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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흔희 Dec 14. 2023

묘사를 이렇게밖에 못하나?

#7. 상투적인 비유




 출간을 위한 원고를 쓰다가 무언가 부족함을 느끼고 급하게 기억을 더듬어 에피소드를 착즙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렵사리 상황에 맞는 에피소드를 생각해냈지요. 일단 한숨 돌리고 노트북 앞에 앉았습니다. 하지만 몇 줄 써나가지고 못하고 이내 또다시 거대한 벽과 마주했습니다. 에피소드를 풀어나가는 방식이었는데요. 어떤 에피소드, 이를 테면 '인상적이었던 면접자 이야기'를 떠올렸다면, 이 이야기를 마치 그림 그리듯이 풀어내야 하는 것이 관건이었습니다. 그 일을 상세하게 마치 독자가 그 현장에 있는 것처럼 그날의 분위기를 생생하게 묘사해야 하는 일이었지요. 단순히 '문을 열고 나갔다' 보다, '이미 떠나간 그의 흔적만 가득했다' 등으로 무언가 뻔하지 않고 흡입력 있게 쓰고 싶은데… 쉽지 않았습니다. 이때 정말 좌절 모드였습니다. 글쓰기 역량 부족을 많이 느꼈지요.

 

 묘사는 소위 말하는 글발과 관계있다고 생각합니다. 글을 읽으면서 상황이 생생히 그려지거나, 어떻게 이런 비유를 할 수 있지 싶을 만큼 참신하고도 독특한 비유를 잘 활용한 경우이기도 하고요. 그런 글을 접할 때면 '아… 역시 나는 타고난 글재주는 없는 것 같아' 비교하며 낙심하기 일쑤였습니다. 나는 왜 이리 묘사를 못할까, 그동안 소설을 적게 읽은 탓인가, 자기반성하는 인고의 시간이었습니다. 특히 다른 장르의 글보다 에세이의 묘사가 유독 어렵게 느껴졌습니다. 장르 특성의 차이도 작용하는 것 같습니다. 이를테면 소설은 상황에 따라 문장이 전개되는 것에 반해, 에세이는 작가의 생각이나 감정에 따라 문장이 쓰이지요. 글이 완성되기 전에 작가의 가치 판단이 반영되어 버립니다. 이미 스스로 판단한 이야기를 독자에게 보여지듯 쓰려다 보니 묘사가 좀 더 어려워지는 것 같습니다(물론 그렇다고 소설이 더 쓰기 쉽다는 말은 아닙니다). 


 누가 봐도 신선하고 참신한 글을 쓰고 싶은데, 부족한 제 역량으로 단조로운 글이 되어버리기 일쑤였습니다. '왜 내 비유는 이렇게 상투적인가' 스스로를 책망하고 또 책망했죠. 예를 들어 뭔가 '큰일 났다!'라는 순간을 비유로 나타내고 싶은데, '베토벤의 운명교향곡이 귀에 들리는 듯했다'처럼 상투적인 표현이 제일 먼저 떠오르고 마는 것이었습니다. 쓰고도 오글거리는 표현이었죠. 

 또한, 강약 조절을 잘하지 못하고 별로 중요하지 않은 곳에 힘이 너무 많이 들어가거나 추욱 늘어지게 쓰기도 했습니다. 맛깔나게 표현해야 한다는 강박에 휩싸여 글이 너저분해지거나, 쓸데없이 묘사가 루즈해지기도 했죠. 힘을 줘야 할 때, 빼야 할 때를 전혀 감잡지 못하는 상태가 꽤 오래 이어졌습니다.




 이렇듯 묘사의 수렁에 빠져 헤매일 때, 도움이 되었던 책이 있습니다. 샌드라 거스의 <묘사의 힘>이라는 책인데요. 책에서는 시종일관 묘사에 관하여 '말하지 말고 보여주라!'라고 이야기합니다. 저자는 '말하기'와 '보여주기'를 구분하며, 차이점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말하기 : 작가가 내린 결론과 해석을 독자에게 전해주는 일 (ex. 티나는 화가 났다)

보여주기 : 독자에게 구체적이고 생동감 넘치는 세부사항을 충분히 전달한 끝에 독자가 결론을 스스로 이끌어낼 수 있도록 하는 일 (ex. 티나는 문을 박살 낼 기세로 닫더니 발을 쿵쾅거리며 주방으로 들어왔다.)


