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 5 시절부터 모아둔 받은 편지함이 있다.
온라인 메일함이 아니다. 정감 어리게 우표 붙은 '진짜' 편지들이 보관되어 있다.
정리를 하며 오랜만에 그 편지들을 꺼내 보았다.
오랜만에 마주한 이름들과 추억들에 웃음이 난다. 그중 감탄할 만한 글들이 있었는데, 그 당시에 내 그릇의 크기가 작아 이런 내용인지 인지조차 하지 못했었다.
그의 언어에는 나와 네가 건강히 분리된 자의 목소리가 묻어났다. 너의 상태는 너의 것, 그것에 대한 이해는 나의 것 그리고 그 모든 것을 포용적으로 바라보는 시선.
더 놀라운 것은 그의 삶에 대한 철학들을 적은 글이었는데, 대략 이런 내용이었다.
아직은 안정보다 도전에 끌린다.
시작점 A와 결과 D가 있을 때 값진 것은 그 사이의 C와 D라고 생각해.
우리는 '비교급'이 아닌, 그대로 '최상급'인 삶을 살자.
"자식들이 부모님의 품을 떠나 자신만의 삶을 개척하는 것 역시, 열역학 제2법칙, 엔트로피의 법칙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결국에는 "뻗어나가는 것"이 우리 인류의 복잡다단한 모든 행위들을 해석해 낼 수 있는 가장 단순한 법칙이 아닐까 싶어"
"C는 D라는 위험 요소를 뛰어넘는 그 이상의 충분히 감당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
자신과 타자의 명확한 구분, 자신의 논점을 뒷받침하는 에피소드와 유명인의 글이 잘 어우러지고 매끄럽게 구조화된 글이었다.
그와 나의 20대는 이렇게 달랐구나!
늘 20, 30대의 혼란으로는 절대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혼란을 스스로 정면 돌파 할 용기가 없던 나를 가리는 비겁한 말이었던 것이다.
그가 20대에 했던 말을 나는 40대가 되어 이해를 한다.
글의 흔적은 오래도록 남아, 이렇게 수십 년이 지나도록 여기저기 피어난다.
타인이 바라보는 나의 모습,
그 시절 추억, 고민, 감정,
그리고 삶의 근육이 되어주던 철학들.
그들은 어디선가 주어진 역할과 타인의 시선에 흔들리며 삶을 살아내고 있을 텐데,
이렇게 멋진 글을 쓰던 기억이 남아있을까. 또는, 내가 놀란 것처럼 수십 년 전 자신의 글에 놀라게 될까.
글을 남긴다는 것, 오선지에 지금의 한음을 찍어 보는 것에 대한 의미를 생각해 보게 된다.
그것은 언젠가, 어디선가 피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