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유리한 상황과 이익을 계산하는 게 아니라 서사를 쌓는다는 마음가짐
이번 글은 비렉터 창업 이야기를 쌓아가는 시작점입니다. 사실 좀 민망하기도 하네요. 브런치에 글을 쓸 때마다 "앞으로는 이렇게 해낼 것이다! 글을 꾸준히 쓰겠다"라고 선언하고 한동안 사라졌다 다시 나타나서 선언하는 거 같아요. (이번엔 진짜로... 마지막 선언이길 바라며...) 요즘 저는 비렉터를 창업하고 다양한 고민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사실 창업하겠다고 선언하고 이전 직장을 퇴사한 지 3년이 지나서야 실제 창업을 했어요. 첫 번째 글로 마음가짐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3년간 못하던 창업, 어떻게 시작했을까요?
"비렉터(Birector)"를 창업했다. 이제 시작이지만, 참 오래 걸렸다. 로컬 스타트업 부대표로서 최선을 다하다가 번아웃을 겪고, IT 기업을 창업하겠다고 선언한 지 3년이 되어서야 새롭게 시작한 셈이다. 물론 먹고살아야 하니 계속 기획자로서 일은 해왔다. 지난 3년을 어떻게 보냈는지, 어떤 차이가 드디어 창업을 할 수 있게 했는지 찬찬히 적어본다.
예전 이야기를 짧게 해 보면, 이전 회사를 그만두고 부트캠프에 참여해 개발 공부를 했다. 오랫동안 개발을 하지 않았고 최신 기술 스택을 학습했다. 부트캠프에서 최종 프로젝트를 팀장으로 이끌어 최종 대상을 받기도 했다. 그리고 개발자로서 이직을 준비했다. IT 서비스를 체계적으로 기획부터 개발, 운영, 유지관리까지 개발자로서 경험해보고자 했다. 결과적으로 이직은 실패했다. 기획자로서 이전 커리어는 가치 있게 평가받지 못했고, 오히려 요구받은 기능을 효과적으로 구현하는 개발자를 바라는 기업들은 부담스러워한단 느낌까지 들었다. 그래서 개발자로서 이직보단 새로운 업과 일의 환경을 만들어보기로 했다.
목포에서 전주로 이사했다. 전주에서 전 회사의 앱 출시 업무를 전담하며 창업을 준비했다. 사실 이때 가장 많이 하던 말은 "돈 벌어야 해"였다. "돈" 사실 엄청 중요하다. 어찌 보면 이 사회에서 얼마나 잘 살아왔는가?를 평가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다. 이전에 분명 참 치열하게 살았는데, 돈을 기준으로 평가하면 내 삶은 낙제점이었다. 다만 어떻게 하면 돈을 벌 수 있는지? 는 조금 알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요즘, 결국 2년간 '돈' 때문에 헤매었단 생각이 든다. 돈을 기준으로 해야 할 일을 판단하다 보니 할 수 있는 일이 제한적이었다. 에너지가 100%라면, 돈이 되는 일에 80%, 하고 싶은 일에 고작 20%만 투입했다. 결과적으로 하고 싶은 일은 적당히 하면서 어쩔 수 없다고 합리화했다. 그러다가 지원사업에 선정이 안되면 힘이 다 빠져버리고 돈 버는 일에 집중하는 악순환이 반복되었다. 전주에서 2년간 하고 싶은 일과 동떨어진 다른 일에 대부분의 시간과 에너지를 투입했다.
그래도 전주에서 아무런 진전이 없었던 건 아니다. 시행착오를 거치며 번아웃을 넘어섰고, "로컬 그로스해커"라는 정체성을 세웠다. 내 삶의 궤적에서 제주-목포-전주-대전까지 연결되는 로컬 기반 라이프스타일의 중요성을 인지했고, 그로스해커로서 직무 전문성을 쌓고 만들어가는 목표를 세웠다.
[참고] 이전글: '로컬 그로스해커'로 살기로 했다.
[참고] 이전글: 로컬 스몰 비즈니스를 그로스해킹할 수 있을까?
