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어진 구도의 길을 던져버린 어린 개척자
영화의 원작인 함세덕 작가의 희곡 [동승]에서 주지 스님이 주인공인 도념이 절을 떠나려는 것을 막는 이유는 지옥과 같은 속세에서 자신이 겪은 괴로움을 그가 경험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 속 주지 스님은 도성의 업보를 빌미로 아이의 소망을 꺾는 폭력적인 모습을 보인다. 종교를 내세운 권위적인 억압은 엄마를 만나고 싶은 도성의 본능적인 욕망을 더 깊어지게 만들고 결국 도성은 자신을 짓누르는 종교의 굴레를 스스로 벗어 버린다.
<마음의 고향>은 현재보다 더 나아가려는 인간의 기본적인 욕망에 기인한다. 아름다운 풍경의 사찰 속에서 미몽에 사로잡힌 어린아이의 성장에 대한 욕망은 곧 삶의 운명이다. 속세에서 찾아온 아름다운 서울 아씨를 만나고 또 아름다웠다는 어머니를 아씨와 동일시하는 도성에게 사찰 밖 세상은 영원한 동경의 대상이다. 하지만 사찰 내에서 절대적인 권력을 가진 주지 스님은 외부에서 찾아온 더 큰 힘의 요구로 마지못해 도성의 출타를 승낙한다. 하지만 도성의 실수를 통해 결국 자신의 종교적 아집으로 그를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만 재단한다. 타협의 여지도 없고 오로지 종교적 율법에만 천착하는 주지 스님은 결국 불교가 가진 자비라는 선량함을 폭력적인 율법으로 둔갑시킨다. 이렇듯 영화는 원작과는 달리 주지 스님의 전사를 생략함으로써 욕망하는 도성과 억압하는 주지 스님의 반목을 더욱 극대화한다.
도성이 종교적 억압을 조금씩 흔들어 가는 과정은 성장하려는 도성의 본능과 군림하는 주지 스님의 권위가 부딪히는 강렬한 클라이맥스를 만든다. 이 시작은 도성을 수양아들로 삼으려는 서울 아씨와 도성이 그리워 찾아온 생모와의 만남에서 시작된다. 아름답고 부유한 아씨의 예쁜 부채를 부러워한 도성은 가난한 자신의 어머니를 위해 부채를 만들려 한다. 그러나 이로 인해 불자로서 살생을 저지르는 우를 범한다. 종교적으로는 부적합하나 아이의 의지는 사랑스럽다. 결국 종교의 율법을 폭력적으로 휘두르는 주지 스님의 강압으로 도성은 서울로 떠나지 못한다. 이렇게 두 사람의 대립이 극에 달하기 전 도성을 사이에 둔 생모와 수양모의 순간적인 판단은 도성이 더 큰 세상으로 향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다. 두 어머니의 판단은 자비롭고 숭고하며 더 종교적이다. 압도적인 서스펜스의 힘을 보여주는 그녀들의 만남 속에 도성이 등장하는 장면은 도성과 주지 스님의 대립을 향해가는 강력한 에너지를 만들어낸다.
아직 많은 것을 배우고 성장해야 할 도성은 깊은 그리움과 절망을 안고 사찰에 남겨지지만 결국 종교를 앞세운 무의미한 굴레를 스스로 깨버린다. 그는 그리운 어머니를 찾아 용감하게 절을 떠난다. 늘 자신의 키 높이를 새긴 나무 아래 앉아 어머니가 있을 산 넘어 서울을 상상하던 수동적인 도성은 두 명의 어머님이 만들어준 모성을 발판으로 세상을 꿈꾸며 능동적으로 나아간다. 영화의 시작, 아침 불경을 외며 절을 한 바퀴 도는 스님을 통해 보이는 크고 아름다운 모든 세상이었던 고찰 속에서 종을 울리는 힘없는 동승에 불과했던 도성이 영화의 마지막 그 세상을 벗어나 장엄한 산 아래를 자신에 찬 시선으로 내려다봄으로써 그의 미래에 대해 해피엔딩을 염원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