 '보여주기'를 활용해서 글을 쓰면, 굳이 사실을 짚어 말하지 않고도 독자 스스로 결론을 이끌어낼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저자는 중요하지 않은 문장은 '말하기', 중요한 문장은 '보여주기'로 쓸 것을 제안합니다. 이외에도 저자가 제안하는 '보여주는 글을 쓰는 아홉 가지 요령'은 아래와 같습니다. 






1. 오감을 활용하라 : 모든 장면에서 자신을 시점 인물이라 생각하고 그 인물이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느끼는 것을 묘사할 것 


2. 힘이 강하고 역동적인 동사를 사용하라 : 정적인 동작대신 동적인 동사를 사용하여 생동감을 불러일으킬 것 (ex. '걸었다' 대신에 '발을 굴렀다', '터벅거렸다' 등)


3. 구체적인 명사를 사용하라 : 단순히 '아침 식사를 먹는 것' 대신에 '어떤' 아침 식사인지, 메뉴를 알려줄 것 


4. 인물의 행동을 잘게 쪼개라 : 특히 인물의 성격이 드러나는 행동을 묘사할 경우 


5. 비유를 사용하라 :직유와 은유 사용, 그러나 너무 상투적인 표현은 지양할 것(한 번에 떠오르는 비유는 대체로 상투적일 확률이 높음) 


6. 실시간으로 활동을 보여주라 : 모든 사건을 실시간으로 보여줄 필요는 없으나, 무언가 중요한 사건을 보여줄 것 


7. 대화를 사용하라 : 실시간으로 활동 보여주는 방법 중의 하나임 


8. 내적 독백을 사용하라 : 시점 인물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보여주는 방법


9. 인물의 행동과 반응에 초점을 맞추라 : '행동은 말보다 더 크게 말한다', 이를테면 심술궂다고 직접적으로 말하기보다 강아지를 걷어차는 모습을 보여줄 것






 하지만 모든 문장을 '보여주기'식으로 나열하면, 자칫 독자는 너저분한 글에 피곤해질 수 있으므로, 적재적소에 이를 활용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일단 초고는 '말하기' 식으로 편히 쓰고, '보여주기' 식으로 고칠 부분이 있는지 찾으라는 거지요. 구체적으로 중요한 정보이거나 인물의 감정에 대한 정보일 경우에는 '보여주기'(ex. 짜증 났다 → 얼굴을 찌푸렸다), 별로 중요치는 않지만 그래도 필요한 정보일 경우에는 '말하기'를 활용하라고 조언합니다. 이를테면 시간을 건너뛰거나, 시점을 바꾸거나, 장소를 옮기는 등 장면을 전환하거나, 되풀이하여 등장하는 정보이거나 반복적인 사건인 경우, 이야기에 속도감이 필요한 경우에는 '말하기'가 더 나은 선택지일 수 있다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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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당시에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느끼는 생각은 비슷합니다. 글을 쓰는 당시에는 그게 최선이었건만, 일정 시간이 지나고 나면 이전의 실력이 형편없었다고 느껴집니다. 만족할만한 글쓰기 실력을 가지게 되는 때가 과연 오기는 할는지, 요즘도 매 순간 부족함을 실감하고는 자괴감이 듭니다. 

 내 수준에서 만족할 수 있는 글, 누구나 맛깔나는 문장이라고 느끼는 글을 쓰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사실 아직도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묘사 잘하는 법'을 비롯해서 아무리 이론적인 지식을 습득해도, 실제 글을 쓰며 바로 적용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지요. 많이 부족하기 때문에 더 단련하고 연마하는 수밖에 없다고 지금 이 순간 글을 쓰면서도 느낍니다.

 

 어찌 보면 결국 답은 하나인 것 같습니다. 진부하고 진부하지만 많이 쓰고 많이 읽는 것이죠.


어떻게든 쉬운 길은 없을까, 요행을 바라던 마음은 접고, 그냥 다시 우직하게 글 쓰러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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