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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흔희 Dec 07. 2023

내가 글 쓰는 자격이 되나?

#6. 찾아온 슬럼프




 출간을 위해 원고를 쓰며 가장 괴로웠던 건 잊을만하면 찾아오는 스스로에 대한 의심이었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저를 괴롭혔던 생각은 '내가 과연 글 쓰는 자격이 되나?'였습니다. '이 정도 경력으로 글을 써도 될까?' 하는 생각이 들다가, 또 '얼마나 살았다고 인생에 관해 논해도 되나?' 생각이 들기도 했죠. 특히 완성 원고 넘기기 직전에는 불안한 마음이 최고조에 달했습니다. 정말 이대로 잘된 것이 맞는지, 이 글이 세상밖으로 나가도 괜찮은 것인지 끊임없이 의구심은 도돌이표처럼 맴돌았습니다. 

 돌이켜보면 원고를 쓰는 매 순간 '부족한 나'와 내적으로 마주했던 것 같습니다. 특히 막히는 구절이 있거나, 내가 원하는 만큼 유려한 문장이 쓰이지 않을 때 더욱 그랬습니다. 어디에도 얘기할 수 없고, 얘기한다 해도 누가 해결해 줄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에 참으로 막막하고 답답했던 것 같습니다. 말 그대로 고독한 싸움이었죠. 


 그때 불안함에 여러 책과 자료들을 찾아보게 되었는데요. 혹시 나와 비슷한 경험을 했던 사람이 있을지, 있다면 어떻게 헤쳐나갔는지 궁금했기 때문입니다. 그 과정에서 내게 와닿은 문장을 발견하면 마음이 약해질 때마다 꺼내보며 위로받곤 했습니다. 그렇게 보낸 시간들로 인해 힘을 얻고, 또다시 글을 써 나아갈 용기를 낼 수 있었죠. 


 지금, 이전의 저처럼 스스로와의 싸움에서 괴로워하는 분이 계시다면─비단 글 쓰는 것뿐이 아닌 다양한 분야에서─ 제가 그 시절 도움 받았던 이야기를 통해 위로받으셨으면 좋겠습니다.





1. 유튜브 <조승연의 탐구생활>  '100만 기념 팬미팅 Q&A 중에서'

 인문학을 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고, 그 일을 하는 사람들의 업적이 모여 유의미한 일을 이뤄냅니다. 한 사람만 떼어 놓는다고 그 사람이 한 업적만으로 세상을 바꾸기는 어렵죠. 연구하는 사람도 있고, 저처럼 전달자 역할을 하는 사람도 있고 새로운 정책에 접목시키는 사람도 있고… 각기 여러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각각의 사람들을 떼어놓고 봤을 땐 내가 하는 일이 전체에 비해선 너무 작은 일처럼 보여집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런 것들이 켜켜이 쌓여 바뀌는 거죠. 그러니까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해도 되지 않을까요? 받아들이는 사람도 알고 싶은 깊이가 모두 다르니까요. 인문학 생태계에서 다양한 깊이에서 여러가지 일을 하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논문 쓰고 학계에서 큰 역할을 하는 사람도 있어야 하지만, 그걸 쉽게 전달하는 사람도 필요한 것처럼요. 


 이룰 수 없는 목표여도 노력해야 될까' 묻는 구독자의 질문에 대한 조승연 작가의 답변입니다. 이 말을 접하고 '맞아,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해도 되지 않을까?' 생각이 전환되어 마음의 부담을 많이 내려놓을 수 있었고, 편안해졌습니다. 당연히 저보다 연륜과 경험이 많고, 또 생각이 깊은 사람들도 있지만 그분들은 그들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을 하면 되는 것이고, 저는 제가 있는 위치와 경험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을 하면 되는 거니까요. 또한 정보를 받아들이는 사람도 알고 싶은 깊이가 다르다는 말에 무릎을 쳤습니다. 

