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아치는 태풍을 품은 담담한 삶의 여정
제목과 함께 배경으로 들려오는 피아노곡은 주인공인 기요코의 변화를 상징한다. 다소 우울한 느낌으로 영화가 시작되지만, 첫 장면에서는 밝은 음악이 들려오고 버스 안에서 도쿄 시내를 안내하고 있는 기요코의 밝은 얼굴이 보인다. 영화 시작의 어두운 분위기가 그닥 느껴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음악이 멈춘 후 기요코는 둘째 형부의 외도를 목격한다. 이는 기요코가 환멸을 느끼는 삶의 부조리함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엄마의 굴곡진 삶의 여정을 따라 복잡한 관계를 가진 네 명의 남매는 너무나 판이한 성격의 소유자들이다. 그중 세 명의 자매는 어쩌면 각기 다른 방식으로 엄마의 영향 아래 놓여있는 듯하다. 도쿄의 좁은 빈민 골목에 존재하는 그들의 집은 가족 구성원들 누구도 홀로일 수 있는 공간은 보이지 않는다. 분가한 둘째 언니 미츠코의 집에서 함께 살다가 형부의 죽음 이후 엄마 집으로 돌아오게 된 기요코는, 자신과는 전혀 다른 삶을 영위하는 2층의 세입자를 통해 가족의 공간에서 벗어난 다른 인생을 꿈꾼다. 여기서부터 1층과 2층은 전혀 다른 세계로 나누어진다.
1층은 삶의 공간이자 부딪힘의 공간이며 기요코의 입장에서는 야만의 공간이기도 하다. 하지만 기요코가 빵집 주인을 비롯한 가족을 피해 올라간 2층은 상념과 추모의 공간이자 이상의 공간이다. 여기서 그녀는 지금과는 다른 세계를 희망한다. 다른 가족 구성원들의 면면은 결국 살아야 하는 절대적 명제에 대해 좌절하거나 방관하기도 하고 반대로 물질적인 욕망을 악착같이 자신의 것으로 채우기 위해 분투한다. 이러한 상반된 분위기를 표현하는 나루세 만의 방법은 크게 동작하지 않는 인물들의 면면을 담담히 들여다보는 것이다. 각자의 다른 속내를 감추고 모두 모여 국수를 먹는 장면이 그러하고, 빵집 주인이 방문했을 때 한명 한명의 얼굴을 그저 차례로 비추기만 해도 숨죽인 채 끓고 있는 욕망의 태풍은 어느샌가 화면 전체를 지배하고 있다. 그 모든 것들을 이해하기 힘든 기요코는 어떻게 해서든 가족들로부터 자신을 분리하기 위해 움직인다.
나루세 영화에서 보여지는 남성 인물들의 특징적인 비루함은 짙게 드리워진 전후의 그림자로 볼 수 있을 것이다. 패전이 남긴 남성들의 패배 의식과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했던 여성들의 열망은 이 가족의 구성원들도 피해 갈 수 없었던 시대의 상흔이다. 하지만 이 암울함 속에서도 나루세 감독의 위트가 느껴지는 장면이 있는데 그것은 골목을 지나가는 상인들이다. 칼 가는 상인이 지나간 후에 집 안에서는 난투극이 벌어지고 우산 장수가 지나가면 비가 오고 번개가 친다. 희망을 품고 행복을 꿈꾸는 기요코의 버스 안에서는 거의 유일하게 밝은 음악이 나온다. 이는 일상이라는 담담함을 세밀하게 묘사하는 나루세 감독만의 스타일이기도 하다.
영화의 시작부터 중요한 주제로 사용되는 피아노 음악은 영화의 후반으로 가면 화면 밖 배경에서 화면 안 장면의 주요한 요소로 포함된다. 가족들을 피해 올라가서 머무르는 2층의 공간처럼 이는 기요코의 가장 큰 변화의 상징이기도 하다. 배경으로 쓰이는 피아노 테마가 들려올 때마다 그녀는 상념에 잠기고 자신의 처지를 고민하며 앞으로 나아간다. 또한 화면 안의 피아노 소리 뒤로는 설레는 만남이 있다. 하지만 이 피아노 테마의 위치가 모호해지는 순간 번쩍이는 번개는 순탄치만은 않을 그녀의 미래를 예견한다. 다시 배경으로 빠져나가는 음악 속에서 멀리서 번쩍이는 번개를 마주하는 기요코의 순간은 그래도 또다시 한 걸음 나아가는 그녀만의 께달음의 순간일 수도 있다. 가족 간에 서로 돕고 서로의 일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는 이상적인 파트너를 꿈꾼다 해도 삶의 비루함은 참을 만한 비극으로 일상의 시간을 채운다. 그렇게 흘러가는 것이 인생이다.
기요코를 대변하는 듯한 피아노는 화면 밖에서 안으로 들어왔다가 다시 화면 밖으로 돌아가며 사라진다. 그녀는 홀로이길 원해도 여전히 가족이 함께 있음은 어쩔 수 없다. 하지만 그녀는 영화 전반에서 보여준 것처럼 강단이 있고 현명하고 선하다. 그리고 여전히 희망을 품고 달라질 삶을 꿈꾼다. 엄마는 여전히 엄마고 가족은 여전히 가족이다. 길을 나선 기요코와 엄마의 마지막 장면에서 들리는 배경음악은 피아노에서 오케스트라로 그 구성이 풍부해진다. 여전히 두 사람은 비슷해 보이는 다른 방향으로 살아갈 것이다. 그녀는 그녀의 아버지처럼 거짓을 모르는 루비 같은 존재다. 지난한 삶의 궤도를 이탈할 수 있는 방법은 요원하지만 인생은 그렇게 흘러간다. 이것이 나루세 미키오 감독의 영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