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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비 Feb 28. 2019

'지금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것

'Now Now' 주체적인 인간의 발버둥

 나는 '모두가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세상을 꿈꿉니다.'라는 거창한 의미를 내 삶에 새기며 살아가고 있다. 거창함 속에 내가 한없이 작아지기도 한다. 나는 상상하는 것을 당장 현실화할 수 있는 능력은 없다. 경제적, 사회적 자본은 한 없이 부족하고 무작정 일을 벌일 수 있는 대담함도 없다. 그냥 불확실하고 불안한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하나의 평범한 인간일 뿐이다.


그럴 때일수록 내가 지금 당장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 집중하려 한다. 오늘 하루에도 나의 가치와 의미를 담으며 살아가려 노력한다. 제주에서 서울로 돌아와 주체적인 삶에 대한 고민과 행동을 꾸준하게 하고 있다. 모든 문제를 관통하는 답을 찾으려 하는 것은 아니다. 진리와 같은 답의 존재 유무도 모른다. 단지 '지금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한 힌트를 얻으려는 발버둥이다. 지금 당장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NOW NOW' = 'Shortly'

'JUST NOW' : 'Later'


서퍼 조준희, 출처 : 조준희 님 페이스북

 지난여름, 제주 서귀포에서 조준희 서퍼의 강연을 들은 기억이 있다. 다양한 영감을 받은 기분 좋은 기억이다. 많은 고민을 가지고 있던 나에게 응원하는 에너지를 듬뿍 주었다. 프로 서퍼가 되는 과정과 경험, 서핑에 담긴 'Now Now'의 철학이 기억에 남는다.


 남아프리카에서 'Now'는 '지금'이라는 뜻보다는 'Eventually, Maybe'(결국에, 아마도 등)의 의미로 사용된다. '지금'을 의미하는 말은 'Now Now'이다. 재미있는 점은 'Just Now'의 뜻은 지금의 반대인 '나중에'로 사용된다.


 조준희 서퍼는 서핑은 지금 당장에 온전히 몰입해야 하는 'Now Now'의 철학을 가진 스포츠이자 예술이라고 표현했다. 슬럼프를 겪던 중 만난 스승은 그의 서핑을 보고 '그건 서핑이 아니다.'라고 평했다 한다. 그리곤 서핑보드를 빼앗고 수영 연습부터 다시 하게 했다. 그리고 보드 없이 파도를 타는 보디 서핑을 보여주며 진짜 서핑을 알려주었다고 한다. 스승이 전해준 서핑은 지금 당장 나에게 주어진 파도를 온전히 느끼고 즐기는 'Now Now' 그 자체였다.


 서핑은 자연환경의 요인이 중요한 스포츠이다. 파도가 없다면 서핑을 할 수 없다. 페이스북에서 서핑을 즐기시는 분이 태풍이 다가오는 바다를 보고 '지금이다!'며 좋아하시는 모습을 본 적 있다. 위험하겠지만 서핑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을 만나 반가워하는 그 모습을 보며 절로 웃음이 났다. 그렇다. 서핑은 파도의 움직임에 따라 몸을 움직이는 스포츠이자 파도를 표현하는 예술이다. 지금 이 순간, 자연에 몸을 맡기고 적절한 반응을 하는 것 외에는 인간이 할 수 있는 게 없다. 모든 생각을 내려놓고 지금 이 순간만이 존재하는 아름다운 예술이다.


 강연을 들을 당시 나의 고민은 '욕망'에 관한 것이었다. 여러 가지 이유로 나의 욕망이 'Just Now'되는 상황에 대한 고민이었다.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이 자꾸만 나중으로 밀려나고 있었다. 왜냐하면 지금 당장 그것으로 먹고살 수 없어서, 아직 사회 안정망과 생태계가 형성되지 않아서, 내가 이 사회에 증명할 수 있는 그 어떤 것도 가지고 있지 못해서다. 그렇게 나는 욕망을 잠시 미뤄두고 'Just Now'의 삶을 살고 있었다. 지금 내가 하는 활동이 풍요로운 가을을 만드는 일이라 믿으며 살고 있었다. 불확실한 세상에서 혹시 나의 삶이 추운 겨울이 되진 않을까? 불안에 떨면서 말이다. 


