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화: 안산의 무법자들, 그리고 인턴의 창고 장악
안산 물류 센터로 향하는 차 안, 에어컨 바람이 무색하게 창밖의 열기는 뜨거웠다. 운전대를 잡은 김무열 대리가 백미러로 민준을 보며 말했다.
“민준 씨, 거긴 본사처럼 서류 들고 다니는 곳 아냐. 소장부터 현장직들까지 전부 진 상무랑 형님 아우 하는 사이라, 우리 같은 ‘본사 샌님’들 보면 일단 들이받고 보거든. 내 뒤에 딱 붙어 있어.”
“무열 대리님, 저는 샌님이 아니라 인턴인데요? 잃을 게 없어서 더 무섭죠.”
민준의 농담에 조수석의 김지환 대리가 노트북을 두드리며 낄낄거렸다.
“말은 잘해. 지환아, 너는 서버실 들어가면 문부터 잠가라. 거긴 물리적 보안보다 ‘심리적 보안’이 더 시급한 곳이니까.”
차는 드디어 한명그룹 로고가 빛바랜 채 붙어 있는 거대한 물류 창고에 도착했다. 차 문을 열자마자 매캐한 매연과 함께 땀 냄새, 그리고 묘한 적대감이 훅 끼쳐왔다.
창고 입구에는 팔뚝에 문신이 가득한 거구의 남성들이 컨테이너 박스 사이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그들 사이로 배가 불룩 나온 사내가 이쑤시개를 씹으며 걸어 나왔다. 안산 물류 센터장, 조칠성이었다.
“어이, 진 상무님이 보낸다는 그 ‘천재 인턴’이 누구여?”
조칠성이 민준의 코앞까지 다가와 연기를 내뿜었다. 민준은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시스템을 가동했다.
[ 돌발 퀘스트: 현장 장악력 0% -> 50%로 올려라 ]
[ 상대 분석: 조칠성 (전투력 중, 탐욕 상, 진 상무와의 유착 관계 99%) ]
[ 추천 스킬: 스피치스킬 1-2 ‘감성적인 F 스피치’ 및 ‘니즈 파악’ 예비 가동 ]
“안녕하십니까, 본사에서 ‘유배’ 온 김민준입니다. 소장님 인상이 저희 동네 큰아버지랑 똑같으셔서 마음이 놓이네요.”
민준의 넉살 좋은 인사에 조칠성의 눈썹이 꿈틀했다.
“큰아버지? 야, 너 내가 우습냐? 여기는 엑셀 돌리고 워드 치는 곳이 아니여. 까딱하면 지게차에 깔리는 데라고! 본사 놈들 내려와서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거 지긋지긋하니까, 조용히 구석에 처박혀 있다가 올라가!”
조칠성이 민준을 밀치고 지나가려던 찰나, 민준의 뇌 속에서 데이터가 불꽃을 튀겼다. 조칠성의 작업복 주머니에 꽂힌 경마 예상지와 손목의 금통 시계, 그리고 구석에 세워진 외제차를 순식간에 연결했다.
“소장님, 이번 주 일요일 과천 가시죠? ‘번개호’ 상태가 별로라던데, 굳이 거기다 거실 필요 있겠습니까?”
조칠성의 발걸음이 우뚝 멈췄다. 그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눈에는 경악이 서려 있었다.
“……너, 그걸 어떻게 알아?”
“데이터는 거짓말을 안 하거든요. 제가 본사에서 쫓겨난 이유가 뭔지 아십니까? 너무 잘 알아서입니다. 소장님이 진 상무님께 매달 상납하시는 그 ‘뒷돈’ 내역, 그거 사실 장부 기록방식이 너무 구식이라 본사 감사팀이 냄새 맡기 딱 좋더라고요.”
옆에 있던 지환과 무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니, 초장부터 저렇게 지른다고?’ 하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민준은 하영이 준 정보와 시스템의 예측을 100% 신뢰하고 있었다.
“뭐, 뭐? 이 새끼가 진짜 죽으려고 환장했나!”
조칠성이 주먹을 치켜들자, 무열이 즉각 앞을 가로막았다. 하지만 민준은 무열을 제지하며 한 걸음 더 다가갔다.
“화내지 마세요. 저는 그거 고발하러 온 게 아니라, ‘안 걸리게’ 도와주러 온 겁니다. 그리고 조 소장님, 요즘 지게차 부품 대금 부풀린 거 때문에 현장 기사들이 단체 행동 준비 중인 건 아시죠? 그거 터지면 소장님만 독박 쓰고 진 상무님은 모른 척하실 텐데.”
조칠성의 얼굴이 흙빛으로 변했다. 민준은 이때를 놓치지 않고 **[감성적인 F 스피치]**를 섞어 속삭였다.
“진 상무님은 소장님을 친구가 아니라 ‘방패’로 생각해요. 하지만 저는 소장님이랑 잘 지내고 싶거든요. 어차피 저도 상무님 눈 밖에 나서 여기 온 처지 아닙니까? 우리끼리 돕고 살아야죠.”
잠시 후, 조칠성의 손에서 힘이 빠졌다. 그는 이쑤시개를 뱉어내더니 헛기침을 했다.
“……야, 일단 사무실로 들어와. 에어컨은 켜줄게.”
센터장실 안. 김지환은 구석에서 몰래 노트북으로 센터 내 내부 망을 털기 시작했고, 김무열은 문 앞에서 보초를 섰다. 민준은 조칠성이 내준 미지근한 캔커피를 마시며 책상 위의 지저분한 서류들을 눈으로 스캔했다.
[ 스킬 해금 대기 중: 영업 스킬 6-1 ‘니즈 파악’ ]
[ 현재 달성률 80%: 상대의 약점과 욕망을 정확히 짚어냄 ]
그때, 민준의 폰으로 박하영 기자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박하영: 민준 씨, 안산 소장 조칠성 이름으로 된 차명 계좌 하나 더 찾았어요. '진 상무'가 아니라 '진 상무 부인' 쪽으로 직접 흘러가고 있네요. 이거 아주 재밌는 그림이죠?]
민준은 미소를 지으며 조칠성을 바라봤다.
“소장님, 진 상무님이 아니라 ‘형수님’께 따로 용돈 보내시는 거… 그거 상무님도 아십니까? 두 분 사이가 요즘 안 좋으시다던데.”
조칠성이 마시던 커피를 뿜었다.
“너, 너…… 정체가 뭐야? 국정원에서 왔어?”
“아뇨, 그냥 인턴입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흔한 이름, 김민준이죠.”민준의 뇌 속 연산 장치가 미친 듯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진 상무의 ‘금고’를 부술 열쇠가 조칠성의 떨리는 손가락 끝에 걸려 있었다.
-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