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화: 전무님의 ‘최애’ 인턴이 되었다

제15화: 전무님의 ‘최애’ 인턴이 되었다


선포식 장내에 정적이 흘렀다. 백명석 전무의 물음에 진 상무는 마른침을 삼켰고, 민준은 여유롭게 단상 앞으로 나섰다.

“이 분석은 단순히 과거의 리스크를 나열한 것이 아닙니다. 김지환 대리님이 분석한 IT 인프라의 취약점과 김무열 대리님이 확인한 물리적 보안 허점, 그리고 선호윤 대리님이 설계한 기획 의도를 하나로 묶은 ‘미래 방어용 통합 리포트’입니다.”

민준이 리모컨을 누르자, 화면에는 복잡한 수치들이 마치 영화 <아이언맨>의 홀로그램처럼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나타났다.


[ 업무스킬 5-1 ‘실무 보고서 작성’ 가동 ]

[ 효과: 수만 장의 데이터를 단 한 줄의 ‘핵심 인사이트’로 변환 ]

[ 추가 옵션: ‘임원의 쾌락 버튼(데이터 정합성)’ 무한 자극 중 ]


백 전무의 눈이 희번덕거렸다. 평소 ‘데이터에 미친 놈’이라 불리던 그에게 민준의 보고서는 단순한 서류가 아니라 성경과도 같았다.

“이거야…! 내가 10년 동안 기획팀에 입이 닳도록 말해도 못 가져오던 그 숫자라고!”

백 전무는 감격한 듯 민준의 손을 꽉 잡았다. 옆에서 지켜보던 진 상무의 얼굴은 이미 보라색을 넘어 검은색으로 변하고 있었다. 본인이 판 함정에 본인이 빠진 꼴이었다.


선포식이 끝난 후, 전략기획본부장실.

민준은 백 전무 앞에 앉아 있었다. 백 전무는 민준이 가져온 ‘혁신안’ 출력물을 소중하게 쓰다듬으며 물었다.

“김민준 군. 자네, 인턴 끝나면 어느 팀 가고 싶나? 마케팅 1팀은 자네를 담기에 너무 작은 그릇이야. 우리 전략본부로 오게. 내가 자네 책상 옆에 공기청정기랑 안마의자도 놔주지.”

민준은 속으로 웃음이 났지만, 최대한 겸손한 표정을 지었다.

“과찬이십니다, 전무님. 하지만 저는 아직 배울 게 많은 인턴입니다. 특히 진 상무님 밑에서 ‘인내심’과 ‘위기 관리’를 아주 혹독하게 배우고 있거든요.”

“허허, 인내심이라니! 진 상무 그 친구가 좀 괴팍하긴 하지. 하지만 걱정 말게. 이제 자네 뒤엔 내가 있으니까.”

백 전무는 그 자리에서 민준에게 ‘전략본부 특별 자문 인턴’이라는 괴상한 타이틀을 하사했다. 사실상 진 상무의 손아귀에서 민준을 빼내 오겠다는 선전포고였다.


마케팅 1팀으로 돌아가는 복도. 민준은 지환, 무열과 마주쳤다. 두 사람은 민준을 보자마자 약속이라도 한 듯 엄지를 치켜세웠다.

“와, 민준 씨. 아까 백 전무님 표정 봤어요? 거의 첫사랑 만난 소녀 같던데요?” 김지환 대리가 키득거리며 말했다.

“보안팀에서도 난리예요. 인턴 하나가 상무님 뒤통수를 아주 우아하게 후려쳤다고요.” 김무열 대리가 듬직하게 민준의 등을 두드렸다.


그때, 복도 끝에서 익숙한 실루엣이 보였다. 홍보팀의 박하영 기자였다. 그녀는 지환과 무열에게 가볍게 목례를 하더니 민준을 따로 불렀다.

“잠깐 얘기 좀 할까요? 김민준 인턴.”

비상계단으로 자리를 옮기자, 하영이 서류 봉투 하나를 내밀었다.

“이거, 진 상무가 어제 저녁에 비서실이랑 주고받은 연락망이에요. 민준 씨를 백 전무한테 뺏기지 않으려고 수단을 가리지 않을 거예요.”

민준이 서류를 훑었다. 거기엔 ‘안산’이라는 단어가 선명하게 적혀 있었다.

“안산 물류 센터… 여길 저한테 맡기겠다는 거군요?”

