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 엄마의 화분에서 부추를 자르며
채식생활이라 쓰고 채소를 먹기까지의 번거로움이라 읽어도 된다
"이것도 가져다 먹어라."
당신이 키운 화분 부추를 가리키며 엄마가 말했다. 먹기 좋게 자란 부추였다. 엄마집 냉장고정리를 끝내고 먹을만한 식물성식품을 다 챙긴 후 출발하려던 참이었다. 또 입원하면 엄마가 이 부추를 직접 잘라 먹을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는 소리였다. 부추를 버리고 갈 수 없었다. 짐을 놓고 부추를 잘라 다듬어 캐리어 한쪽에 끼워넣었다. 부추향기가 진동하는 손을 비누로 알뜰히 씻었다. 곧 부추비빔밥을 먹으며 엄마와 통화하겠지. '채식생활'이라 쓰고 '채소를 먹기까지의 번거로움을 피하지 않는 일상'이라 읽어도 되겠다. 이 보잘것없는 부추 한 줌이 기후위기에 무슨 소용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