불확실한 세상에서 혹시 나의 삶이 추운 겨울이 되진 않을까?
 불안에 떨면서 말이다.


 결국 주체적인 삶 또한 서핑처럼 'Now Now'의 예술이 아닐까? 지금 당장 내가 처한 상황에 몸을 맡기고 '자기다움'의 기준으로 반응하는 게 주체적인 삶이 아닐까? 어차피 불안할 거라면 나중 말고 지금을 위한 삶을 살아가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이 질문에 정답은 없다. 각자의 '자기다움'의 기준으로 다르게 반응할 뿐이다.


 이는 스티브 잡스가 말한 'Connected the dots'과 연결하여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는 스탠퍼드 졸업 연설에서 "우리는 지금의 순간을 통해 미래를 알 수 없다. 지금 이 순간들이 긍정적인 미래와 연결될 것이라고 믿을 뿐이다. 왜냐하면 현재의 순간이 긍정적인 미래와 연결된다는 믿음은 우리들이 진심을 따라갈 수 있도록 북돋아주고, 앞을 가로막는 힘든 장애물도 넘어갈 수 있는 힘이 되어주기 때문이다."라고 이야기한다. 우리는 지금을 지나 과거가 되어야 그때의 순간을 연결하여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스티브 잡스가 대학에서 타이포그래피를 배운 순간이 맥킨토시를 만들 때 의미를 가지게 된 것처럼 말이다.


 나는 지금에 온전히 집중하며 살아가는 것, 상황을 파악하고 방향을 점검하는 것 두 가지를 분명하게 구분하기로 했다. 나는 지금 이 순간에 온전히 몰입하는 느낌을 좋아한다. 책에 온전히 몰입되어 작가와 소통하는 기분, 음악에 몰입되어 금방이라도 눈물이 떨어질 것 같은 기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새로운 것을 기획하고 글을 쓰는 기분을 좋아한다. 판단하는 좌뇌의 조잘거림이 잦아들고 온전히 수용하는 기분을 좋아한다. 나의 삶에서 온전한 몰입은 살아있음을 느끼게 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불확실한 사회에서 최선의 판단으로 방향을 정했다면 의문은 잠시 접어두고 몰입하여 나아가려 한다. 어차피 정답은 없으니 나다운 판단을 믿고 나아가려 한다.


 서울로 올라와 'Now Now(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을 여러 가지 기획하고 있다. '나를 담는 거울 : 명함', '관계의 그물', '나의 렌즈 : 개인 구성 개념', '일상의 고리 : 루틴', '뻔한 듯 뻔하지 않은 : 단어' 등 사람들과 함께 워크숍의 형태로 이야기 나누고 주체적인 삶을 함께 고민할 수 있는 콘텐츠를 기획했다. 머릿속에 아이디어는 넘친다. 그중 하나를 정해 프로토타입을 만들고 사람들을 모아 함께 이야기 나누었다. 뿌듯하고 재미있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사람들과 대화했다. 그 순간 나는 'Now Now'를 온전히 즐겼다. 물론 준비하며 글을 쓰고 콘텐츠를 만드는 행위에 온전히 몰입한 순간도 있지만 불안해하고 걱정하며 흘려보낸 순간도 많다.


 한 가지만 이야기해보자면, '코칭', '2019 지원사업' 등 많은 검색어를 구글에 입력했다. 그러다 '너는 코칭이 하고 싶은 거야? 코칭이 뭔데? 코칭이라는 단어가 옳아?', '지원 사업을 얼른 받아야 할 텐데..., 비즈니스 모델은 어떻게 만들지?, 지속 가능해야 할 텐데...' 끝없는 질문에 마주했다. 불현듯 불안해졌다. 갑갑하고 막막해졌다. 'Now Now(지금 이 순간)'를 생각하며 신나던 나는 더 이상 없었다. 어느새 지금 이 순간은 'Just Now(나중에)'가 되었다. 그래서 몇 가지 검색어를 스스로 금지시켰다. 나중에 다시 만나자고 말이다.


 지금 이 순간들이 과거가 되어 의미 있는 점으로 미래에 기여할 것이라 믿으며 오늘도 몰입하여 하루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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