전주에서 뿌리를 내리고 살겠다고 했는데, 결과적으로 지금은 대전에 산다. 전주 집주인 개인 사정으로 전세 계약 연장이 어려운 상황에서 여러 고민을 했다. 전주에서 일거리가 없어 일은 광주에서 했고, IT 분야 일을 하는 사람은 거의 만나지 못했다. 그래서 과학/기술이 발전한 광역자치단체인 대전으로 이사를 결정했다.
대전으로 이사하며 다른 마음가짐으로 지내겠다고 다짐했다. 첫째, 돈과 이익이 아니라 하고 싶은 일을 한다. 남의 일을 하는 게 아니라 반드시 하고 싶은 일로 돈을 벌겠다. 둘째, IT 스타트업 대표 혹은 관련 직무 종사자를 자주 만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한다. 셋째, 나다운 브랜드와 특별한 이야기(서사)를 만들겠다. 여기서 특별하게 꾸며내고자 하는 게 아니라, 주체적으로 만드는 과정과 이야기는 특별하다고 믿는다. 브랜드를 오랫동안 고민하고 공부했지만, 브랜드는 다채로운 관점의 이야기가 모인 결과물이라고 믿는다.
경제학자 오마에 겐이치가 <난문쾌답>에서 "인간을 바꾸는 방법은 세 가지뿐이다. 시간을 달리 쓰는 것, 사는 곳을 바꾸는 것,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 이렇게 세 가지 방법 아니면 바뀌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즉, 대전으로 이사하며 다른 마음가짐을 가지고 만나는 사람과 시간을 쓰는 방법, 돈이 아닌 브랜드와 이야기로 만드는 목적을 세웠다. 요즘 작은 차이였지만 큰 변화를 느낀다.
가장 큰 변화는 마음가짐이다. 더 유리한 상황과 이익을 계산하는 게 아니라 서사를 쌓는다는 마음가짐과 목적이다. 철학자 한병철 씨가 쓴 "고통 없는 사회" 구문을 인용해 본다.
고통이 비로소 이야기가 흐르도록 하는 것이다. (중략)
우리는 오늘날 탈서사적 시대에 살고 있다. 이야기가 아니라 계산이 우리의 삶을 규정한다.
이전에는 더 유리한 상황과 이익이 되는, 생존에 유리한 선택을 이어왔던 거 같다. 다르게 말하면 고통이 없을 거 같은 선택을 했다. "고통이 비로소 이야기가 흐르도록 한다." 맞다. 고통 없는, 계산이 앞서는 선택은 아무런 이야기를 만들지 못했다. 창의적인 선택엔 위험과 책임이 따른다. 안정적인 선택은 특별함이 될 수 없었다. 나아가 이야기를 만드는 일은 우선순위에 들지 못했다.
"나다운 이야기와 서사를 쌓고 싶다." 오랫동안 고민하고 시도했지만 항상 꾸준히 못했다. 하지만 이야기를 콘텐츠로 만드는 과정은 우선순위가 항상 낮았다. 내 안에서 이유를 찾아왔다. 성실하지 않아서, 외부에 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서 등등 이유는 많았다. 여러 시행착오를 거쳤지만 변화는 없었다. 요즘 나는 심리학적 접근에 회의적이다. 아무리 나다움을 인식해도 결국 환경을 바꾸거나 행동해야 변화는 만들어진다.
본격적으로 비렉터를 시작하며 필요한 환경을 만들었다. 첫째. 최소 6개월 간 수익 없이 생활할 수 있는 경제적 기반 마련, 둘째. 고립되지 않고 다양한 창업 생태계 주체를 만날 수 있는 사회적 기반 마련, 셋째. 마음의 여유와 나다운 서사를 쌓는다는 목적의식 구축. 그렇게 작은 생각과 환경 변화가 이전과는 큰 차이를 만들었다.
진심을 담은 고민과 노력으로 사업화 자금을 확보할 수 있었고, 2025년 6월 17일 개인 사업자등록을 했다. 2명의 동료를 채용했고, 제품을 만들었다. 이제 고객과 만나 실제 가치를 만들어내는 시작점에 와있다. 누군가에겐 별거 아닐 수 있지만 시작이 반이라고, 불안보단 앞으로 만들어갈 이야기가 기대되는 요즘이다.
비렉터를 만드는 과정을 솔직하게, 나다운 이야기로 만들어가자. 이익을 계산하는 게 아니라 진짜 변화를 만드는 나다운 서사를 쌓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