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화: 보이지 않는 실, 연결된 진실

제21화: 보이지 않는 실, 연결된 진실


진땀나지만 행복했던 삼겹살 회식이 끝나고 다음 날 아침. 민준은 숙취보다 무서운 두 여자의 시선을 뒤로한 채 본사 로비에 들어섰다.

전광판에는 '한명그룹 지배구조 개편안, 주주 연대 전폭 지지'라는 뉴스가 흐르고 있었다. 그룹 내 임기학 부회장의 입지는 공고해졌고, 그를 보좌한 김기림 상무의 기세는 하늘을 찔렀다. 하지만 민준은 알고 있었다. 승리의 파티 후에는 반드시 처리해야 할 악취의 쓰레기가 남는다는 것을.


"민준 씨, 여기요."

박하영 기자가 회사 앞 카페에서 민준에게 태블릿 하나를 밀어 넣었다. 화면에는 복잡한 기업 가계도가 그려져 있었다.

"김기림 상무가 관리하는 유령 회사가 하나 더 있어요. 'K-네트웍스'. 이번 개편안에서 슬그머니 자산 가치가 뻥튀기된 곳이죠. 근데 재밌는 건, 이 회사의 법인 카드가 주로 어디서 쓰였는지 아세요?"

민준이 시스템을 가동했다.


[ 자료 조사와 정리 스킬 4-4 ‘내부 문서 연결 분석’ 활성화 ]

[ 분석 대상: K-네트웍스 지출 결의서 및 임기학 부회장 가계 지출 내역 ]

[ 연결 고리 탐색 중... 98% 일치 ]


"설마... 임기학 부회장의 막내아들 유학 자금입니까?"

민준의 물음에 하영이 눈을 반짝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빙고! 김기림은 단순한 충신이 아니에요. 부회장의 '뒷주머니'를 관리하면서 자기 몫도 챙기고 있었던 거죠."




사무실로 돌아온 민준은 김기림 상무에게 불려갔다. 김 상무는 거만한 자세로 의자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김민준 인턴, 이번에 공을 좀 세웠다고 우쭐하지 마라. 인턴은 언제든 대체 가능한 소모품일 뿐이니까. 이제 'K-네트웍스' 매각 건 서류 정리해. 잡음 안 나오게 깔끔하게."

김 상무는 민준을 자기 비리의 뒤처리에 이용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민준의 눈앞에는 시스템의 경고창이 떠올랐다.


[ 리스크 예측: 해당 매각 건 진행 시, 민준 씨는 횡령 방조죄에 연루됨 ]

[ 추천 루트: 내부 문서를 연결하여 김기림의 '독단적 행동'임을 증명할 증거 확보 ]


민준은 묵묵히 자리에 앉아 키보드를 두드렸다. 옆자리 이서연이 걱정스러운 듯 다가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민준 씨, 김 상무님이 시킨 일... 너무 위험해 보여요. 그 사람, 자기 손 더러워지는 건 절대 못 참는 사람이거든요."

민준은 미소를 지으며 서연을 안심시켰다. "걱정 마세요, 서연 씨. 전 시키는 대로 하고 있을 뿐이에요. 다만, 글자들을 조금 '연결'해보고 있을 뿐이죠."

그때, 민준은 [내부 문서 연결 분석] 스킬을 통해 결정적인 단서를 포착했다. 김기림 상무가 임기학 부회장에게 보고한 문서와, 실제 자금 흐름이 적힌 내부 장부 사이의 '10억 원' 차이. 김 상무가 부회장의 돈을 중간에서 '배달 사고' 낸 흔적이었다.




그날 오후, 전략기획본부 휴게실.

민준은 일부러 김기림 상무와 임기학 부회장이 함께 지나가는 길목에서 지환과 큰 소리로 대화를 나눴다.

"지환 씨, 이거 이상하지 않아요? K-네트웍스 장부를 보니까 부회장님께 보고된 금액보다 실제 집행액이 10억이나 적더라고요. 누군가 중간에서 '배달 사고'를 낸 것 같은데... 설마 우리 회사에 그런 겁 없는 사람이 있을까요?"

지환은 민준의 의도를 파악하고 과장되게 맞장구를 쳤다. "에이, 민준 씨. 그게 사실이면 그 사람은 임기학 부회장님 목숨을 담보로 도박하는 건데, 제정신이겠어요? 바로 매장당할 텐데!"


지나가던 임기학 부회장의 발걸음이 우뚝 멈췄다. 김기림 상무의 얼굴은 순식간에 하얗게 질려 경련을 일으켰다.

"방금... 뭐라고 했나?"

임 부회장의 낮은 목소리에 휴게실의 공기가 얼어붙었다. 민준은 당황한 척하며 보고서를 뒤로 숨겼다.

"아, 부회장님! 아닙니다. 제가 인턴이라 숫자를 잘못 본 모양입니다. 김 상무님께서 완벽하게 검토하신 자료인데 제가 감히..."

민준이 숨기려 하면 할수록 임 부회장의 의심은 깊어졌다. 그는 민준의 손에 든 서류를 낚아채듯 가져갔다. 보고서를 훑어내려가는 임 부회장의 눈빛이 서늘하게 타올랐다.

"김기림이!!!! 이 숫자의 의미를 설명해 봐."

"부, 부회장님! 그게 아니라... 저 인턴 놈이 함정을...!"

김 상무가 민준을 가리키며 소리쳤지만, 민준은 이미 서연과 하영이 미리 준비해준 '결정적 물증'을 시스템을 통해 임 부회장의 태블릿으로 전송한 뒤였다.




그날 저녁, 김기림 상무는 '대기 발령' 조치를 받았다. 공식적으로는 ‘개인 사정에 의한’ 대기 발령이었다.

승전보를 들고 퇴근하려는 민준을 하영과 서연이 가로막았다.

"민준 씨! 오늘 대박이었어요! 김기림 그 인간 표정 봤어? 십 년 묵은 체증이 다 내려가네!" 하영이 민준의 팔을 툭 치며 웃었다. "고생 많았어요. 하지만 임 부회장님은 이제 민준 씨를 아주 '위험한 인턴'으로 인식했을 거예요." 서연이 민준의 옷깃을 정리하며 진지하게 조언했다.

민준은 두 여자의 에너지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행복한 식은땀을 흘렸다.


"저기... 오늘은 제가 진짜로 쏠게요. 삼겹살집 말고, 이번엔 좀 조용한 곳으로..."

하지만 하영은 "조용한 곳은 재미없어! 가자, 노래방!"을 외쳤고, 서연은 "노래방보다는 야경이 보이는 와인바가 분석하기 좋을 텐데..."라며 맞섰다.

민준은 생각했다. '부회장의 음모를 파헤치는 것보다, 이 두 분 사이의 평화를 지키는 스킬이 먼저 해금되어야 할 것 같은데...'

민준은 그렇게 또 한 번의 시끌벅적하고 아슬아슬한 저녁 식사로 향했다.


-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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