생활 하고 있어요. 안 먹던 건데 백만 년 만에 먹는 겁니다."

함께 한 네 사람이 모두 알아듣는 눈치를 보냈다. 아하, 사회생활이군요, 라며 고개를 끄득였다. 나는 이러고 있는 자신이 맘에 안 들어 죽을 맛이었다. 결국 먹을 걸 토하게 될 거란 예감을 하고 있었다.


사케 한 잔 덕분에 꾸역꾸역 생선살을 다 먹었고 우리는 헤어졌다. 나는 신용산역 화장실로 직행했다. 먹고 싶지 않을 걸 '사회생활'로 먹은 자신이 마음에 안 들어 견딜 수가 없었다. 내 속은 내 맘을 알고 먹은 음식을 다 밖으로 밀어내 보내주었다. 싹 다 토하고 입을 헹구고 가벼운 몸과 맘으로 전철을 탔다.




혜화역에서 내려 카페에 앉아 글을 쓴다. 단체 1박2일 여행에서도 이런데 3박4일을 그것도 중국에서, 백두산 여행이 어떨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솔직히 '사회생활'로 먹고 토해버린 일은 처음이 아니다. 작년에 참치 식당하는 지인을 몇 년 만에 만나서 얼떨결에 참치회를 먹는 척했던 날이 생각난다. 그날 딸한테 참교육 당하며 다 토한 기억이 생생하다. 자기 의지에 반하여 그런 짓 안 하리라 했건만 또 했다. 부끄럽다.


제주도 여행에선 그러나 자발적으로 예외적인 논비건 식사를 하기도 했다. 제주도에서만 먹을 수 있는 갈칫국을 별미로 먹지 않았던가. 비건으로 사는 건 늘 딜레마다. 백두산 3박 4일 단체여행이 급 걱정스럽다. 나는 무얼 어떻게 먹게 될까? 오늘 일을 경고요 수업이었던 셈 치자. 백두산이 내게 마음 준비하고 길 나서라고 하는 것 같다. 두려워하지 말고, 더 당당하게, 비건은 이런 거 안 먹는다고 말하라 한다.


설마 백두산 여행 3박 4일간 논비건 음식만 나오기야 하겠나. 제발 단체 손님 받는 식당들은 좀 알고 있길 바란다. 여행자들 속엔 비건도 있다는 것을. 비건도 맛있게 먹을 게 있는 백두산 여행이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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