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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비아네스캠프 Jan 31. 2023

제주 마을에서 보내는 여행

한경면 청수리, 애월읍 애월리, 구좌읍 종달리




이번 제주행은 항공과 숙박 외에는 정한 게 없는 무계획 여행이지만 숙소는 아내가 꽤 고민하고 검색해서 예약했다. 잠깐 편하게 쉬고 가기엔 호텔이 좋겠지만, 일주일이란 시간이 있으니 제주를 좀 더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마을을 골라 산책을 겸하여 보낼 수 있는 곳에서 묵고 싶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서남쪽 한경면 청수리 민박, 북쪽 애월 게스트하우스, 동쪽 구좌읍 종달리 펜션을 골랐다. 2박, 3박, 2박으로 나눠 권역을 둘러보기 쉬우면서 관광지와는 떨어진 조용한 마을들이었다.



첫 숙소 - 한경면 청수리 <과랑민박>

첫 날 일정은 오후에 도착해 렌터카를 받고 숙소로 이동하면 하루가 거의 끝나기 때문에 저녁 식당이 유일한 플랜이었다. 다행히 숙소 도보 2분 거리에 흑돼지 맛집이 있어 짐풀고 이동이 한결 편했다.



과랑민박은 렌터카 한 대가 쏙 들어가는 주차장을 가진 돌담집이었는데, 입구부터 프라이빗하고 아늑한 인테리어가 맘에 들었다. 심플하고 따뜻한 색감의 리빙룸과 깔끔한 안방이 잘 분리되어 있었고, 제주 현무암을 살린 벽채 장식도 근사했다.



아침엔 혼자 먼저 일어나 동네를 산책했다. 밭농사가 한창인 소박한 길길마다 감귤나무, 동백꽃, 유채꽃이 정감있게 심어져 있었고, 춥지 않은 날씨가 더없이 걷기 좋았다. 아침공기를 잔뜩 마시고 숙소로 돌아와 마시는 드립커피는 이름난 카페보다 더 좋은 향이 났다.



문앞엔 담과 야자수로 가려진 프라이빗한 욕조와 족욕공간도 있었는데 둘째날 밤, 종일 걸었던 몸의 피로를 풀며 맥주 한 잔 했던 시간이 이 곳 최고의 순간이다. 매일 아침 산책까지 야무지게 보내고 퇴실일까지 ‘제주에 산다’는 느낌을 준 숙소였다.


두 번째 숙소 - 애월읍 <더 스테이 크리스마스>

이 숙소는 일정 중간에 친한 가족과 동반으로 머문 곳이다. 공항에 픽업가기도 좋고, 여러 곳을 다니기에도 포스트로 좋은 입지였다.



높은 층고에 복층으로 지어진 이 게스트하우스는 루이스폴센 등과 대형식탁, 넓찍한 주방과 거실은 물론 2층 응접실까지 없는게 없었다. 호스트가 신경써서 관리하고 있단 느낌이 들었고, 굳이 요리를 하진 않았지만 주방도구도 다 갖춰져 있고 세탁과 건조도 가능해서 한달살기를 해도 좋을 만한 인프라였다.


동문 야시장에서 사온 제주 먹거리 한상


우린 매일 맛집에서 저녁을 먹고 숙소에 돌아와 넓은 식탁에서 뒤풀이를 했다. 그리고 아침엔 숙소에 비치된 캡슐커피를 마시며 그날 그날 일정을 정했다. 비가 와서 산책은 못했지만 넓고 쾌적해서 각자 시간을 보내는 동안에도 동선이 엉킬 일이 없었다.


이 집에 원래 사는 듯한 아들

모두에게 집처럼 편한 3박이었다.


세 번째 숙소 - 구좌읍 종달리 <수필하우스>

종달리 수필하우스는 아내가 가장 기대했던 동네와 숙소다. 숙소는 로컬 분위기를 살리면서도 굉장히 감각적이었고, 마을은 골목마다 소박한 카페, 책방, 선술집이 가득해서 도보여행 만으로도 며칠을 보낼 수 있을만한 곳이었다.



입구 마당부터 그린 듯한 멋진 길을 지나 방으로 들어가니 호텔처럼 최소한의 구성과 깔끔한 인테리어 웰컴과일&티가 우릴 맞았다. 그리고 종달리를 펜으로 정성스레 그린 지도와 함께 가보면 좋을 만한 가게들이 소책자로 소개되어 있었다.



어스름한 저녁, 찜해둔 선술집으로 저녁을 먹으러 가는 길에 동네 도보투어를 했는데 마을 전체가 마치 세트장처럼 예뻤다.



동네 무인책방에도, 식당에도, 카페에도 각기 다른 사람들이 종달리를 손으로 그린 지도가 있었다. 온 마을 사람들이 종달리를 사랑하는 것 같았다. 그날 저녁 다다미 좌식 테이블에 앉아 멋진 식사를 하며 이 동네는 또 오자 다짐했다.



아침엔 성산 일출봉이 멀리 보이는 마을 한바퀴 산책을 하고, 숙소 카페에서 융드립 커피를 마시고, 로컬 백반집에서 밥을 먹었다. 마지막 숙소라 가는 시간이 더 아쉬웠다.



수필하우스는 원래 2박 예정이었는데, 일정에 변경이 생겨 1박만 하고 레이트 체크아웃을 했다. 떠나기 전 예쁜 소품샵에도 가보고 마을책방에서 여행자를 위한 시크릿북(어떤 책인지 알 수 없도록 포장을 하고 소개글만 적힌 책)도 구입했다. 포장지는 바로 얼마 뒤 있을 긴 여행에서 열어 볼 생각이다.



모든 게 아기자기 정다웠던 종달리 마을은 빠르면 올해 다시 가볼 생각이다.




이제 적어도 제주 가족여행은 호텔에서 보내지 않을 것 같다. 마을에서 보내는 도보여행의 맛을 알아 버렸다. 앞으론 명소 여행이 아니라 읍면리 마을에서 보내는 여행을 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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