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은 현재진행형이다.
개인의 회고록처럼 보이는 이 다큐멘터리는 아즈마에 감독이 어린 시절부터 느껴온 이해할 수 없었던 가족의 모습을 모로코 전통 인형과 모형 제작을 통해 재현한다. 이 영화를 찍기 전까지 아즈마에의 가족들은 폭력적인 할머니 아래 숨죽이며 조용한 삶을 이어온다. 하지만 그 이유를 전혀 이해할 수 없었던 아즈마에는 성장하면서 할머니에게 나름 저항한다. 사진을 끔찍이 금지하던 할머니를 거역하고 그녀는 12살 축제의 밤에 가출하듯 사진관을 찾아 생애 첫 사진을 찍는다.
영화의 시작, 아즈마에 감독이 방 안 침대 위에 할머니와 마주 앉아 보청기를 끼워주며 테스트라고 던지는 의심스러운 한마디에 할머니는 정말 눈이 빠질 듯이 그녀를 노려본다. 이는 결코 인자한 어른의 모습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아버지는 모로코 전통 인형을 만드는데 가족과 친구들 그리고 그들이 사는 마을과 사람들을 매우 흡사하게 빚어낸다. 일기를 읽는 듯한 감독의 내레이션이 영화 전체를 이끌어가며 할머니와 부모님이 살아온, 그리고 이웃과 친구들이 살아온 그 작은 마을을 차근차근 완성해 간다. 그리고 마을이 제 모습을 갖추어 갈수록 모형 하나하나에 얽힌 과거와 만난다. 이는 경제적 고난으로 시작된 마을 사람들의 파업과 이에 대응하는 국가 권력의 학살이다.
이 일을 돕던 아버지의 친구 사이드는 결국 사람들을 감금하고 질식시켜 죽인 좁은 창고의 모형 속에서 자신의 경험을 눈물로 쏟아낸다. 그는 시신들 사이에서 필사적으로 살아남았고, 창고에서 탈출한 후에도 군인들에게 고통을 당했다고 울부짖는다. 하지만 할머니는 그 광경을 보고 심각하게 역정을 낸다. 할머니의 끝없는 방해에도 불구하고 아즈마에는 꿋꿋이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찾아가며 그들이 감추어 두었던 기억을 하나둘 꺼내간다. 학살의 첫 희생자였던 소녀 파티마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그녀와 관계가 있든 없든 사람들은 모두 그녀의 시신을 찾으려 애쓰지만 오로지 아즈마에의 할머니만 외면한다. 완성된 마을 아래 묻힌 그들의 핏물 진 과거가 꿈틀거리며 올라온다. 재현이 진행될수록 이 다큐멘터리는 아즈마에의 가족뿐 아니라 마을 사람들 모두가 얽힌 감춰진 역사드라마가 된다.
이렇게 모형으로 재현하는 한 가족의 이야기는 흑백사진 한 장으로 남은 마을의 참상을 세상에 드러낸다. 여기에는 정치적인 왜곡을 차단하기 위한 아즈마에 감독의 숨은 노력이 담겨있다. 그녀는 이 다큐멘터리를 통해 묻혀버린 진실로 고통받은 모든 부모의 과거를 용감하게 대면한다. 그리고 그 학살의 기억 속에 할머니의 가족을 향한 폭력의 근원이 숨어있었음을 찾아낸다. 그날은 이렇게 기억된다. 파업 이후 군인들은 집마다 문을 두드리고 누구든 끌어내 사살했고 그 공포 속에서 가족을 지키기 위해 문을 닫아걸고 사진을 없애고 모두를 없는 사람인 듯 가둬버린 할머니의 절박함이 있었다. 그날 이후 할머니는 벽 속에 '귀'가 있다고 믿는다. 모형 곳곳에 걸려있는 사라진 얼굴의 슬픈 사진들은 ‘벽 속의 귀’를 온몸에 새긴 할머니의 폭력성과도 닮아있다. 이렇게 아즈마에 감독은 할머니와 부모님 그리고 아버지의 친구들인 압둘라와 사히드의 모든 이야기를 경청한 후, 1983년 6월 20일 모로코의 카사블랑카에서 벌어진 잊힌 학살을 완성한다.
기억되지 못한 기억이라도 이는 과거로부터 이어져 온 현재진행형이다. 입 밖으로 말하고 타인에게 보여주고 그렇게 바닥 위로 올라와 눈 앞에 펼쳐졌을 때 지금까지의 모든 오해를 이해할 힘이 생긴다. 할머니가 지독하게 믿는 ‘벽 속의 귀’에 저항하며 모든 것을 말해야 한다. 영화의 시작 아즈마에가 할머니의 귀에 강렬하게 말하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