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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비아네스캠프 Feb 04. 2023

02. 쿠알라룸푸르 입성기

불면의 밤을 지나 숙면의 첫날밤까지




오전 7시 45분 ICN > KUL 에어아시아. 2019년 6월 대만 여름휴가 이후 3년 8개월 만에 우리 가족을 해외로 실어 나를 항공편이다. 최근 하늘길이 다시 열리고 공항이 굉장히 붐빈다는 뉴스를 본터라 3시간 전에 도착하려고 보니 대중교통편이 없었다. 비싸긴 하지만 안전하게 택시를 타고 가기로.


출발 전날은 종일 짐을 꾸렸다. 한 달 동안 나가려니 챙길 게 많았다. 환전, 항공권&숙서 바우처, 영문 가족증명서, 트레블월넷 카드, 상비약, 각종 디바이스&케이블, 아들을 위한 학습물, 부식, 옷까지 캐리어 2개를 가득 채웠다. 집 청소를 하고 냉장고를 비우고 나니 시간은 자정이 넘었고 잠이 오지 않았다.


그냥 자지 말고 출발하자.


우린 <일타스캔들> 밀린 회차를 보고, 새벽 3시 반에 아들을 깨워 택시를 불렀다.(이 시간에도 바로 잡힌다) 인천공항까지 약 50분. 눈은 충혈됐지만 놓친 게 없는지 불은 다 껐는지 신경 쓰느라 여전히 잠이 오지 않았다. 4시 반, 공항에 내리니 여긴 딴 세상이다. 이 깊은 새벽에 이렇게나 사람이 많다니. 다들 정말 불같이 떠나는구나.



에어아시아 카운터로 가니 줄이 벌써 수십 미터 늘어져있다. 일찍 갔다 생각했는데, 수하물 부치고 환전하고 출국심사 끝나니 벌써 7시. 그만큼 사람이 많았다. 가족들에게 연락을 하고 아쉬운 대로 면세점에서 조니워커 위스키 한 병을 사서 기내에 탑승했다.(달러 환율이 역시나 안 좋은지 매장마다 대체로 한산했다). 소문대로 에어아시아는 아무렇지 않게 예정보다 1시간이나 늦게 땅에서 떠올랐다. 흔들거리며 세차게 달리던 바퀴가 공중에 붕 뜨는 순간 여행이 실감 났다.



한두 시간쯤 잤을까. 기내는 안전고도에서 고요히 떠갔지만 여전히 잠은 오지 않았다. 에어아시아 이코노미 좌석은 미디어 모니터가 없다. 그럴까 봐 유튜브 오프라인 저장을 실컷 해왔지. 비행시간은 6시간 20분. 좁은 좌석에 좀이 쑤실 무렵, 기장 코멘트로 쿠알라룸푸르 도착을 알렸다. 공항 입구수속이 느리다는 글을 봤는데, 사람도 없고 5분 만에 일사천리로 끝났다. 이제 해야 될 건 유심카드 구매하고, 현지 번호를 받아서 숙소까지 갈 그랩택시를 부르는 것.


정신 차리자. 아들이 보고 있다.


현지 영어발음은 알아듣기 어려웠지만 Can I? May I? What is best?를 뒤섞고 뚝딱거리며 유심을 고르고 그랩 택시 매칭까지 어찌어찌해냈다. 10분 뒤 그랩택시 기사가 우릴 태우러 왔다.(다시 쓰겠지만 그랩은 대단한 앱이다)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가는 길, 그랩기사가 오른쪽에 앉아 좌측 차선으로 차를 달리고 있다. 난 여기서 운전은 하지 말아야지. 여긴 고속도로에도 오토바이가 많다. 차선이 아니라 차선 사이로도 막 간다. 그래, 난 여기서 운전은 하지 말아야지.



40분을 달려 쿠알라룸푸르의 초고층 빌딩 숲에서 한 블록 떨어진 동네, 우리가 보름 넘게 머물 레지던스에 도착했다. 50층 규모에 피트니스, 야외 수영장을 갖춘 건물 32층 투룸 아파트먼트가 우리 숙소다.(앞으로 여길 ‘쿠집’으로 부르기로 했다) 현관문을 여니 거실과 안방 통창으로 뻥 뚫린 시야가 일품이다. 32시간 동안 1시간 남짓밖에 못 잔 탓인지 뷰에 취한다.



짐을 풀 것도 없이 창 밖으로 보이는 이케아와 대형쇼핑몰 마이타운으로 넘어가 저녁을 먹고 필요한 먹거리들을 샀다. 도보로 다녀왔지만 덥지도 습하지도 않았다. 건기에 오길 잘했다. 숙소로 돌아와 면세점에서 샀던 조니워커 위스키를 홀짝이며 순조로웠던 쿠집 입성기를 자축했다. 씻고 더블 트윈침대에 누워 잠들었는데 남의 나라 남의 침대에서 뭘 그렇게 푹 잤는지 아침에 눈뜨자마자 내뱉은 마음의 소리가,


어, 여기 어디지? 아..




그렇게 말레이시아 한 달 살기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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