 문득 이전에 어떤 강의에 갔던 경험이 떠올랐습니다. 저는 가볍게 그 지식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듣고 싶어 갔었는데, 온갖 학술적인 이야기로 전공수업처럼 진행됐던 수업에 벅찼던 기억이 떠올랐지요. 이처럼 사람마다 받아들일 수 있는 지식의 깊이는 모두 다릅니다. 그 말인 즉, 저 역시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면 되고, 딱 그 정도 깊이의 이야기를 듣고 싶은 독자가 한 분이라도 있다면 유의미할 것이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2. 도서 <N잡하는 허대리의 월급 독립 스쿨> 중에서

 흔히 사람들은 자격증 또는 학위가 전문성을 증명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스스로 누군가를 가르칠 자격이 없다고 속단하죠. 그러나 지식 창업의 세계에서 전문성은 내가 증명하는 게 아니라 소비자가 부여하는 겁니다. 전문성을 객관적인 개념이라 생각하겠지만 사실 이것은 상대적인 개념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내가 잘하는 걸 가르칠 수만 있다면 누구나 지식으로 수익을 낼 수 있습니다. …… 오히려 전문가가 아닌 게 강점이 될 수도 있습니다. 배우는 사람 입장에서 자신은 초보자인데 뛰어난 전문가에게 배워야 한다고 생각하면 부담스러울 테니까요.  …… 하지만 입문자에게 배울 때는 다릅니다. '저 사람도 평범했는데 저렇게 됐네? 나도 할 수 있겠다!'라는 마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입문자는 초보자가 무엇을 궁금해하는지 잘 압니다. 전문가는 뭔가를 가르칠 때 당연히 알 거라 생각하고 넘어가는 내용이 많습니다. 


 저자는 때로 전문가보다 입문자가 설명하는 게 더 나을 때도 있다고 말합니다. 전문적이어야 무언가를 강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주식 투자 강의는 워런버핏 아니면 하지 말아야 하고, 보컬 강의는 박효신이 아니면 하지 말아야 한다는 예시를 들면서요. 생각해 보면 직장에서 업무 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때로는 팀장님보다 직속 사수나, 혹은 입사 동기가 설명해주는 게 쏙쏙 이해가 잘될 때가 있지요. 꼭 무언가를 완벽하게 알아야 지식을 전달할 수 있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도 괜찮습니다. 저 역시 책을 보거나 자료를 찾을 때 제 기준에서 너무 어렵거나, 이해하기 힘든 부분은 패스할 때가 많았거든요. 그보다는 한 발자국 정도 적당히 앞서 있는 내용을 통해 도움을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마찬가지로 글을 쓸 때에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한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원고를 쓰며 한 번씩 좌절감에 무너지려 할 때마다, 계속 주문처럼 이 말을 되뇌었습니다.

'지금 내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이야기를 하자!'


 일과 직장에 대한 원론적인 이야기를 원하는 독자들은 경제/경영 분야의 전문서적을 볼 것이고, 구체적인 행동 강령을 원한다면 처세 서적을 택할 겁니다. 반면 제 책은 '수렁에 빠져있는 직장인에게 나만 그런 게 아니라는 위로와 나름의 마인드 컨트롤할 수 있는 소소한 팁' 정도 전달하는 가벼운 이야기를 담기로 했습니다. 완벽주의자가 되려는 관성을 버리고, 조금 느슨하더라도 가볍게,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기로 다짐했지요. 그랬더니 원고의 톤 역시 '나는 이전에 이랬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이렇더라.' 혹은, '예전에 저는 이런 경험을 겪었는데, 당신은 어떤가요' 정도의 공감 톤을 갖게 되었습니다. 글도 조금씩 힘이 빠지고, '~해야 한다'는 지시적인 어투도 많이 줄어들게 되었습니다. 


 계속된 마인드 컨트롤로 '내가 자격이 있나?'라는 생각에서 조금씩 자유로워져 갔습니다. 마음이 가벼워지고 '내가 이 주제에 관해 써도 괜찮을까' 스스로에 대한 의심도 많이 거두어졌습니다(물론 나태함에 대한 변명으로 둔갑하지 않도록 스스로를 채찍질하기도 했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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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혹시 지금, 자괴감으로 괴로운 작가님이 계시다면, 마지막으로 이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당신이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는 것만으로 이미 충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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