“네. 거긴 단순한 물류 창고가 아니에요. 진 상무의 ‘금고’ 같은 곳이죠. 현장 소장이 진 상무의 고등학교 동창이거든요. 민준 씨를 거기 보내서 사고를 위장해 매장시키거나, 아니면 자기 비리를 덮는 데 이용하려는 거예요.”

하영의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 날카로웠다. 그녀는 민준의 어깨를 가볍게 잡으며 덧붙였다.

“내가 밖에서 센터 소장과 진 상무의 유착 관계를 취재할게요. 민준 씨는 안에서 증거를 잡아요. 우리, 이번에 제대로 한탕 해보는 거죠?”

민준은 든든한 파트너의 등장을 환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영의 정보력 덕분에 민준은 이제 적의 패를 미리 알고 싸움터로 나갈 수 있게 되었다.


그때, 저 멀리서 선호윤 대리가 헐레벌떡 뛰어왔다.

“민준 씨! 한참 찾았잖아요! 지금 난리 났어요. 진 상무님이 사무실 집기를 다 때려 부수다가…… 갑자기 민준 씨한테 줄 ‘새로운 업무’ 리스트를 뽑으라고 지시했어요. 이번엔 아예 회사 밖으로 내보낼 모양입니다.”

민준은 눈앞에 뜬 시스템 팝업을 확인했다.


[ 돌발 퀘스트: ‘지방 지사 리스크 해결’ 발생 ]

[ 목표: 한명그룹의 골칫덩이, ‘안산 물류 센터’의 효율을 개선하라 ]

[ 난이도: 상 (빌런의 마지막 발악) ]


‘안산 물류 센터라… 거긴 깡패들이랑 노조 갈등 때문에 임원들도 포기한 곳 아닌가?’

진 상무의 최후의 수단은 ‘유배’였다. 하지만 민준은 오히려 흥미롭다는 듯 입꼬리를 올렸다.


갑자기 등 뒤에서 서연의 목소리가 들렸다.

“유배 가는 사람치고는 표정이 너무 밝은 거 아녜요?”

서연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민준을 바라보고 있었다.

“거기 정말 험한 곳이에요. 진 상무가 민준 씨를 거기 보낸 건, 단순히 업무를 시키려는 게 아니라 사고라도 나길 바라는 걸지도 몰라요.”

민준은 서연에게 한 걸음 다가갔다.

“서연 씨, 제가 누굽니까. 김민준입니다. 대한민국에서 제일 흔한 이름이지만, 능력은 제일 흔하지 않죠.”

민준은 여유롭게 윙크를 날리고는 진 상무의 방으로 향했다.


문을 열자마자 진 상무가 서류 뭉치를 내던지며 소리쳤다.

“야! 김민준! 너 당장 안산으로 내려가! 거기 물류 효율 200% 개선 못 해 오면, 추천서고 나발이고 내 손에 죽을 줄 알아!”

민준은 바닥에 떨어진 서류를 우아하게 주워 올리며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상무님. 대신 200%가 아니라 300% 달성하면, 상무님 법인카드 한도 좀 늘려주시는 겁니까?”

“이, 이……! 당장 나가!”



진 상무의 방을 나온 민준은 복도에서 다시 하영과 마주쳤다. 하영은 마치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차갑게 지나갔지만, 민준의 스마트폰에 메시지 한 통이 도착했다.


[박하영 기자: 안산에 김지환 대리, 김무열 대리가 같이 가기로 했어요. 내가 백 전무님께 슬쩍 흘렸거든요. 몸 조심해요.]


민준은 웃음이 터져 나오는 걸 참았다. 역시 박하영이다. 단순히 정보를 주는 것을 넘어, 백 전무를 움직여 민준의 보디가드까지 붙여준 것이다.


안산행 법인차량 안. 운전석에는 무열이, 조수석에는 지환이 앉아 있었다.

“아니, 대리님들이 왜 여기 계세요?” 민준이 놀랐다는 듯 묻자, 무열이 핸들을 꺾으며 씩 웃었다.

“백 전무님이 자네 지켜주라고 파견 보냈어. 나 보안팀이야, 민준 씨 몸 하나는 확실히 지켜줄게.”

지환도 노트북을 두드리며 거들었다. “안산 센터 서버가 개판이라면서요? 제가 가서 다 엎어버리려고요. 우리 ‘민준 사단’ 출동입니다!”

민준은 든든한 조력자들과 함께 창밖을 내다봤다.


[ 새로운 스펙 쌓기 시작: 영업 및 현장 관리 ]

[ 다음 해금 스킬 예약: 영업 스킬 6-1 ‘니즈 파악’ ]


인턴 김민준의 ‘현장 접수기’가 이제 막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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